에어컨을 뺀 날, 삶이 바뀌었다.
3년 전부터 이유 없이 무기력해졌다. 여태까지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 당황스러웠다.
아는 선배는 우울증이라고 하면서 내 나이가 되면 중년의 위기로 한 번씩 다 겪는 마음의 감기라고 했다.
하지만 이 마음의 감기가 너무 독해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잘 살고 있다"라고.
문제는 정말 그렇게 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굉장히 실용적인(practical) 사람이다. 모든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습관을 잘 만드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습관은 어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엄청난 무기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는 동안 철봉에 매달리기, Dual Lingo로 10분 중국어 공부하기, 출근하러 나가는 길에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내어 놓기, 월, 수, 금요일 출근길에 아버지께 안부 전화하기, 퇴근하면서 체육관에 들려서 운동하고 샤워하기. 이러한 습관들은 사소하지만 내 삶에서 큰 역할을 하고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삶이 향상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습관은 의지를 대체한다.
한 번 구조(System)를 만들어 놓으면, 생각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실행된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아무 문제도 없이 마음이 무너져 내리니 더 무서웠다.
여태까지 살아온 삶이 부정되는 것 같아 앞으로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라는 회의가 엄습해 왔다.
우울증 약도 먹어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을 부여잡고 견디다가 우연히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과 탈리 샤롯(Tali Sharot)이 쓴 "룩 어게인(Look Again): 변화를 만드는 힘"이라는 책에서 내가 우울한 이유와
해결책을 찾았다.
저자들은 삶이 공허하고 무기력하게 느끼는 원인을 습관화(Habituation)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뇌는 그것을 더 이상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무력하고 지겹고 공허하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감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탈습관화(Dishabituation)가 필요하다는 논지이다.
탈습관화는 습관화와 반대되는 용어로 나에게 익숙한 상태를 바꾸어서 모든 것을 새롭고
낯설게 느끼도록 일부러 시도하는 것이다.
어느 날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누가 창문에 설치되어 있던 에어컨을 빼서 밑에 내려놓았다.
딸에게 물어보니 인터넷 설치 기사가 케이블을 연결하기 위해 빼놓고 그냥 갔다고 했다.
에어컨을 설치할 때 무거워서 고생했는데 다시 들어 올려 창문에 끼우려고 하니 화가 났다.
인터넷 회사에 그 설치기사에 대해서 항의 전화까지 했다.
이전에 설치기사가 에어컨을 뺀 적이 없는데 왜 빼었으며 빼어놨으면 다시 끼워야지
왜 그냥 팽개치고 갔냐고 거품을 물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가 늦가을이어서 에어컨이 당장 필요한 게 아니어서 할 수없이 그냥 한쪽에 치워놓고
겨울이 되었다. 그런데 몇 달 뒤, 완전히 다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겨울이 되니 거실이 예전보다 훨씬 따뜻했다. 왜 그런가 보니 여태까지는 겨울에 에어컨과
창문 틈을 통해서 찬 바람이 많이 들어왔는데 에어컨을 빼고 창문을 닫아 밀폐하니
외부의 찬바람이 안 들어와서 집이 훨씬 따뜻해진 것이다.
이러한 이점을 깨닫고 곧바로 사무실에 있는 창문 에어컨들도 모두 떼어버리고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 그 설치기사가 고마웠다.
내가 항상 당연하게 에어컨을 창문에 설치한 상태로 사계절을 보내왔는데
겨울에는 떼어서 보관할 수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그때 느꼈다. 우울증의 극복은 탈습관화이고 탈습관화는 변화이다.
어떤 사람들은 반박을 한다. 변화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구관이 명관일 때도 많고 괜히 건드려서 굻어 부스럼 만들 때도 많다고 한다.
물론 변화는 정답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정체는 더 심각한 문제이다.
어떤 새로운 일을 시도했는데 예상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당장은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 선택은 선지에서 제외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의 뇌가 본능적으로 변화를 피하게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익숙한 것은 안전하고 새로운 것은 위험하다는 메커니즘이 원래부터 인간의 뇌에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원시시대부터 다른 동물들과 같이 생존을 위해서 모르는 것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이 본능적으로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은 얻는 것보다 읽는 것을 더 크게 느낀다고 한다.
변화해서 10을 얻을 가능성이 있지만 변화하다가 3을 잃을 가능성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셋째는 자신감의 부족이다. 한 번 실패를 하게 되면 자신감이 하락하고 변화를 시도할 의욕이 감소한다. 새로 시도해 보지 않으면 능력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더 큰 두려움이 밀려오고 결국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된다.
첫째는 새로운 물건을 사는 물질 소비를 지양하고 새로운 곳으로 여행하거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고, 새로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과 같이 경험소비를 더 늘리려고 한다. 물건은 닳아 없어지지만, 경험은 축적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험은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둘째, 사소한 것이라도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보려 한다. 예전에는 항상 차를 몰고 출근했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두세 번은 기차를 타고 출근한다. 물론 차로는 30분이면 출근할 수 있지만 기차로 가면 1시간이 넘게 걸려서 시간적으로만 보면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중간에 그랜드 센트랄(Grand Central) 역에서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하지만 해보니까 기차에서 생각할 시간도 있고 걸어서 역까지 가야 하니 운동도 되었다. 또한 그랜드 센트랄 역이 이렇게 멋있었나 하는 새로운 생각이 들었고 역에 대한 역사도 살펴보게 되었다.
셋째, 여태까지는 콘텐츠를 소비만 해왔다. 책을 읽기만 하고 영화와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기만 했다. 이제는 내가 콘텐츠를 생산하는 측면에서 삶을 살기로 했다. 언제나 판에 박힌 듯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온 삶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주려 한다.
결국 나를 바꾼 것은 의지가 아니라, 작은 변화들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익숙함을 의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