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추상화와 선언형 프로그래밍
커피 한 잔을 주문할 때, 우리는 카페에서 “라떼 하나 주세요.”라고 말한다. 우유를 데우고,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거품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말하고, 과정은 전문가의 손에 맡긴다.
회사의 업무 지시를 생각할 때도, 대표나 상사는 ‘원하는 것’만 이야기하고, 전문적인 기술이 있는 직원들이 절차대로 수행한다. 대표가 절차를 일일이 알려주고, 명령하게 되면 직원들은 ‘노동’만 하는 결과를 낳는다.
기존의 프로그래밍은 절차대로 Step by Step으로 개발됐다. 일일이 절차대로 코딩하고 다음 절차를 만들어 진행한다. 비동기 프로그래밍이라 하더라도, 이벤트가 발생하면 발생한 이벤트의 다음 절차를 일일이 코딩했다.
이제는 ‘어떻게 문제 해결을 할 것인지’보다는 ‘무엇을 원하는지’로 프로그래밍이 전환된다. 플랫폼과 프레임워크, 라이브러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면서 이것들을 그냥 사용하면 된다는 의미다. 개발자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만을 표현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시스템(플랫폼, 프레임워크, 라이브러리)에 위임한다.
// 명령형
let evenNumbers = [];
for (let i = 0; i < list.length; i++) {
if (list[i] % 2 === 0) {
evenNumbers.push(list[i]);
}
}
// 선언형
const evenNumbers = list.filter(n => n % 2 === 0);
코드의 명령형은 절차적으로 list에 있는 값을 2로 나누었을 때 나머지가 0 하고 같으면 evenNumbers에 추가하라는 코딩(짝수만 나오게)이다. 반면 선언형이라고 되어 있는 코드는 filter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만 기술하고, 어떻게 필터링할지의 로직(반복, 조건)은 프레임워크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위임한다.
개발자는 기술적 코드의 흐름을 제어하는 것에서 시스템이나 업무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개발을 진행한다.
이것은 단지 프로그래밍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사고방식과 창작 철학의 전환이다.
19세기 후반, 인상주의는 회화의 문법을 뒤바꿔 놓았다. 빛, 색, 순간적인 인상, 빠른 붓질, 일상의 풍경…
그림은 현실의 찰나를 감각적으로 붙잡는 시도로 가득 찼고, 살롱 중심의 고전 미술은 점차 그 권위를 잃어갔다.
사회적으로는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자연과 인간성에 대한 회의로 인해 개인의 감성 회복 욕망이 일어나고, 사진술의 발전으로 시각적 기록은 사진에게 넘기고, 예술은 표현의 차원으로 전환되는 시점이었다. 또한 프로이트, 융에 의해 정신분석학의 태동되고, 심리학이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시점이었다.
화가들은 인상주의의 감각적인 빛의 흔적을 넘어서, 그 감각 중심적 접근에 구조와 내면, 상징과 해석을 더하고자 했다. ‘후기 인상주의’의 태동이다.
이들은 단순히 그림을 다시 정교하게 그리려는 게 아니라, '느낀 것'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폴 세잔 (Paul Cézanne)은 “나는 인상주의에서 나아가고자 했다. 자연을 기하학으로 환원한다.”라는 말로 인상주의의 자유로운 붓질을 수용하면서도, 구성과 구조의 중요성을 다시 되찾고자 했다.
생트 빅투아르 산은 세잔의 고향 뒷산을 여러 각도에서 반복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목표는 '보이는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을 구성하는 구조와 공간성의 질서에 있으며, 자연을 기하학적 평면과 색면으로 해석한 회화적 실험이다.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는 “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는다. 나는 내가 느낀 자연을 그린다.”는 말과 같이, 빛보다 감정, 사실보다 에너지와 리듬을 그렸다. 그는 인상주의보다 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세계를 추구했다.
대표작인 <별이 빛나는 밤>은 생레미 정신병원 창밖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 소용돌이 치는 하늘, 꿈처럼 넘실대는 별빛, 빛과 풍경을 통한 감정의 시각화, 우울과 열망, 신비를 표현하여 상징성과 내면을 표현했다.
폴 고갱 (Paul Gauguin)은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생각을 그린다.”라고 말한 것처럼, 현실보다 신화, 종교, 원시성 같은 의미의 층위에 집중했다. 또한 색을 자연스럽게 쓰지 않고,
상징적이고 장식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위의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D'où venons-nous? Que sommes-nous? Où allons-nous?)>은 타히티에서 제작됐으며, 인류의 삶과 죽음, 존재의 의미를 한 화면에 상징적으로 배치했다. 화면 곳곳에 타히티인의 일상과 신화적 요소가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색채, 형태, 상징이 융합된 철학적 회화이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더 이상 '보는 것을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보인 것을 어떻게 의미화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사실주의의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과 인상주의의 ‘순간의 빛을 그리는 것’을 넘어 각자의 생각과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이는 프로그래밍에서도 코드의 절차와 흐름을 넘어 설계의 의미와 상태를 선언하는 것과 같다.
복잡해지는 시스템에서 단순하고 명확한 의도가 가장 강력한 구조가 되기 때문에, 점점 더 선언형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다. 특히나 AI 시대가 도래한 현재에 단순한 절차와 흐름의 ‘노동’에서 명확한 의도와 의미를 부여하는 ‘설계’에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