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교육의 맹점
'모든 학생이 코딩을 배워야 한다'는 시대적 구호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다양성과 개별적 적성의 차이라는 교육의 핵심 원리 말이다.
예전에 교육 분야에 관심이 있어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의 [다중지능]을 읽었던 적이 있다. - 가드너의 ‘열정과 기질’도 두껍지만 유익한 책이다.-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지능]을 통해 기존의 단일 지능 개념에 혁명적 도전을 제기했다. 가드너는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언어 지능이나 논리 수학 지능만이 영향을 주는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두 지능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다른 지능을 등한시했다고 비판한다.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은 인간이 단일한 일반 지능(g)을 가진 것이 아니라, 언어적 지능, 논리-수학적 지능, 공간적 지능, 음악적 지능, 신체-운동적 지능, 대인관계 지능, 자기 이해 지능, 그리고 자연친화 지능이라는 8가지 독립적이면서도 상호작용하는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가드너는 지능을 "문제를 해결할 능력, 또는 하나 이상의 문화권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물건을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IQ 검사가 측정하는 논리-수학적, 언어적 지능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맥락에서 발휘되는 여러 종류의 능력을 지능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가드너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극단적 사례로 서번트 증후군이 있다. 기존의 IQ 검사로는 판별할 수 없는 천재적 지능을 가진 인물들이 실존한다. 이들은 독신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낮은 IQ를 가지고 있으나,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특정 분야에 특화된 지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인간의 능력이 결코 단일한 척도로 측정될 수 없으며, 개인마다 고유한 인지적 프로필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키 백과의 학습자 특성에 따르면 “교수설계에 있어서 대상 학습자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학습자의 배경, 직무경험, 적성, 동기, 그리고 학습 및 인지양식들을 분석함으로써 보다 학습자에게 최적화된 학습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적성(aptitude)은 특수한 분야에서 요구하는 특수 능력이 어느 정도 있는가를 나타내는 말이다. 개인마다의 적성은 모두 다르며, 이는 교육 방법과 내용을 개별화해야 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코딩이라는 활동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합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개발자로서의 경험을 살펴보면, 그동안 만난 많은 개발자들에게서는 일반인과 다른 특별한 공통점을 찾긴 어려웠다. 논리적인 사람, 숫자에 강한 사람 등등이 개발자가 되는 게 아니고, 그냥 일이라고 생각하고 배우고 배운 만큼 하는 게 다이다. 물론 논리적이고, 숫자에 강한 사람이 더 강점으로 작용하긴 하지만, 그 차이를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클리앙의 모두의 공원에서는 “코딩은 논리적인 사고와 창조하고 만들고 조립하는 거 좋아하는 게 중요하죠”라는 의견도 있어, 코딩에는 분명한 적성적 요소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한 개발자는 “저는 제가 온라인 게임도 좋아하고 심심할 때 집에 있을 때 주로 컴퓨터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코딩도 적성에 맞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더라구요”라고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표면적 관심과 실제 적성 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인간의 능력은 유전과 환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결정된다. '인간특성은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라는 명제가 진실에 가장 근접한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유전적으로 우수하더라도 열악하거나 결핍된 상태에서 성장하면 우수한 유전적 특징이 제대로 개발될 수 없으며, 열등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나더라도 풍요롭고 우수한 상태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으면 그 능력 극대화 될 수 있다.
이는 코딩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모든 학생이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코딩을 배운다고 해서 동일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유전적 성향과 기존 경험, 그리고 학습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학습 결과를 결정한다.
가드너는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만약 적절한 여건(용기, 좋은 내용, 좋은 교육)만 주어진다면, 비교적 높은 수준의 성취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예로 든 스즈키 재능교육 프로그램은 "음악적 재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계발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누구든지 적절하게 교육을 받으면 음악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증명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사람이 음악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코딩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코딩에서 동일한 수준의 성취를 보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전면적 코딩 교육 정책은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2025년부터 코딩 교육이 의무화된다는 발표에 학부모들은 술렁이고 있습니다”라는 현실은 교육이 학습자 개별성보다는 획일적 정책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초등학생에게 VI 사용한 코딩작업? '초2때부터 대회 준비 해야 대학입시 유리'”라는 극단적 사례에서 보듯, 코딩 교육이 입시 경쟁의 새로운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준이 걸음마 수준인지라 특성화 고교나 대학전공자들이 배우는 수준을 초딩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사람들은 각기 타고난 재능이 모두 다르며, 어떤 분야에서든 강점을 보이는 분야는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목표는 모든 학생을 동일한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타고난 지능이 있기 마련이니, 그 지능을 파악하여 개발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코딩 교육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일부 학생들에게는 논리-수학적 지능과 공간적 지능이 결합된 코딩이 매우 적합한 학습 도구가 될 수 있다. 반면 다른 학생들에게는 음악적 지능이나 대인관계 지능이 더 강할 수 있으며, 이들에게는 코딩보다는 다른 영역의 교육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지능을 능력으로 정의한다는 것은 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본다는 뜻이다. 가드너는 유전적인 요소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사람의 환경, 경험, 교육 등으로 "가능성"이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코딩 교육에서도 적용되어야 할 원리이다.
모든 학생에게 획일적으로 코딩을 강요하기보다는, 개별 학생의 인지적 프로필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교육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코딩에 적성을 보이는 학생들에게는 심화 교육을 제공하고, 다른 영역에 강점을 가진 학생들에게는 그들의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는 "모든 사람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한다. 이는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역시 연설을 통해 "코딩은 당신의 미래뿐 아니라 조국의 미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이 '모든 사람이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해 가며 아이들의 창의적이고 논리적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것이 코딩 교육의 목적이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코딩은 사고력 개발의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음악, 미술, 체육, 문학 등 다른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창의적이고 논리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
인간의 다양성과 적성의 차이는 교육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핵심 요소일 것이다. '모든 학생이 코딩을 배워야 한다'는 명제는 표면적으로는 평등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개별성을 무시하는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만들어낼 위험이 있다.
진정한 교육의 목표는 모든 학생을 동일한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재능과 적성을 발견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코딩 교육도 이러한 다양한 교육 기회 중 하나로 위치 지어져야 하며, 강제적이고 획일적인 방식보다는 학생들의 관심과 적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로 제공되어야 한다.
하워드 가드너가 제시한 다중지능이론의 핵심 메시지처럼, 우리는 각 개인이 가진 고유한 지능의 조합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모든 학생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주요 인용 출처
하워드 가드너 : 다중지능
클리앙 : 코딩에 대한 적성 말인데요
학주니닷컴 : 코딩 교육을 위해 초등학교 학생에게 vi를 가르치겠다고?
나무위키 : 코딩
위키백과 : 학습자 특성
위키백과 : 교육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