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시작하다.
3,4년을 직장인으로, 3년을 강사와 개인사업자로, 15,6년을 프리랜서로 SI 프로젝트를 옮겨다녔다.
올해 5월 이후로 이어지던 SI 프로젝트가 끊겼다.
여기저기 알아봐도 다들 일이 없다고 한다. R&D 사업이 완전히 메말랐다는 말이 돌아온다. 있는 직원들과 사업을 유지하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업체도 있었다.
2025년 5월. 나이 50의 백수 시작이었다.
갑자기 일이 없어지니 주변이 보였다. 가진 건 빚과 가족뿐이었다. 막막했다. 진행되는 사업이 1,2개는 있지만 당장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다. 그것도 SI와 비슷한 성격의 사업이다.
한마디로 내 사업이 아니라는 의미다. 5월 한 달 버티면 6월에는 일이 들어올 거라 희망을 가졌다.
그렇게 6월이 됐다. 일은 없었다. 프로젝트 이야기만 오갈 뿐 아무 소식이 없었다.
일이 들어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딱히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복잡하고 걱정이 앞섰다.
와이프와 이야기를 했다. 현재 재정상태를 보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했다.
SI 프로젝트는 일이 없으면 수입도 끊기기에 불안정한 수입원이다. 지금처럼 갑자기 일이 끊기면 통로가 없다. 지속적인 수입을 위해 와이프 사업을 먼저 시작해보기로 했다.
와이프는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이모티콘, 작품, 원데이 클래스 등 활동을 위해 화실을 다시 만들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2번 화실을 만들었었다.-
갈매 지식센터 단지를 알아보던 중 화실로 쓰고 있던 사무실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천장은 높고 - 지식센터는 대부분 공장형이기에 천장이 높다 - 싱크대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거기다 온수까지 가능했다. 앞 통유리 전망은 갈매천 산책로가 펼쳐져 보였다. 전망도 좋고 조건도 만족스러워 바로 계약하기로 했다.
가계약을 하고 난 후 이전에 예약했던 태국 일정이 있어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6월 말이라 우기로 접어든 태국은 더울 줄 알았지만, 예상외로 한국보다 시원했다. -한국이 더 동남아 날씨 같았다.- 태국에 있으면서 생각이 깊어졌다. 잠시 한국을 떠나 연락도,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 있으면 나를 더 깊이 바라보는 것 같다.
태국에 있는 동안 웹사이트 하나를 만들어야 하는 목표가 있었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난감했다. 만드는 방법은 알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이 되는지 의문이었다. AI 도움을 받아 시작해도 시간 안에 끝내는 것은 무리인 듯했다.
마침 Google에서 Gemini CLI를 오픈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Gemini CLI를 설치해서 테스트를 진행했다. 프로젝트 제작부터 파일 추가, 수정을 알아서 진행했다. 시간은 몇 분이면 됐다. 신세계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AI는 없는지 찾아봤다. Cursor, Claude Code, GPT Codex가 눈에 들어왔다. GitHub Copilot, IntelliJ AI Assistant도 있지만 이전에 사용했을 때는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Claude Code를 설치하고 바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유료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Gemini CLI보다 더 심도 있게 코드를 작성해줬다.
태국에 있는 8일 동안 Claude Code로 웹사이트 하나를 뚝딱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망설였던 생각이 정리됐다.
'내 사업을 시작해보자.' 그동안 준비와 생각만 했던 것들을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시도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흥하든 망하든 시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귀국하고 나서 화실 계약을 체결하고 사업에 필요한 프린팅 기기를 주문했다. 가구를 들이고 가벽 시공을 진행하고 그동안 밀렸던 글을 쓰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가구와 가벽 시공은 와이프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과 사람들이 재능기부와 같은 형식으로 도와주셨다.- 정신없는 3주의 시간이 지나갔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라는 생각과 '내 것을 한다'라는 생각에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은 없었다. 수입을 생각하면 우울했지만 오히려 즐거움과 흥분이 더 컸다.
그토록 기대하던 프린팅 기기 세트가 한 달여 만에 도착했다. 고난의 시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