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시작

언박싱

by jeromeNa

큼직한 에어 패딩으로 쌓인 택배 박스 2개가 문 앞에 놓여있었다. 빨리 언박싱해보고 싶었다. 사무실 안으로 옮기고 영어와 중국어로 쓰인 송장을 확인하고 에어 패딩을 난도질했다.


제일 큰 박스를 열었다. 스티로폼 가루가 흩날렸다. 첫 번째로 노트북이 반겼다. 노트북을 주문한 적은 없었는데 서비스로 노트북을 주는지 신기했다. 노트북을 치우고 비닐을 걷어냈다. 안의 스티로폼은 배송되면서 부서졌는지 고대 유적을 방불케 했다.


에어 패딩으로 쌓여 있는데 안의 스티로폼이 부서져 있는 게 이상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열 프레스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열 프레스기를 다른 업체에 별도로 주문해 놓은 상태라 배송이 빨리 된 것으로 알았다.


별도로 주문한 열 프레스기와 모양이 달랐다. 해당 업체에 사진을 찍고 문의를 남겼다.




다른 박스를 열었다. 프린터기가 보기 좋게 포장되어 있었다. 프린터 박스를 열고 꺼냈다. 뭔가 이상함이 감돌았다. 주문한 프린터 사진과 달랐다. 주문 내역을 살펴보니 모델명이 달랐다. 전문용 프린터 기기인데 일반 잉크젯 프린터가 온 것이다. 그리고 함께 와야 할 오븐기가 보이지 않았다. PET 필름도 보이지 않고, 파란색 승화지와 하얀색 면티 3장이 보였다.


해당 프린터 중간업체에 문의를 남겼다.


열 프레스기 업체에서는 중국 측에서 배송에 오류가 있었다고 답변이 왔다. 더 좋은 걸 보냈다고 한다. 그냥 사용하겠다고 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프린터 중간업체에서 답변이 왔다. 해당 모델이 단종되어서 다른 걸로 보냈다는 답변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주문한 세트 상품대로 안 오고 이상한 것만 왔다는 내용으로 다시 문의를 날렸다. 프린팅을 문제없이 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주문한 목록과 다른 상품이 왔는데 어떻게 해결할지 문의를 다시 날렸다.


몇 번을 문의, 답변을 진행하다 보니 자신들은 다 보냈다는 입장이었다. 목록을 하나하나 따지고 가격이 정말 맞는지도 계산했다. 배송번호가 맞는지도 확인했다. 열 프레스기는 별도로 주문한 것이 온 게 아니라 프린터 업체에서 오븐 대신 보낸 걸로 확인됐다. 열 프레스기 업체에 오해하게 된 점에 대한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몇 번의 항의와 문의 끝에 빠진 품목을 다시 보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문의 답변만으로 하루가 지나갔다. 옆에서 보고 있던 와이프가 소비자고발센터에 제소하자고까지 이야기했다. 일이 커지니 일단 합의를 보는 쪽으로 선택했다.




다음날, 원하지도 않았던 노트북을 꺼냈다. 요즘치고는 꽤 부피가 컸다. 라벨 쪽을 살펴봤다. 헤지고 닳고 닳아서 글자가 거의 없어질 정도였다. 중고가 아니라 그냥 폐기 수준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전원을 켰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Windows 7이 로딩됐다. 중국어로 팝업이 여러 개 떴다. 번역기를 돌려보니 인증이 만료됐다는 오류였다. 인증을 하던가, 종료를 하던가 선택하라는 문구였다. 거의 쓰레기를 폐기처분으로 보내준 것 같았다.


다시 문의를 보냈다. 쓰레기를 보내줬다고.




업체에서 답변이 왔다. 원래 주문한 모델이 중고로 있다는 내용이었다. 원한다면 보내주겠다고 한다. 일단 받기로 했다.


원래 장만하려고 산 기기는 전문용 프린터, 오븐기, 열 프레스기 정도다. 지금은 - 아직 받지 못했지만 - 잉크젯 프린터, 전문용 프린터(중고), 열 프레스기 2대, 오븐기(와 봐야 안다), 쓰레기 노트북 1대가 되었다.


첫 사업 준비인데 초반부터 진을 다 빼앗긴 것 같다.


'벽돌이 아닌 게 어디냐'라고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