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질문 앞에 서 봅니다. "이 문장은 정말 내 글일까?" 예전에는 이 물음이 표절이나 모방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내가 읽어온 책, 머릿속에 남아 있던 문장이 무의식적으로 스며든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그러나 이제는 다른 형태의 망설임이 생겼습니다. AI와 함께 글을 쓰는 시대가 열리면서, 더 자주 묻게 됩니다. "이건 내 글일까, 아니면 우리의 글일까?"
글을 다 쓰고 나서 화면을 바라봅니다. 분명 내 손으로 타자를 쳤고, 내 시간을 들여 완성한 글입니다. 그런데 문득 의심이 스며듭니다. 이 문장들 중 몇 개는 AI가 제안한 것이었고, 어떤 표현은 AI의 도움으로 다듬어진 것이었습니다. 처음 AI가 내 앞에 문장을 내놓았을 때, 그 결과물이 낯설었습니다. 직접 쓴 것이 아니었지만, 동시에 내가 던진 질문 없이는 태어날 수 없는 문장이었습니다. AI의 문장과 나의 의도가 절묘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글은 누구의 것일까?
처음 이 문제를 마주했을 때는 죄책감 비슷한 것을 느꼈습니다. 마치 시험에서 컨닝을 한 것처럼, 남의 도움을 받아 쓴 글을 내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이 정직하지 못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AI가 제안한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대로 사용했을 때, '이건 표절 아닐까?'라는 불안이 엄습했습니다. AI와 함께 쓰는 글은 협업의 산물에 가깝습니다. 내가 시작점을 제공하고, AI가 응답하며, 그 사이에서 새로운 문장이 자라납니다. 그런데 협업이라면 당연히 '공동의 것'이어야 할 텐데, 글쓰기만큼은 유독 '저작자'라는 이름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이 망설임은 단지 소유의 문제를 넘어, 진정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기 경험과 감정을 언어로 옮기는 작업입니다. 독자는 글 속에서 저자의 목소리를 찾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 문장 안에 AI의 목소리가 섞여 있다면, 과연 그 글은 진정한 의미에서 '나의 글'이라 할 수 있을까? 이 물음 앞에서 잠시 펜을 내려놓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AI의 문장도 결국은 수많은 인간이 쓴 텍스트를 학습한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인류 전체의 언어 유산을 활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타인의 창작물을 도용하는 것일까? 글쓰기 과정을 돌아보면, 사실 늘 타인의 영향 속에서 씁니다. 내가 읽어온 책, 내가 들어온 이야기, 내가 만난 사람들의 언어가 이미 내 글 속에 녹아 있습니다. 순수하게 '나만의 언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글은 언제나 수많은 목소리의 합성물입니다. 그 점에서 AI의 개입도 어쩌면 새로운 형태의 인용이나 대화일 뿐입니다.
AI와 함께 쓴 글을 발표할 때마다 고민이 됩니다. 'AI의 도움을 받았다'라고 명시해야 할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도움부터 밝혀야 할까? 단순히 맞춤법 검사를 받은 것도 도움이고, 문장 전체를 제안받은 것도 도움입니다. 이 스펙트럼 속에서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지 막막합니다. 때로는 AI가 제안한 문장을 너무 많이 수정해서, 원형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되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온전히 내 문장이라고 해도 될까?
이런 망설임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글이 내 것인지, 우리의 것인지를 구분하는 일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글이 독자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가, 그리고 나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 하는 점입니다. 화가가 새로운 붓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림의 저자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피아니스트가 더 좋은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해서 음악의 주인이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AI도 결국은 도구일 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것을 사용해 쓴 글도 여전히 나의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는 단순한 도구 이상의 무언가입니다. 붓은 스스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피아노는 혼자 곡을 만들지 않습니다. 반면 AI는 능동적으로 문장을 생성하고, 때로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런 점에서 AI는 도구라기보다는 '협력자'에 가깝습니다. AI가 제시한 문장을 고르고, 다듬고, 최종적으로 '나의 글'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철저히 인간의 몫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전히 저자로서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글에 나의 체온을 남깁니다.
때때로 AI가 내놓은 문장을 그대로 두지 않고, 끝없이 고쳐 씁니다. 그렇게 고쳐 쓰다 보면 처음의 AI 문장은 흔적조차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장이 없었다면 시작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 글은 누구의 것일까? "그건 나의 글이자, 동시에 우리의 글입니다."라고 답합니다. AI는 씨앗을 던졌고, 그것을 길러냈습니다. 씨앗과 열매를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글은 우리 사이에서 자라납니다.
때로는 AI와 함께 쓴 글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내 한계를 넘어선 표현이 나오고, 생각지 못한 연결이 만들어집니다. 이럴 때는 '우리의 글'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었던 지점에 함께 도달했다는 성취감. 그런가 하면, AI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글이 별로일 때도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럴 때는 온전히 내 책임으로 느껴집니다. 좋은 글은 '우리의 것'이고, 나쁜 글은 '내 것'이 되는 이 이중성. 어쩌면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글에 담긴 '책임'입니다. AI가 아무리 많은 도움을 주더라도, 최종적으로 그 글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인간입니다. 글이 잘못되었을 때, 독자를 오도했을 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그 책임은 AI가 아닌 인간 저자가 져야 합니다. 이 책임감이 있는 한, 그 글은 여전히 '내 글'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결국 AI가 문장을 제공한다 해도, 그것을 '내 글'로 만드는 순간은 나의 손끝에서 완성됩니다.
앞으로 글쓰기의 풍경은 더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저자의 이름만을 요구하겠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글이 인간과 AI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언젠가는 '공동 저자: 인간과 AI'라는 문구가 당연해질지도 모릅니다. AI가 아무리 많은 문장을 내놓아도, 그 문장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의 온기를 불어넣는 것은 여전히 인간입니다.
"내 글일까, 우리의 글일까." 여전히 이 질문 앞에서 망설입니다. 그러나 그 망설임은 글쓰기를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모호한 경계 위에서, 더 치열하게 나의 언어를 찾습니다. AI가 준 문장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그 문장을 의심하고 변형하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나의 글'이 더 분명해집니다. 망설임은 더 깊은 글쓰기로 이끄는 동력이 됩니다.
글은 혼자 쓰는 듯 보이지만,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쓰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책과 대화하며, 타인의 언어와 씨름하며 글을 썼습니다. 이제는 AI와의 대화가 그 목록에 추가되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내 글이면서 우리의 글이라는 사실은 당연합니다. 글은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것들 - 진정성, 책임감, 그리고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입니다. 망설임 속에서도 계속 쓰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