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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4개와 경험 8년

자격증 보다 경험

by jeromeNa

학원 강사를 하던 때였다. 경력은 8년 정도 쌓인 상태였고, 자격증은 하나도 없었다. 강의는 문제없이 진행했다.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프로젝트 진행 방식과 코드를 가르쳤다. 어느 날 학원 측에서 강사는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8년간 현장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3D 디자인부터 시작해 웹 개발, 키오스크 개발, 쇼핑몰 구축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코드는 실전에서 익혔고, 오류는 밤을 새워 해결했다. 클라이언트와 협상하고, 팀원들과 소통하며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그런데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시험에 응시했다. 1년 동안 4개의 자격증을 땄다. 별도로 공부한 건 없었다. 시험 이틀 전에 문제집 한 권을 풀어보는 게 전부였다. 문제를 보면 답이 보였다. 8년간 현장에서 부딪히며 익힌 것들이었다. 데이터베이스 설계, 알고리즘, 시스템 구조. 모두 프로젝트에서 직접 다뤘던 내용이었다.


시험장에서 문제를 풀며 생각했다. 이건 인증일 뿐이라고. 지금까지 해온 것을 증명하는 서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격증을 따고 나서 실력이 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던 것을 확인했을 뿐이니 당연했다.


학원에서 만난 학생들은 달랐다.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공부했다. 문제집을 달달 외웠다. 시험 문제 유형을 분석하고, 기출문제를 반복했다. 그렇게 몇 달을 투자해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몇 주 지나지 않아 배운 내용을 잊어버렸다. 실무에 투입되면 당황했다. 프로젝트 진행 방식도, 팀원과의 소통도, 화면설계서 읽는 법도 몰랐다.


한 학생이 물었다. 자격증을 따면 취업이 되냐고. 솔직하게 답했다. 자격증은 참고용일 뿐이라고. 정보처리기사 정도면 충분하고, 그마저도 필수는 아니라고. 바리스타 자격증처럼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증명 정도의 의미라고.


경험이 답이다. 3개월간 프로젝트에 참여해 실제로 코드를 짜고, 오류를 해결하고, 팀원과 협업하는 것. 그게 1년간 자격증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가르쳐준다. 스케줄 관리하는 법, 메일로 소통하는 법, 화면설계서 전체를 보는 법. 이런 건 문제집에 없다.


쇼핑몰 프로젝트에서 만난 개발자 중 한 명은 자격증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었다. 이론도 완벽했다. 하지만 프로젝트에 투입되자 어려움을 겪었다. 기능 하나에 일정을 다 써버렸다. 화면설계서 전체를 보지 않고 자기 담당 부분만 봤다. 데이터 흐름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다른 개발자에게 업무를 넘겨야 했다.




자격증 공부가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다. 학습지에 나온 내용은 분명 실무에서 쓰인다. 데이터베이스 설계, 자료구조, 알고리즘. 모두 중요한 개념이다. 문제는 그 지식이 자격증을 딴 후에도 남아 있느냐는 것이다. 시험을 위해 암기한 지식은 휘발성이 강하다. - 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는 있다. 하지만 개발분야에서 자격증이 필요한 부분은 아직은 회의적이다. -


반대로 프로젝트에서 부딪히며 익힌 건 다르다. 3만 줄짜리 파일을 인수인계받아 처음부터 다시 짤 때, 같은 기능이 수십 군데 복사돼 있는 걸 발견할 때, 그 경험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배운 것이다. 다시는 그런 코드를 짜지 않게 됐다.


테스트 기간에 매일 쏟아지는 오류 리스트를 처리하며, 메일 한 통 놓쳐서 일주일 지연됐을 때, 고객과 회의하며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때. 그때마다 배웠다. 자격증 시험에는 나오지 않는 것들.


학원 강사로서 학생들에게 말했다. 자격증 공부에 몇 달을 쓰지 말라고. 그 시간에 간단한 프로젝트라도 하나 만들어보라고. 혼자서든 팀으로든 실제로 서비스를 기획하고, 설계하고, 개발해 보라고. 그 과정에서 오류를 만나고, 해결하고, 소통하는 경험. 그게 실력이라고.


물론 현실은 달랐다. 많은 학생들이 자격증 취득반을 선택했다. 기업에서 자격증을 요구한다는 이유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신입 채용 공고에 자격증 우대라는 문구가 있다. 하지만 실제 면접에서 중요한 건 따로 있다. 프로젝트 경험, 소통 능력, 문제 해결 능력. 자격증은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다.




25년 가까이 개발 분야에 있으면서 봤다. 자격증 없이도 실력 있는 개발자들. 반대로 자격증 여러 개 가지고도 프로젝트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결국 현장이 답이다.


지금도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 자격증부터 따지 않는다. GitHub에서 샘플 코드를 다운로드하여 실행해 본다. 오류가 나면 수정한다. 그 과정에서 배운다. 책을 읽고, 문서를 찾아보고, 직접 코드를 짜본다. 시험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걸 만든다.




자격증 4개는 여전히 이력서에 적혀 있다. 하지만 면접에서 그걸 물어본 곳은 거의 없었다. 대신 어떤 프로젝트를 했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 어떻게 팀과 협업했는지를 물었다. 그게 실력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경험 8년이 만든 자격증 4개. 순서가 중요했다. 경험이 먼저였고, 자격증은 그걸 인증하는 도구이다. 반대로 가면 효율이 떨어졌다. 시간도, 에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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