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데이터가 담지 못하는 것

사라지는 것들의 이름.

by jeromeNa

혈압약을 타야 해서 병원을 방문했다.


이전에 했던 혈액 검사 결과가 숫자로 변환되어 출력됐다. 의사는 그 숫자들을 보며 "이상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수치가 정상 범위 안에 있으니 건강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요즘 피곤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오후만 되면 집중력이 흐려지고, 주말에도 개운하지 않았다. 몸 어딘가가 아픈 것은 아닌데, 괜찮지 않았다.


의사에게 말했다.

"요즘 좀 힘들어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치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스트레스를 받고 계신가요?"

그리고 충분히 쉬라는 조언과 함께 진료가 끝났다.


숫자에는 내 피로가 담기지 않았다. 데이터는 정상이었지만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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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는 측정할 수 있는 것을 담는다.


키, 몸무게, 혈압, 심박수. 클릭 수, 체류 시간, 구매 금액, 방문 횟수. 시험 점수, 출석률, 업무 성과 지표. 숫자로 표현되고, 저장되고, 비교될 수 있는 것들. 데이터의 영역이다.


데이터의 힘은 명확함에 있다. 모호한 것을 선명하게 만들고, 주관적인 것을 객관적으로 바꾼다. "좀 나아진 것 같아요"보다 "수치가 10% 개선되었습니다"가 더 확실하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것을 데이터로 바꾸려 한다. 측정하고, 기록하고, 분석한다.


하지만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왜 피곤한지. 무엇이 나를 지치게 하는지. 언제부터 이랬는지. 이런 것들은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다. 기계에 감지되지 않는다. 데이터 밖에 존재한다.




한 학생의 성적이 떨어졌다.


데이터는 이렇게 말한다. 중간고사 평균 85점, 기말고사 평균 72점. 13점 하락. 출석률 95%에서 88%로 감소. 과제 제출 지연 횟수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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