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같은 사건, 다른 의미

이야기를 안다는 것

by jeromeNa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카페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비 오는 이런 날이 좋아. 왠지 센치해지고, 마음이 편해져." 다른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우중충 하잖아. 이런 날은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


같은 비다. 같은 날씨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는 평화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우울이다. 비는 그냥 비일 뿐인데, 사람마다 다른 의미가 된다.


비 자체가 달라서가 아니다. 비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가진 기억, 경험, 연상.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의 추억, 비와 함께한 어떤 순간, 비가 내릴 때 느꼈던 감정들. 그것이 지금 이 비에 의미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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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건이 다른 의미를 갖는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중요한 진실이다. 세상의 사건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의미는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 안에서 만들어진다.


해가 뜬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고, 누군가에게는 불면의 밤이 끝났다는 안도이고, 누군가에게는 또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피로다. 해는 그냥 뜰뿐이다. 의미는 각자가 붙인다.


전화벨이 울린다.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소식의 기대이고, 누군가에게는 또 무슨 일이냐는 불안이고, 누군가에게는 방해받았다는 짜증이다. 벨소리는 같다. 반응은 다르다.


의미는 사건 안에 있지 않다. 사건과 사람 사이에 있다.




두 사람이 같은 날 회사를 그만두었다.


한 사람은 3년 동안 준비한 창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퇴사 서류를 내면서 가슴이 뛰었다. 드디어 시작이다. 두려움도 있지만 설렘이 더 크다. 이 퇴사는 도약이다.


다른 한 사람은 조직에서 밀려났다. 구조조정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퇴사 서류를 내면서 손이 떨렸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이 퇴사는 추락이다.


서류상으로는 똑같다. '퇴사'. 데이터로 보면 같은 사건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한쪽은 가장 좋은 날이고, 다른 쪽은 가장 힘든 날이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까. 서사다. 그 사건이 놓인 이야기가 다르다. 한 사람의 서사에서 퇴사는 새로운 장의 시작이고, 다른 사람의 서사에서 퇴사는 원치 않은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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