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브이- 알고보면 쓸데있는 브랜드 이야기
Eskimo pie
크림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는 재정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때마침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슈어드가 1867년 불과 720만 달러, 즉 1 km²당 5달러가 채 못 되는 헐값으로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이는 조약을 체결했다. 일부 미국 국민들은 알래스카를 슈어드의 냉장고, 슈어드의 바보짓이라며 비난했으나 1880년대 금이 발견되자 미국인의 정착이 크게 늘게 되었고, 1912년 의회의 인준을 받으면서 알래스카 준주가 설치되었다.
이후로 알래스카에서 금, 은, 석유 등을 비롯한 각종 자원과 금속들이 발견되었다. 알래스카에서 채굴된 철광석만으로도 당시 기준으로 720만 달러의 몇 배나 되는 4,000만 달러어치나 확인되었다. 알래스카에 매장된 철만 이 정도인데 다른 금속 및 자원의 양을 고려한다면 알래스카 매입은 사실상 제정 러시아가 미국에 공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현재 미국은 중동, 베네수엘라에 이어 세계 석유매장량 3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알래스카의 엄청난 석유 매장량 때문임을 감안 한다면 이는 더욱 명확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과의 알래스카 최서단 애투섬 전투로 인해 알래스카에 간선도로와 더불어 방어시설을 구축하게 되는 등 실효적 과정을 거쳐 알래스카는 1959년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었다.
북극점으로부터 약 4.000km 거리인 앵커리지를 중심으로 자연의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얼음 나라 알래스카는 울창한 원시림, 3천여 개의 강, 5천여 개 이상의 빙하와 빙산, 호수 등이 모두 하얀 장막 안에 숨 쉬고 있는 눈의 나라, 꿈의 대륙이다.
눈의 나라, 꿈의 대륙 알래스카의 원래 주인은 에스키모(Eskimo)라고 불리는 이누이트(Inuit)다.
에스키모는 알래스카 원주민인 이누이트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여기에는 유럽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원주민을 야만인으로 비하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922년 미국의 드라이어스 그랜드 아이스크림은 겉에 초콜릿이 입혀진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에스키모 파이(Eskimo pie)라는 이름으로 출원한다.
100년 역사의 미국 아이스크림 '에스키모 파이'는 이렇게 탄생했다.
에스키모 파이 탄생 거의 100년이 다되던 2020년 5월, 미국에서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강압적인 체포 과정에서 목이 눌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해묵은 인종차별 문제가 재 점화 되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인종차별 철폐 요구(Black Lives Matters protests)가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에도 여파가 미쳤다. 차별의 의미를 담은 이름이나 이미지를 가진 아이스크림, 젤리 등의 간식 제품에 대한 퇴출 요구가 쏟아졌다.
이런 목소리가 당시 반인종차별 정서와 맞물려 불매 운동으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자 해당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도 차별적 이름 또는 이미지를 바꾸는 작업에 나섰다.
결국 100년 가까이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아이스크림 '에스키모 파이'도 인종차별 논란에 브랜드와 홍보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에스키모 파이를 판매하는 드라이어스 그랜드 아이스크림은 2020년 6월 성명을 내고 ‘에스키모가 경멸(derogatory)적 표현임을 인정한다’면서 인종차별 해소에 일조하는 차원에서 이름과 로고 등을 바꾸겠다고 밝혔고 이듬해인 2021년 에스키모 파이는 드라이어스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조셉 에디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를 담아 ‘에디스 파이(Edy’s Pie)로 브랜드를 변경했다.
나사(NASA)도 'NGC 2392 성운'의 별칭인 '에스키모 성운'과 'NGC 4567 성운'의 별칭인 '샴쌍둥이 성운'이란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샴쌍둥이는 19세기 태국에서 한 몸으로 태어난 형제에서 비롯된 결합쌍생아를 이르는 용어인데 이들이 서구 관객을 대상으로 서커스단에서 괴기스러운 쇼를 하며 생활했다는 것을 빗대어 기괴한 동양인을 의미하는 비하의 시선이 깔리게 되었다.
나사는 ‘우주의 어떤 별칭과 용어들에 불쾌하고 무례한 역사적ㆍ문화적 함의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게 분명하다’면서 ‘나사는 다양성과 평등, 포용에 대한 헌신의 일부로서 별칭 사용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스키모 파이보다 더 긴 역사를 가졌으나 당시 인종차별 철폐 목소리로 아예 모습을 감추는 이름도 있었다. 바로 팬케이크 베이킹 재료인 ‘앤트 제미마(Aunt Jemima)’라는 브랜드다.
2020년 6월 미국 식품업체 퀘이커 오츠는 자사 브랜드 중 하나인 앤트 제미마를 퇴출하겠다고 밝혔다. 앤트 제미마는 1889년 첫 선을 보인 뒤 미국 가정에서 오랜 사랑을 받아온 130년 역사의 식품 브랜드다. 그러나 이 브랜드의 이름과 대표 이미지는 흑인 여성이 백인의 수발을 드는 전형적인 흑인 노예 여성상에서 비롯되어 인종차별을 조장하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에 퀘이커 오츠는 캐릭터가 쓰고 있던 두건을 없애고 진주 귀걸이를 추가하는 등 유모 이미지를 벗겨내려는 노력을 해왔으나 반인종차별 논란이 확산되자 결국 퇴출을 결정했다.
스위스 최대 식음료 업체 네슬레도 2020년 인종차별적 단어를 사용한 일부 제품명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해당 제품은 호주에서 판매 중이던 캐러멜 ‘레드 스킨스(Red Skins)’와 젤리 ‘치코스(Chicos)’였다.
레드 스킨스는 인디언 원주민을 비하하는 표현이며 치코스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 사람들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네슬레는 ‘우리의 친구와 이웃, 동료들을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며 ‘이밖에도 사용하고 있는 표현이나 이미지에 고칠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2만 여 개 제품 브랜드를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이슈로 비판받았던 미식축구구단인 워싱턴 레드스킨스(Washington Redskins)도 2022년 ‘커맨더즈(Commanders)’로 팀 이름을 바꿨다.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테마파크에도 반인종차별 이슈로 변화가 생겼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디즈니랜드와 플로리다 디즈니월드는 그동안 인종차별 유산이 뿌리 깊게 남아있던 미국 남부를 낭만적으로 미화했다는 지적을 받아온 ‘스플래시 마운틴(Splash Mountain)’을 새롭게 단장하겠다고 2020년 6월 밝혔다. 2024년 이 놀이기구는 디즈니 역사상 첫 흑인 공주가 나오는 애니메이션 ‘공주와 개구리(The Princess and the Frog, 2009)’를 테마로 새롭게 꾸며지게 되었다.
June 2020 = Racism x Branding
2020년 6월은 인종적 선입견(Racial stereotyping)과 브랜드의 뜻밖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브랜드의 지향점을 재정립하는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고 또 6월이 되었다.
이제 브랜드는 소비자의 구매 욕구가 아닌 그들의 ‘신념(faith)’을 바라봐야 하는 명제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인종주의(人種主義 Racism)와 맞닥뜨린 브랜드가 어떤 태도(attitude)를 취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며.
브랜드의 패러다임(paradigm)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