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구원은 어디에 있을까?
어느 가톨릭 커뮤니티에서 암을 극복하였다는 감사의 글을 읽었다.
몸에서 느낀 작은 불편함으로 찾았던 병원에서 '초기 암'이라는 선고를 받았고, 비록 초기라 할지라도 '암'이라는 질병의 무게에 그의 모든 일상과 정신이 짓눌렸다. 하필 자신에게 찾아온 이 불행을 탓하며 공포에 떨면서 아이들과 가족 생각에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두려움 속에서 신에게 매달린 그는 어느 순간 하느님의 돌보심이 곁에 있음을 느꼈고, 그 힘으로 공포를 이겨내고 수술대에 올랐다고 한다. 이제는 건강을 되찾아 평온한 일상을 회복한 그는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의 은혜로 가득 찬 고백을 읽으며, 몇 해전 세상을 떠난 내 친구가 떠올랐다.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입원 1주일 만에 세상을 떠난 친구.
그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고인이 '신을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갔다는 무책임하고 잔인한 종교인의 확신을 들으며, 신의 구원과 은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며, 오늘 '신의 은총'으로 암을 극복하였다는 저 글을 읽으며 인간의 고통과 신의 은총에 대한 질문을 다시 떠올린다.
질병의 고통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기적과 신의 은혜를 찬미하지만, 그 은총의 이면에는 똑같은 질병과 고통에 소리 없이 죽어간 수많은 이들이 존재함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살아남은 자의 감사가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차별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 만약, 신의 은총이 선택적으로 내려지는 것이라면 인간의 생명을 갖고 살리고 죽이는 놀이를 하는 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신의 은총으로 내가 살았다는 확신은, 반대로 죽어간 이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불편 부당한 죄책감을 안겨준다. '정성이 부족해서' 혹은 '믿음이 없어서' 그들의 운명이 그렇게 갈린 것이다라는 '영적인 우월감'은 그들의 아픈 상처를 후벼 파는 잔인함이다.
그렇다면, 신의 은총은 악인과 선인 모두에게 내리는 햇살처럼 공평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고통과 악이 만연한 이 세상에서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 신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인간이 갖는 근원적인 공포, 그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신의 옷자락에 매달리는 간절함, 그리고 갈라지는 운명들. 그 자리에서 신의 은총은 내게만 내리는 따스한 햇살일까? 모두에게 골고루 내리는 비와 같은 것일까?
어쩌면, 신의 개입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이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목적으로 흘러가는 것이며, 그 침묵 속에 감춰진 신의 참 뜻은 무엇일까?
정돈되지 않은 생각들이 바람에 흩날린다.
비워진 마음으로 조용히 기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