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얼음의태양 Apr 13. 2022

기억할만한 지나침

데자뷔


 기이일이었다.

5살이었던 나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길가에 앉아 누군가가 버린 담배꽁초를 살짝 만져보고 있었다.

순간 내 안에 누군가 내게 말을 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어두운 색 양복을 잘 차려입고 가방을 들었던 그는 어느 건물 입구로 올라가는 긴 계단의 중간쯤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또 말한다.

이상했다. 분명 그도 나도 나였다.

분명 나는 건장한 어른이었는데, 앉아 있은 다른 아이인 나에게 묻고 있었다.

이건 아닐 거야라고하며, 계단을 오르던 내가 중얼거렸다.

내가 왜 여기 있지,라고 다시 물었을 때 내 손에 뜨거운 것이 만져졌다.

아 뜨거워. 하며 손을 놓았을 때 작은 아이가 만지던 담배꽁초가 손에서 떨어졌다.

남아있는 불씨가 내 손에 닿아 떨어지듯 나는 그 이상한 찰나의 몰입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내가 왜 여기 있지라고 묻던 그 어른의 나를, 살면서 언젠가 만날 때가 오겠지, 어렴풋이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요즘, 가끔 출근을 하며 건물의 계단을 오를 때, 그때가 내가 지금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침에 그때와 비슷한 본관의 건물로 들어가며, 그 계단의 중간쯤에서 나는 그 장면을 떠올려본다.


다시 이 건물에 들어오게 된 지 3개월이 지났다.

이 부서를 떠나 다른 부서를 가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세상과 같이 움직이고 있는데, 나만 다른 곳에서 정체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무 가진 것도, 이루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내지도 못한, 나 홀로 동떨어진 느낌.


그리고 정확히 3년 뒤 나는 전보명령과 함께 그 부서에 다시 돌아왔다.

오판이었다. 나만 정체되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이곳은 내가 홀로 떨어지고 부유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도 할 수 없을 만큼 나를 괴롭히고 몰아세우는 곳이라는 것을 내가 잊고 있었다.

그런 곳이었기에 떠나서도 내가 정신적인 공황이 있었던 그런 곳이었다.


내가 왜 여기 있지.라는 질문을 받았던 그 꼬마의 기억이 요즘 자주 난다.

그 질문은 어른의 현재의 내가 내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과 같기 때문인 것 같다.

직책을 받아 다시 돌아왔지만, 돌아왔다고 하기에는 너무 어색할 정도로 모든 게 낯설고 어설프다.


현실의 무게감 앞에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서기(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기형도의 시 <기억할만한 지나침>


작가의 이전글 명절이 지옥같을 때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