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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Mar 08. 2016

[대중문화 이야기]

네버엔딩 막장드라마, 어떻게 봐야하나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소위 ‘막장드라마’는 제작진과 방송사의 무책임, 그리고 비양심이 빚어내는 결과물이다. 대중문화 전반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는 심각한 수준의 드라마를 내놓고도 그저 시청률을 올려 화제성만 높이면 그만이라는 태도다. 최근 종영한 MBC 주말극 ‘내 딸, 금사월’로 인해 또 한번 막장드라마가 방송계의 화두로 떠올랐는데 이번에도 역시 ‘막장드라마 퇴출’에 여론이 집중되고 있다. 대중의 비난이 이어지고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회까지 개최하며 대책 마련을 논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논란은 센 막장드라마 한 편이 나올 때마다 매번 반복된 것이라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막상 막장드라마 제작을 막을 수 있는 대책도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고 시청자들의 비난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방송사는 시청률 상승을 위한 특효약으로 막장드라마를 선택할 게 뻔하다.      



임성한 빠진 자리에 김순옥이 왕 노릇 

지난해 이 분야의 1인자였던 임성한 작가가 은퇴선언한 후 ‘고강도 막장드라마’의 계보가 끊어진 듯 했다. ‘하늘이시여’ ‘신기생뎐’ ‘오로라 공주’ ‘압구정 백야’ 등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드라마로 퇴출 논란을 부추겼던 작가다. 그 외에도 막장드라마 전문 작가라 불릴만한 인물들이 있었지만 임성한의 거침없는 필력을 따라잡을만한 이는 없었다. 좋게 말하면, 아무리 막장드라마를 쓴다고 해도 임성한처럼 막 나가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고 어이없게도 김순옥 작가가 ‘내 딸, 금사월’로 임성한의 뒤를 이었다. 사실 김순옥도 장서희의 얼굴에 점을 찍어 복수극을 펼친 ‘아내의 유혹’으로 대표적인 막장드라마 작가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 뒤로도 ‘왔다! 장보리’ 등을 내놓으며 꾸준히 막장드라마를 집필했지만 그렇다고해서 전체적인 완성도가 임성한처럼 심하게 떨어지진 않았다. ‘왔다! 장보리’만 해도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만들어 몰입도를 높이고 나름 설득력있는 전개를 보여줬다. 그래서, 김순옥을 평가할 때 따라붙는 설명은 대개 ‘막장코드를 사용하되 적당선은 지킬 줄 아는 작가’였다. 

이것도 칭찬이라면 칭찬인데, 김순옥 작가는 이런 식의 평가를 ‘임성한보다 못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나보다. 아니면 ‘왔다! 장보리’의 뜨거운 인기에 함몰돼 자제력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필력이 떨어져 스스로도 어쩔줄 몰라 허우적거렸음이 분명하다. 그나마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있었던 작가지만 최근작 ‘내 딸, 금사월’에서는 어떤 인물도 설득력있게 묘사하지 못했다. 후반으로 가면서 사건은 널을 뛰고 각 캐릭터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심경의 변화를 보이며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사월이라는 주인공 캐릭터를 타이틀롤로 내세워놓고도 막상 중후반으로 가면서 다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했다. 전작에서 보여준 통쾌한 복수도 이번에는 밋밋했다. 오히려 종영 전 달랑 2회 분량을 통해 그동안 서로를 향해 이를 갈던 캐릭터들이 난데없이 화해하는 과정을 그려 실소를 자아냈다. 임성한을 넘어서진 못했지만 ‘뒤를 바짝 쫓아간’ 수준이었다. 그리고 임성한을 뛰어넘을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한 방’이었다. 

막장드라마계 최고 몸값을 자랑했던 임성한 작가의 고료가 회당 약 3000만원 수준이었는데 김순옥 작가 역시 ‘왔다! 장보리’의 대히트와 함께 비슷한 액수를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100회가 넘는 일일극 한 편 마음 가는대로 휘갈기고 수십억 원을 챙겨간 임성한처럼, 김순옥 작가도 크게 베팅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가진 게 아닐까. 뭐가 됐든 심각한 뒷심 부족 현상을 보여준 건 사실. 상업적 성공이란 목적하에 의도적으로 막장 수준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지갑을 두둑하게 채웠으니 김순옥은 작가라는 직함을 상기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임성한 작가에 이어 김순옥까지 꾸준히 막장드라마계 스타를 양산하고 국내 대중문화의 질적 하락을 초래한 MBC도 깊이 반성해야 한다. 물론, 아무리 비난해도 귀를 막고 눈 앞의 성공에 웃음 지을거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내 딸, 금사월'의 포스터 


막장드라마로 비난 받아도 상업적 성공은 보장돼 

방송사가 막장드라마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상업적 성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막장드라마의 특징 중 하나가 과도하게 설정된 사건과 캐릭터, 쉴새없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빠른 전개로 자극을 주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건데 이로 인해 시청자들은 욕을 하면서도 멍하니 채널을 고정하게 된다. 자연스레 시청률은 올라가고 해당 콘텐트 앞 뒤로 광고 판매율과 단가도 올라간다. 경쟁사에 제압돼 시청자들의 채널 충성도가 떨어졌다고 느낄 때 단번에 재유입시킬 수 있는 처방으로 막장드라마가 제격인 셈이다. 막장드라마를 편성한다는 이유로 업계와 대중의 비난을 감수해야하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돈벌이를 위해서는 이 정도 되는 센 카드가 없으니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밖에 없다. 

‘내 딸, 금사월’이 전반적인 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하락세 속에서도 35%에 달하는 높은 기록을 세우며 막장드라마 논란을 재점화했지만, 사실 지상파의 막장드라마 편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아침드라마의 경우 막장코드로 채운 작품이 방영되는 예가 비일비재하고 저녁 시간대 일일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아침드라마 ‘내 사위의 여자’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아내의 유혹’ ‘신기생뎐’ ‘하늘이시여’ ‘천사의 유혹’ ‘청담동 스캔들’ 등 국내 막장드라마 양산에 지대한 공을 세운 SBS의 작품이다. 제작발표회 당시에는 ‘절대 막장이 아니다’라는 말로 일관해놓고 초반부터 혼전임신에 낙태 등 자극적인 설정으로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 시간대 전작은 고부사이가 뒤바뀐다는 기막힌 내용의 ‘어머님은 내 며느리’였다. 

MBC는 심지어 프라임 시간대인 월화드라마 편성 슬롯에도 막장코드를 곁들인 ‘화려한 유혹’을 편성해 눈길을 끈다. MBC 역시 ‘인어아가씨’ ‘보석비빔밥’ 등으로 SBS와 함께 임성한을 키우고, ‘백년의 유산’ ‘압구정 백야’ ‘왔다! 장보리’에 이어 ‘내 딸, 금사월’까지 막장드라마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중이다. 

흔히 막장드라마를 만드는 쪽에서는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는 게 당연한 일’이라며 그들 나름의 논리를 내세운다. 과거 SBS 드라마 고위 관계자는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제발 ‘막장’이란 단어 좀 안 쓰면 안 되겠냐”고 항의한 적이 있다. 당시 SBS는 임성한의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었고 필자는 “저질 드라마라고 표현하면 괜찮겠냐”고 받아쳤다. 

‘수요가 있으니 만들어진다’는 말은 분명 자본주의 사회에서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아침 드라마의 경우 이른 아침 회사 또는 학교로 향하는 가족을 챙겨준 주부들이 주로 집안일을 하다 곁눈질로 시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타깃층이 처한 환경을 고려한다면 집중해야만 따라갈 수 있는 스토리보다 단순하고 자극적인 막장코드를 사용하는게 승부수가 될 수 있다. ‘원하는 이들이 있는데 무조건 막장드라마를 욕하기만 하는 것도 대중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막장드라마 제작진의 항변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그런데, 이를 두고 ‘뼈를 깎는 노력의 산물’이라든가 ‘작품성’ 운운한다거나 ‘막장이라고는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건 못 참겠다. 조직과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이 만나 만들어낸 치졸한 결과물일 뿐이다. 누구보다 막장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라는 게 더 큰 문제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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