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영화는 무엇입니까?” 옆에서 통역사 분이 다시 한 번 물으셨다. 굳은 얼굴로 앞에 앉은 기자들을 쳐다본다. 멈출 줄 모르고 계속 터지던 플래시가 일순간 조용해진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질문한 기자를 응시한다. “왜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거죠?” 나는 기자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로 되묻는다. 통역사는 당황한 듯이 망설이다가 곧바로 영어로 번역한다. 난생 처음 기자회견이라는 것을 해 본 나는 그렇게 예민한 감독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감독이 된 지는 한참 지났다. 내가 전 재산을 털어 만든 첫 작품은 관객 수 고작 203명으로 막을 내렸다. 아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으고 가족, 친지까지 동원한 결과였다. 많은 관객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본 사람들은 감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의 예술감각을 알아 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역시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다들 어쩜 그렇게 웃는 얼굴에 침을 잘 뱉는 지 혹독한 평을 견뎌내야만 했다. 가족들까지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영화였다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작심하고 만든 두 번째 작품은 모두의 평을 가슴에 새기고 머리에 되뇌이며 만들었다. 나만의 강렬했던 색채는 조금 빛 바랬지만 나름의 예술성은 간직한 작품이었다. 아니 그렇게 받아들여지길 바랬다. “도대체 왜 영화를 계속 하겠다는 거야? 식구들 굶어죽이려고 작정했어?” 보다 못한 아내는 나에게 소리치고 집을 나가버렸다. 친정에 갔다는 아내는 간간히 소식을 들려줄 뿐 얼굴보기 힘들었다. 월세며 전기세며 차곡차곡 밀리는 걸 보니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디어 들었다.
이번에 낸 영화는 철저하게 나를 감췄다. 마치 인스턴트 음식을 시켜 먹듯이 자극적이고 잔인한 것들로 점철시켰다. 서사도 감독인 나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우연이 겹치고 겹쳐 막장에 다다른 스토리였다. 차라리 혹평을 잔뜩 듣더라도 뭐든 만들고 그만 두겠다는 심보였다. 내가 그동안 들은 혹평들이 너무 마음이 아파 발악이라도 하고 영화를 접으려는 속셈인 것이었다.
하지만 개봉 날이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날수록 반응이 이상했다. 매번 영화를 공개하면 내 예상과 달랐던 결과가 다가오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연일 기사가 쏟아지고 평론가들의 극찬이 쏟아졌다.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아 내 영화가 걸려있는 극장에 잠입해봤다. 영화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화장실에 숨어 들어가보니 관객들이 물 밀 듯이 밀려 들어왔다. 감탄과 찬양이 이어졌다. 나는 나만 모르는 세계에 들어와있는 기분이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집으로 들어갔다. 평론가들의 평을 찬찬히 살펴봤다. 예술적이다,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왜 이런 인재를 알아보지 못했을 까. 들어보지도,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내용들이 쏟아졌다. 나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아 무슨 영화를 보고 평들을 늘어놓은 건지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나는 어느날엔가 갑자기 예술적인 감독이 되어있었다. 그것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세기의 천재가 되어버렸다.
나는 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영화라고 내 영화를 짚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구역질이 나올 정도다. 다들 미쳐버렸다. 내가 천재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미쳐버린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