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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날개 Feb 04. 2021

[산티아고 순례길] 발길 닿는 대로 인연 닿는 대로!

[17일] 아따뿌에르까(Atapuerca) 가는 길

아띠뿌에르까(Atapuerca)까지 18.6킬로! 비록 20킬로 못 미치는 길이지만, 12킬로 넘는 산길을 쉬지 않고 오르고 내려가려면 조금 지친다.


<알아두면 좋아요>

아따뿌에르까는 작은 마을이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유럽에서 제일 오래된 인류의 고향이자, 중세에 결정적 전투가 치러진 곳이다. 3킬로 떨어진 곳에 백만 년 전의 인류인 ‘호모 안테세소르’의 유적지가 있다. 인류 진화론에 대한 혁명적 토대를 만들어 준 곳이다. 호모 안테세소르는 네안데르탈인 이전의 인류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라고 한다.
아따뿌에르까에서는 어린 양고기 구이를 즐길 수 있다.  매년 8월에는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주민들이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 축제가 열린다.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자료 참조-






한국인


지루한 산길이다. 이제   없는  길을 죽어라 배낭 메고 오르내리는 일만 남았다. 12킬로 넘는  내내!돌멩이로 누군가 화살표를 만들어놨다. 사랑마크다. 연인이 함께 걸으며 이런 사랑놀음을 했으려나? 아니면 홀로 걷다 그리운 이를 떠올리며 사무치는 마음으로 돌을 놓았을까? 그도 아니면 언젠가 오실  사람을 위해 미리부터 안내해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누구든, 지금은 내가  사람이다.   


사람들이 지나간다. 젊은 동양인이다.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홍콩 사람이란다. 빠른 걸음으로 사라진 그녀!

얼마 뒤 또 다른 동양인이 지나간다. 이 친구도 젊다. 역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자, 오,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그런데 뒷말이 예상 밖이다. 한국 인사말을 배운 대만인이다. 그녀 역시 빠르게 사라진다.


다시 얼마간 걷자 또 다른 동양인이 나타났다. 젊다. 이제 섣부른 한국말은 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그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넨다.

“부엔 까미노! 한국분이시죠?”

“아, 안녕하세요. 드디어 한국 분이시군요. 앞에 동양 사람을 한국인으로 오해했어요! 하하하!”

“제 일행이에요.”

“아, 단체로 오셨구나!”

“와서 만났어요. 어쩌다 보니 같이 다니게 됐어요.”

“국적이 버라이어티 하네요?”

“맞아요, 함께 다니는 사람들 중에 한국 신혼여행 커플도 있고, 미국에서 온 분도 있고, 스페인 요리사도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일찍 출발해서 앞에서 걷고 있을 거예요. 뒤에 오시는 분들도 있고요.”

"아! 정말 재미있게 다니시네요. 좋으시겠어요.”

“좋긴 한데, 가끔 불편할 때도 있어요.”

처음 본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자신의 얘기를 풀어내는 여인은 자존감이 높아 보였다. 순례길에서 잘 볼 수 없는 컬러풀한 화장, 특히 빨간 립스틱이 어두운 숲길에서 빛났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다시 입을 연다.

“함께 집을 빌려서 사용하면 더 저렴하거든요. 근데 침대 고를 때 조금 스트레스더라고요.”

"아! 그런 불편함이 있군요!"  

빨간 립스틱 여인은 처음에는 도도한 사람 같더니, 점차 활달한 성격을 드러냈다. 한참 나와 얘기를 나누던 그녀도 역시 앞서 걸어간다.




이모의 등장


그러고 보니 재미있다. 내가 계속 따라 잡히는 꼴이다. 마라톤으로 치면 레이스에서 나를 치고 나가는 선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뒤에 오는 선수들은 또 언제 와서 나를 치고 나갈까? 부지런히 걸어봤지만 역시 얼마 못 가 다음 타자를 만난다. 자그마한 체구의 한국인 아줌마 등장! 반가웠다.

“안녕하세요! 혹시 대만 홍콩 분들과 함께 여행하시나요?”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안녕하세요!”

참 좋은 인상을 가진 분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만드는 얼굴, 저 얼굴은 그저 한 세상 잘 흘려보낸 얼굴이다. 악착 같이 세상과 맞서 싸우지도, 나를 버린 세상을 원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적당히 잘 먹고 잘 살며 잘 베푼 얼굴! 사랑도 많고 인정도 많은 얼굴, 꼬인 거 없이 인생 잘 풀어낸 얼굴!

"젊은 친구들과 묻어서 여행 중이에요. 다들 저를 이모라고 불러요."

국밥집에서 고기 많이 달라고 애교 부리며 부르던 '이모'가 순례길에서도 쓰일 줄이야. 어느새 '이모'는 중년을 일컫는 보편적 호칭이 되었다. 그런데 이모는 있는데, 왜 고모는 없지? 6명의 조카 중, 4명은 나를 고모라고 부르고, 2명은 나를 이모라고 부른다. 고모라고 부를 때는 내가 고모 같고, 이모라고 부를 대는 내가 이모 같다. 희한하네? 어쨌든 이모 고모는 조카들로부터 많이 들었다. 나는 밖에서 이모, 고모로 불리고 싶지 않다. 나는 영원한 언니가 되리라. 늙은 언니, 왕 언니, 다 좋다. 맛 간 언니라고 해도 수용! 언니면 된 거야! 상대가 인정하지 않아도 나는 오늘도 '이 언니는 말이지~! 라떼가 좋아!'로 계속 세뇌시킬 것이다. 그러면 지겨워서라도 '그러시든가' 하겠지! 좋아, 자연스러워!


이모는 '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어쩌다 보니 젊은 친구들이 순례길에서 인사는커녕 못 본 척 지나갈 때 섭섭하다고 했다. 나만 겪는 설움이 아니었다. 중년에 이 정도로 서운하면 더 나이 먹으면 순례길 바닥에서 울고 갈 판이다. 그에 비해 함께 다니는 젊은 친구들은 모두 착하단다. 혹시 부장님만 모르는 젊은 사원들의 고충은 없을까? 내가 빨간 립스틱 친구한테 뭔가 엿들은 것 같은데, 이 분 때문은 아니다. 향님은 좋은 침대를 먼저 찜할 정도로 전투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여러 사람이 모이니, 이런저런 섭섭함도 생기기 마련이다. 모두 뜯어보면 좋은 사람들인데, 어쩌다 불편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 사이가 참 어렵다.


표지석 앞에서 전신샷을 찍었다. 향님은 틈나는 대로 나를 찍어주었다. 사진 찍는 습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자기 위주의 사람인지, 타인을 위한 사람인지! 향님은 누군가를 사진으로 담기 좋아했다. 그 사진들을 보내주는 기쁨도 있었다. 사람 사이 소통이 익숙한 사람이다. 나도 자신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쑥스럽게 웃는다. 향님! 그 모습 참 좋다.


얼마간 걸으니, 나무에 그림 그린 곳이 있다. 이런저런 모양새가 샤먼적인 이다. 혼자 왔다면 오래 봤을 텐데, 누군가 옆에 있으니, 가볍게 지나치게 된다. 그래, 너무 오래 머물러 있어도 좋을 것 같진 않다.


향님은 언니 같은 사람이다. 저절로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이 있다.  

“아주 어린 친구들은 나를 엄마라고 불러요!”

“이모도 아니고 엄마요? 자식뻘까지는 아니겠는데요?”

“그게 편한가 봐요.”

“하하! 전 곧 죽어도 언니, 누나라 부르라고 해요! 요새 안 친해지면 누구누구님 그러는 거 아시죠? 누구누구 씨보다는 존중감 있는 호칭 같은데! 거리감이 느껴져 별로더라고요. 마치 당신을 존중은 해드리는데, 여기까지야. 넘어오지 마. 꼰대님! 그러는 것 같아서요.”

“하하하! 맞아요. 쉽게 친해지기 어렵더라고요.”

우린 젊은 친구들을 흉보는 것으로 소외된 마음을 달랬다.








<알아두면 좋아요>

산 후안 데 오르떼가는 12세기부터 17세기를 거치면서 교황과 주교, 왕과 귀족, 평범한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만든 까미노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 도시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스페인의 외딴 마을은 안전하고 쾌적하며 아름다운 공간으로 변했고, 순례자들은 편히 쉴 수 있게 됐다. 산 후안 데 오르떼가는 오래된 삼림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로 로마네스크와 고딕, 바로크 양식 등의 우아한 건물이 있으며, ‘빛의 기적’처럼 지금도 눈으로 경험 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자료 참조-


우린 모두 여행자


드디어 12킬로 넘는 구간을 넘어 마을이 나왔다.  후안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이다. 마을 입구에 예쁜 오두막으로 된 바가 있다. 향님과 커피 한 잔 하기로! 바에서 피자도 팔았다. 작은 피자여도 느긋하게 먹을 시간이 없다. 커피에 빵만 먹어야지 싶을 때, 향님이 피자를 먹겠냐고 묻는다. 자신이 사겠다며!

“마음은 감사한데, 나눠서 내요. 같은 순례자니까요.”

“음, 그럴까요?”

조금 매정했나? 어린 친구들한테 곧잘 사셨나 보다. 내가 동생뻘이라 사주고 싶으셨나 본데, 나까지 신세질 필요야! 뭐, 그분이 사신다면 내가 다른 걸 살 수도, 다음 코스에서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든 순례지에서든 다음을 기약하기 힘들다. 다시 만나지 못하면 마음의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사고 잊어버리는 게 낫지! 행여 얻어만 먹고 갚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릴 듯하다. 요새 젊은 친구들 중에는 나이 많다고 뭔가 사려고 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이들도 많다. 일단, 그들은 묻는다. 왜요?라고! 당신과 내가 같은 입장인데, 왜 사냐는 것이다. 나이로 언니 동생 하는 게 싫은 거다. 비슷한 또래들도 서로 말을 놓지 않는다. 또한 어린 친구들은 그렇다고 해도 나이 지긋한 분들한테도 이름'님'으로 불렀다. 일종의 닉네임처럼 이름을 부르는 것인데, 아직은 외국식 호칭이 익숙지 않다. 이 어색함들을 견뎌야 적응이 되는 것이겠지만, 아직은 발버둥 치리라. 친해지면 언니 동생으로 만들 것이다. 이게 바로 꼰대의 저격?


서로 동등한 여행자로, 순례자로 바라보다가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좋은 친구가 되고, 그때는 슬쩍 한 번씩 사줘도 되겠지! 그걸 고마워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멘트 날리면 멋지다.

“정 고마우면 다른 분께 갚으시면 됩니다.”

첫 배낭여행에서 누군가 내게 한 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순례길에서도 이 마인드는 필요하다. 천사들의 강림, 은혜를 받으면, 다른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으로 은혜를 갚으면 된다.

    

향님과 콜라를 서로 사네 마네 하는 사이, 야외 테이블에 아까 나를 앞서 갔던 대만 친구가 나타났다. 어디에 있다가 이제 나타났을까? 그녀가 테이블 의자에 짐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향님이 그녀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며 뭐 먹을 거냐고 묻는다. 자신이 사주겠다며! 이분은 사는 게 습관이 된 듯하다. 늘 여유 있게 남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어 하는 사람! 함께 값을 지불한 터라 내가 추가로 얼마를 더 내야 하나 잠시 생각한 사이, 추가분은 자신이 낼 거라며 신경 쓰지 말란다. 하긴 그녀를 위한 마음까지 내가 막을 수는 없다.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사방이 고요하다. 숲이 바로 옆에 있는 마을!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대만 친구가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안다. 이름은 강린!  아까 향님에게 일행들에게 자주 사냐며 여행자는 동등하니까 습관적으로 사지 않으시면 좋겠다 했다. 오지랖인데, 자신이 젊은 친구들을 쫒았다니는 게 미안해서 지출을 하는 듯해서 살짝 언질을 해주고 싶었다. 강린이 듣기에 삐칠 수 있는 이야기다. 본인이 마다해도 향님이 억지로 산 것인데, 그녀 들으라고 한 소리로 오해하면 말이다. 사실 향님은 이들이 자식 같고, 조카 같아서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챙겨주고 싶은 것이리라. 길을 걸으며 몸 상할까 봐 마음이 간다고도 했다. 나는 그녀가 온전히 순례자의 마음으로 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새 젊은 친구들에게 너무 다가가도 부담일 수 있다면서!

강린도 내 말에 동의했다.


요새 소화가 잘 안 된다. 많이 못 먹어서 강린에게 내 몫의 피자를 더 먹으라고 하자 처음에는 괜찮다고 하더니, 이내 맛있게 먹어준다. 말해보니, 강린은 순박한 처자였다. 내가 뭔 말을 조금만 해도 눈에 웃음이 장전되어 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조금 풀어주고 싶었다. 아까 향님한테 한 말에 혹시라도 마음이 상했을까봐 였다. 한국말을 왜 나보다 더 잘하냐며 한국말로 장난을 치자, 그녀가 깔깔 거리며 대놓고 웃는다. 웃는 모습이 참 착하다. 눈웃음이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안 마신 콜라까지 따라주자, 방긋 웃는다. 그래 호의를 잘 받아들이는 것도 고마운 일인데, 내가 그걸 가볍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세미랑 만나면 재미있겠다. 그런데 세미를 다시 만날 수 있나?


강린이 어눌하게 한국말을 하는 게 너무 귀여워서 나는 일부러 같은 뉘앙스로 그녀의 말을 따라 했다. 그녀가 "나는~ 그게~ 좋아~요" 하면 나도 따라서 "그게~ 정말~ 좋아요?"라고 되묻는 식이다. 그러면 강린은 그러지 말라며 나를 치며 웃어댔다. 우린 정말 킥킥 거리며 친구처럼 놀았다. 향님은 얌전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그러고 노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며 엄마 미소를 지었다. 착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동하는 것이구나, 싶어서 마음이 놓였다. 괜히 말했나 싶었다. 그들끼리 주고받는 고마움을 내가 괜히 방해했나? 감사하게 얻어먹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인데! 괜히 나댔다. 괜한 오지랖이었다.





부끄러워 하기는!


바 안에 난로가 있다. 불이 활활 타오른다. 주인장이 잠시 불을 쬐고 가라고 한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인지 몸이 조금 서늘하다. 본격적으로 길을 나서기 전 몸을 데우면 좋지! 주인장에게 우리 사진 좀 찍어주고 함께 찍자 했더니, 얼굴이 발개져 부끄러워한다. 청년인데, 주섬주섬 우리 사이에 삐집고 앉는다. 어멋? 뭐지? 이 부끄러워하면서도 누리는 자세? 동양인이라 우리 나이를 잘 모르지? 순박한 청년의 미소로 모처럼 한바탕 웃었다.





생존력


우린 신나게 목적지까지 걸었다. 중간에 산티아고에 도착해 환희에 차서 뛸 법한 높이만큼 날아오르기도 하고! 지나가는 소들 앞에서 “움메~!”하고 흉내 내다가 화 난 녀석들이 들이받으려고 쫒아오는 바람에 죽어라 도망친 일! 정말 생과 사의 갈림길처럼 산 언덕을 숨도 안 쉬고 달렸다. 녀석들이 씩씩 거리며 걸리면 죽는다, 하고 바라보는데 후들후들이다. 멀찍이 떨어져서 다시는 놀리지 않겠다는 반성을 했다. 그 와중에 내가 제일 빨리, 멀리 달아나 있었다. 생존력 갑! 뿌듯함! 근데 기분 나쁘다. 순박할 줄만 알았던 저 놈의 소들이, 저렇게 성질이 더러울 줄이야? 인도에서 나를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친 원숭이 조폭과 닮았다.


인도에서는 베란다 난간에 앉아있는 원숭이를 놀리느라 내가 "우왁~!" 하고 커튼을 열어젖히자, 놀라서 떨어질 뻔한 녀석이 이빨을 드러내며 내게 결투를 신청했다. 문 밖에서 너 나와, 확 죽여버린다. 당장 나와! 원숭이 언어가 내게도 충분히 전달되었다. 조폭 원숭이에 맞서 나는 페트병 하나로 녀석과 겨루기에 되었다. 계속 문 밖에서 나보고 나오라고 하는데, 그대로 두면 나를 얕볼 게 뻔했다. 친구가 말리는데도 내가 페트병 하나 들고 문을 확 열어젖히고 한 발은 실내에 걸친 채 소리를 버럭 질렀다.

"꺼져, 이 영장류야! 어디서 까불어!"
그러자 녀석이 응수하듯 소리쳤다.
"꽤에에에에에에엑~~! 너, 나와, 나랑 한 번 붙어 확 그냥!(이렇듯 해석이 됨)"

원숭이가 문쪽으로 달려들 듯 겁을 줘서 나는 문을 탕 닫았다. 옆에 있던 친구가 나를 보더니 케케케 웃었다. 내가 겁먹고 문 닫는 게 너무 웃겼다는 것이다. 왜 자기 집에 놀러 와서 원숭이한테 이런 만행을 저질렀냐고! 자기 이제 문 밖에 못 나가는 거냐고 책임지라고 난리였다. 그러고 보니 미안한 일이었네? 어쩌다가 한국 음식 해먹으려고 온 건데, 원숭이와 척지게 만들었으니! 어쨌든 원숭이는 너 다시 걸리면 죽는다, 하며 기분 더러운 제스처를 하고 사라졌다. 친구와 나는 긴가 민가 했지만, 분명 저거 두 손가락으로 눈을 찌른다는 제스처 아니냐? 맞다! 이런 결론! 저게 어디서 배웠지?

실제로 숲길을 지날 때 이 원숭이들이 사람들 간식을 빼앗고, 안경을 벗기고, 온갖 횡포를 다 저지른다. 나는 그래서 요가를 하러 가는 지름길 숲길을 지날 때마다, 요가 매트를 높이 치켜들고, 내 칼을 받아라, 하고 소리 지르고 다녔다. 아마도 이 정도면 그들에게도 소문이 났겠지? 저거 돌아이인가? 건들지 말자! 그래서 그 숲길에서는 내가 무사했던 것인 듯! 그래, 한 번 정도 겁을 준 건 괜찮잖아. 하지만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그 뒤로 친구가 내 집으로 놀러 왔지, 나는 그 집을 한동안 안 갔다. 그 원숭이가 나를 잊어주길 바라며! 원숭이는 정말 사납고 위험한 동물이 맞다.


소도 그럴 줄 몰랐다. 역시 동물은 건들지 않고 슬쩍 지나가야지! 함께 푸른 언덕 목초지에서 기념 샷을 찍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사진 속 나는 모처럼 자연을 닮은 사람들과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진심으로 나를 대하는 게 느껴져서 나도 그들이 좋았다. 우린 금방 친구가 되었고, 나이와 상관없이 친해졌다.


동생의 자세


대만 친구가 내게 묻는다. 친해졌으니, 언니라고 불러야 하냐고! 이름을 부르는 게 편하냐고! 그러면서 나이가 궁금했는지 묻는다.

“나이가 몇 살이에~요?”

“강린 보다 어려~요!”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내가 몇 살인데~요?”  

강린이 나이를 말 안 했으니, 내가 알리는 없다. 나는 계속 놀리고 싶어졌다.

“강린은 20살이고~요! 난 19살 이에~요!”

이즈음 되니, 그녀도 농담에 동참하는 분위기였다.

“어? 난 18살인데~요.”

“어? 착각했어~요. 그럼 난 17살 이에~요. 강린은 나에게 언니에~요.”

“히힛! 그럼 나 동생 생겼어~요?”

“그래~요. 강린 언니~! 나 맛있는 거 사줘~요. 언니는 동생에게 맛있는 거 사주는 거예~요.”

“알았~어! 동생~! 나, 돈 많~아! 부르고스 가서 맛있는 거 사줄~게!”

내 농담에 바로 응수하는 모습이 꽤 재미있었다. 우린 개구쟁이처럼 깔깔거렸다. 어쩐지 소박한 모습의 강린, 내 젊은 시절의 어느 부분을 보는 것도 같았다. 이런 사람들은 농담을 잘하지만 얼마간 예의를 차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그 시간을 당긴 꼴이다.

“알았어~요. 강린 언니~! 꼭 맛있는 거 사줘야 해~요! 싼 거 노우~! 노우~! 노우~! 내 입은 고급 이에~요!”

“그~래! 동생~!”

하다 보니 내가 강린을 놀리는 건지 강린이 나를 놀리는 건지, 우린 제법 잘 맞았다. 강린의 나이를 확실히 모르지만 향님으로부터 들은 바로는 20대 후반이었다. 정말 쓸데없이 재미있어하며 초원을 뛰어다니다가 사진도 모여서 찍고, 장난이란 장난은 다 치며 그 푸른 언덕을 넘었다.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과 동행하는 건 기쁨이다.







만남을 기약한 이별


드디어 언덕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그들은 Ages라는 마을에 머문다. 그새 정이 들어 함께 가자는데 내 배낭이 늘 자유에 걸림돌이 된다. 그들이 자신들이 빌린 집을 구경하고 일행들과도 인사하고 가라는데, 갈길이 구만리다. 나는 2킬로 더 가야 한다. 짧았지만 강렬한 만남이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와야 했다.


강린과 향님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다시 보자고 했다. 강린과 향님이 자신들의 일행과 어울렸으면 했지만, 어쩐지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내 계획대로 가지 못할 듯했다. 어울려 가려면 악착 같이 걸어야 한다. 내게 무리다. 나를 배려하느라 그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또한 정에 이끌려 버스를 타고서라도 함께 가려고 할 지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집 얻어서 좋은 음식 해먹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이번에는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인연 따라 걸어가자 싶었다. 사실 이들도 인연이라면 인연이지만, 많은 만남 속에 많은 이별을 겪고 싶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2.5킬로 더 가면 Atapuerca다. 사실 아까 Ages마을에서 이 마을이 다 보였다. 오늘은 그들과 신나게 와서인지 아직도 힘들지 않다.





오고 가는 인연들


아따뿌에르까(Atapuerca)에 드디어 도착했다. 숙소가 참 예뻤다. 정말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정서! 정원에는 예쁜 꽃들이 피고, 넓은 데크가 집 앞에 놓여 있다. 자연이 배경으로 펼쳐진 멋진 펜션 같다.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아직 주인장이 나타나지 않아서 체크인을 할 수 없다며 널브러진 채 기다리고 있었다. 데크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등산화, 맨 발로 쉬고 있는 그들의 것이다. 내 배낭이 보이지 않는다.  찾았더니, 사람들이 가리킨 창고, 등산화 벗는 곳에 배낭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메디의 배낭이 보이지 않는다. 마침 메디가 정문 쪽에서 독일 기자랑 어슬렁 들어온다.

"메디, 배낭 왔어? 어디에 뒀어?"

“수, 난 오늘 다른 곳에 묵으려고요. 이 친구가 아는 곳이 있대요.”

“그래?”

독일 기자가 나섰다.

“내가 전에 묵었던 곳인데, 좋아!”

나에게 굳이 가자고 하지 않았지만 말해도 귀찮아서 못 갈 판이다. 젊은 친구들끼리 모이고 싶나 보군! 아무래도 눈치가 영국 작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독일 기자의 속셈을 메디도 아는 것일까? 괜히 자기 혼자 뻘쭘해서 그러는 거 아닌가? 어쨌든 또래 남녀가 관심을 갖는 건 재미있는 일이지만, 영국 작가는 나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메디에게 웃으며 잘 쉬다가 내일 가는 길에 보자고 했다. 저녁도 알아서 먹으라고 하고 난 좀 쉬고 싶었다. 식사는 부르고스에서 하기로 했다. 메디에게 밥을 사주고 싶었다. 사과 아저씨에게 베푼 친절에 내가 조금이라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메디와 독일 기자와 인사를 나누는 동시에 데크 끝쪽 별도의 방에서 한국인 부부가 나오는 게 아닌가?

"와우, 이거 데자뷔인가요? 또 만났네요.”

“그러게요. 우린 일찍 도착해서 밥도 먹었어요. 여기 정말 좋아요!”

“마당부터 멋져요. 근데 주인장 어디 가신 거예요? 빨리 오시지!”

말 끝나기 무섭게 할머니가 정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모두 설레는 표정으로 온 순서대로 들어섰다.


방은 조금 좁은 편이었다. 2층 침대가 4개 놓인 곳도 화장실도 샤워실도 부엌도 고만고만했다. 마당과 데크가 마음에 들었으면 됐다. 그런데 해가 안 떠서 춥다. 속옷과 양말을 빨아서 마당에 있는 빨래 건조대에 놓았는데, 해가 아예 모습 없이 질 것 같다.




찰나의 순간을 살며

나는 샤워를 하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동네 전체가 참 아늑하다. 성당은 문이 닫혀 있다. 그냥 마을이 작아서 한눈에 보여서 좋다. 구름도 예쁘고, 어쩐지 이곳이 익숙한 느낌이다. 날이 추워서인지, 인도 다람살라가 떠올랐다. 왜 그곳과 닮았다고 느끼는 걸까? 스페인 시골 마을에서 인도 시골 마을을 떠올릴 줄이야. 다람살라에 머물 때 만났던 비구니 여스님을 보면서 나는 수녀님들과 다르지 않게 느꼈다. 영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느낌! 그래서인가, 한국에서 봤던 깨끗하고 번듯한 성당과 달리 이곳 시골 성당들은 소박했다. 그런 면들이 다람살라의 모든 부분을 소환했는지 모르겠다. 보고 싶었다. 그때,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고 부단히 애쓰던 때, 인도행 비행기를 탔던 그때, 요가로 수련을 하며 다람살라에서 만난 인연들, 그리고 그 사람! 슬픈 이별로 떠나온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됐다. 산다는 게 과거니 미래니, 사진첩 같다. 현재 펼쳐진 사진첩도 지나고 나면 그리워할 과거가 되겠지!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찰나의 순간을 잘 살아내야지!  


식당도 슈퍼도 작았는데, 그마저도 먹을 만한 게 없다. 대부분 문을 닫았다. 한 곳, 문 연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간단한 빵을 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아까 점심을 피자로 잘 먹어서인지, 저녁에 뭘 먹고 싶지가 않았다. 식당에 오기 전에 슈퍼에서 빵을 샀다. 큰 빵 하나만 덜렁 남아서 망설였을 때 반만 팔 수 있다길래, 그러마 했다. 나뉜 것 중에 작은 걸 주길래 이왕이면 큰 걸 달라고 했다. 나중에 숙소에서 보니 내가 남긴 나머지 반을 산 아저씨가 나타났다. 괜히 더 먹겠다고 괜한 욕심을 부렸나 싶었다. 빵이 커서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이런 딱딱한 빵은 내일도 모레도 먹을 수 있다. 일단 비상식량으로 접수!

산 마르띤 교구 성당은 15, 16세기 르네상스와 후기 고딕 양식이 혼합된 성당이란다.




동네가 조용하고 예쁘다.


작은 슈퍼다.


내가 머문 숙소,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데크가 편안하게 사람을 맞이한다. 이 동네는 대부분 이렇듯 집이 예쁘다.




순례자에게 줄 수 있는 선물



내 방은 덩치 있는 아저씨가 이미 문 옆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안 쪽 창문 있는 침대에 짐을 풀었다. 4개의 침대, 모두 단층이다. 아저씨한테 자다가 창문 열지 않을 거죠? 하고 장난 섞이게 물었더니, 아니라며 웃는다.


잠시 후 다른 순례자 여성 두 명이 들어왔다. 우리가 이미 차지한 덕에 둘은 대각선으로 나뉘었다. 다 모여서 간간히 인사만 나누는데, 덩치 아저씨가 한 말씀하신다.

“나 오늘 생일이에요.”

“어머! 축하해요.”

모두 축하는 기꺼이 하지만 그 이상 뭐 어울려서 맥주든 식사든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 사실 말 한마디도 안 하다가 생일빵 하는 것도 웃기다. 날도 춥고 몸도 지쳐서 어디 그럴 마음도 없다. 더군다나 식당은커녕 슈퍼에 먹을 것도 제대로 없는데? 아예 작정하고 맥주를 마시러 가면야 모르겠지만, 난 미리 아니올시다 였다.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걸로 드셔야겠네요?”

“조금 이따가 나가서 먹을 거예요.”

특별히 같이 먹자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순례자들이 함께 식사하며 축하해주는 분위기도 아닌 걸 그도 알고 있다. 모두 지친 얼굴에 뜬금없이 자기 생일이라고 말하는 이를 조금 성가시게 여기는 것도 같았다. 나는 맛있는 빵이라도 하나 사주고 싶었지만, 추워서 다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배낭을 뒤져보니, 그에게 줄만한 선물이 발견됐다.

“생일 축하해요. 이것밖에 선물할 게 없네요!”

그는 어린아이처럼 내가 내민 선물을 받고 좋아라 했다.

“고마워요. 이건...”

“한국 커피랑 김이에요.”

나는 믹스 커피와 김을 통해 한국을 떠올렸으면 했다. 그가 정말 배불뚝이 아이처럼 큰 배를 내밀고 헤헤 웃어댔다. 여차하면 뱃살에 파묻힌 그의 배꼽을 만날 뻔했다. 방도 좁아서 마주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 각이었다. 사실 얼마 되지 않지만 희소성으로 그에게 기쁨을 준 것이다. 그러니 선물 맞네! 나는 그의 미소를 보며 생일을 정말 축하한다는 말을 더해주었다. 순례길에서 외롭게 생일을 맞이하는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싶었다.


내 방에 있던 순례자들은 바에 가서 식사를 하고 오겠단다. 생일을 맞은 남자와 함께 나갈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내 눈에는 귀여운 뚱보 아저씨인데! 아저씨도 식사를 하고 오겠다고 나가고, 나는 부엌 테이블에 앉아서 각국 여성들이 다음 코스는 어떻게 가야 짧게 걸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경청했다. 아날로그적 지도가 달린 가이드북을 펼쳐가며 그들은 내일 가로질러가는 길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새로운 땅을 개척하러 가는 줄 알겠다. 지도를 들고 이렇듯 심층 논의할 갈림길인 거야? 나이를 먹은 백발의 커트 머리 여인은 작가라고 했다. 아들과 같이 여행 중이라는데, 아까 문 밖에서 대기할 때 싱긋싱긋 웃어대던 중년 남자였다. 엄마는 조금 지적이며 차가운 인상인데, 아들은 보는 사람마다 뻐꾸기 날리듯 웃음을 남발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닮았을 것이다. 작가는 저런 성향의 남편 때문에 오랫동안 골치가 아팠을 수도!  


그나저나 안 들었으면 모르지만 내일 가는 길에 공항 쪽으로 짧게 가는 길이 있다고? 나는 괜히 어중간하게 가다가 길을 잃고 싶지 않은데? 그냥 노란 화살표대로 가야지 싶었다. 그들은 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아들과 함께 여행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오늘은 굳이 사람들과 섞여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지 않다. 아까 오면서 수다 총량을  사용한 것인가, 피곤한 , 차나 한잔 마시고 들어가려고  것이다. 순례자들은 이따금 얘기하다가  얼굴을 보면 동조를 구하듯 한다. 그때마다 그저 고개를 끄덕여 주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다시 얘기에 몰두한다.




빨래가 뭐라고


아까 빨래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숙소 할머니가 세탁과 건조가 하나로 되는 드럼통을 돌릴 수 있다고 했을 때 나는 조금 고민을 했다. 드럼 세탁기였다. 건조기처럼 완전히 건조가 되리란 보장이 없었다. 아예 마르지 않으면 축축한 빨랫감을 들고 가는 게 더 골치였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 아빠와 아들 팀이 세탁물을 내밀어서 마감이 되었다. 내가 뒤늦게 세탁물을 내밀자 할머니가 퇴근해야 한다며 내 것까지는 못해준다는 것! 죈장! 머뭇거리지 말고 내밀 걸! 돈 좀 더 벌면 좋으실 것도 같은데, 얄짤 없으시다. 인정 없는 표정! 동네가 작아서 분명 근처에 있는 집이겠구먼! 돈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 시간을 확실히 따지는 것 같았다.


사실 나에게는 종이로 된 세탁 세제가 있다. 할머니가 퇴근하면 사부작사부작 가서 몰래 세탁기를 돌려도 되지 않을까? 근데 문제는 빨래가 안 마를 것 같다는 거다. 저 남자들 빨래를 기다렸다가 세탁하고 건조까지 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못 참고 자겠지? 그러다가 내가 세탁한 걸 할머니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할머니가 나를 아작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자비가 없어 보이는 냉혹한 눈빛! 친절함 대신 기본에 충실한 할머니!


나는 그냥 세탁을 포기했다. 대신 손빨래한 등산 양말과 속옷을 세탁실 문 뒤 라디에이터에 널었다. 다른 라디에이터에도 빨래들이 널려있는데, 이쪽 문 뒤는 가려져서 아무도 못 보는 각도다. 그래서 내 양말과 속옷을 마음껏 널어놓았다. 그런데 나중에 주인장 할머니가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가 안 말랐는지, 문을 활짝 열고 한참을 그쪽을 바라봤다. 아이쒸! 내 빨래를 내팽개치면 어쩌지? 하지만 그럴 수 없었겠지! 그냥 두고 다른 곳에 빨래를 널었다. 저건 분명 안 마를 것이다. 내 라디에이터가 뜨거워서 나는 두꺼운 등산 양말로 완전히 뽀송뽀송 마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 날, 세탁을 하고 건조까지 한 아빠와 아들 팀에게 물었을 때 뿌듯한 답변이 들려왔다.

“빨래 말랐나?”

“아니, 눅눅해! 배낭이 무겁겠어!”

하하하! 난 라디에이터에서 잘 마른빨래를 가져왔다. 왜 이리 뿌듯하지? 주인장 할머니가 내 빨래를 커트한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 왜 아빠와 아들 팀에게 이 고소함을 전하고 싶지?





순례길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자는 동안 덩치 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지만 창문을 열지 않아서 고마웠다. 근데 산소가 부족한 느낌은 뭐지? 이 아저씨가 산소를 다 들이키고 있는 게 분명해! 답답했지만 참아야 해! 추위를 들여올 수 없다


아침, 아침 식사는 대충 빵으로 해결하고 방에 들어와 짐을 챙겼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덩치 아저씨 때문에 모두 불을 켜지 않고, 조용조용 짐을 쌌다. 그런데 내 앞 침대에서 일어난 여인이 서로 무릎이 닿을 정도의 거리만큼 떨어진 침대에 앉아서 팬티를 갈아입고 있다. 그러더니 양말을 냄새 맡더니 탈탈 털어서 신는다. 내가 코 앞에 앉아있는데, 뭐 하는 건지, 잔소리 한 사발을 원하는 건가?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다 해도 이거 좀 너무 한 거 아닌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는다. 나를 무시해서 그런다기보다는 어둠 속에서 얼른 준비하고 나가려고 그런 거겠지! 그런 행위가 상대에게 실례라고 생각지 못한 것 같다. 순례길 내내 유럽인들의 무례함을 많이 봤다. 사람 있는 실내에서 담요를 털어대는 인간들도 있다. 모르는 것이다. 이게 상대를 불쾌하게 한다는 것을! 우리도 한국인끼리 외국에서 망신이네 뭐네 하지만, 예의를 갖춰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전 세계 어디나 무례한 인간들은 포진해 있다. 하지만 그보다 예의를 갖춘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위안 삼아야 한다. 세상에는 다 그런 역할자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쿨쿨 자는 덩치 아저씨를 깨우고 싶지 않고 조용히 방에서 나왔지만, 시간으로 보니, 깨웠어야 하는데? 숙소 마감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 할머니가 오실 텐데? 아직도 자고 있다고 회초리 들면 어째? 나는 뻐꾸기시계처럼 문만 조금 열어놓은 상태로 "일어나세요! 8시예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때 움직 움직 하는 모습을 보고 키키 웃으며 문을 닫아주었다. 이건 정말 오지랖이지만 어쨌든 주섬주섬 나오겠지! 아저씨는 어제 막 태어난 신생아다. 신생아의 기지개 소리를 들으며 숙소를 나선다. 안녕! 귀여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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