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성정치_2부. 제우스의 복부에서
5장. 해체된 텍스트들, 분해된 동물들
해체의 정의
채식주의와 관련한 텍스트의 해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하나의 텍스트에서 언급되거나 암시되는 채식주의를 간과하는 방식, 채식주의에 대한 언급은 하지만 그 맥락이나 의미는 무시하는 방식, 채식주의를 불합리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채식주의의 의미를 고기의 지배 담론과 결부시키는 방식 등 다양하다.
카렌 그린버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형태의 독해"라는 견지에서 텍스트 해체에 대한 논의에 "독자, 텍스트, 저자 사이의 독특한 관계들"이 갖는 의미를 함께 다룰 것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오이디푸스 신화는 "궁극적으로 창조적 과정의 두 가지 기능[저술과 비평]이 본질상 남성적이라는 것, 그리고 이 두 가지 기능을 중재하는 텍스트는 여성적-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을 함의한다."
글자를 쓰기: 채식주의 글쓰기
채식주의 문제를 다루는 여성 작가들은 "채식주의 단어를 낳는다"고 말할 수 있다. 마가렛 호만스는 여성들이 글자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몇 가지 반복되는 문학적 맥락들 또는 수단들을 언급하면서 이것을 "단어를 낳는 것bearing the word"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호만스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어떻게 퍼시 셸리의 [알라스토르]를 떠올리게 하는지를 지적한다.
여성 작가들의 소설이 채식주의 단어를 낳는 것은 (1)이전의 텍스트에서 글자 그대로 채식주의자의 말을 자신들의 저술에 직접 언급하거나 암시하는 것으로 그 텍스트와 동물을 기억한다. (2)역사적 채식주의자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을 통해. (3)채식주의 관련 텍스트들의 번역을 통해. (4)직접 죽은 동물을 언급하면서 부재 지시대상의 구조가 같는 기능을 명확하게 말하는 언어를 통해. 예를 들어, 마가렛 드레블의 [빙하기]는 "아무 병고도 없이 자연사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면서 살아왔던" 한 꿩이 심장 발작으로 죽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5)채식주의 단어를 낳는 마지막 형식은, 조셉 릿슨이 [도덕적 의무로서 육식을 금하는 것에 대하여]를 쓴 목적이기도 했던, 개인들이 채식주의 관련 텍스트들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육식을 중단한다고 언급하고 있는 데서 암시된다.
채식주의 단어 낳기
이자벨 콜게이트의 [사냥대회]는 채식주의 단어를 낳는 몇 가지 실례를 보여주며, 채식주의 단어에 대한 채식주의자의 특권이 여성 작가에 의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밀렵가 톰 하커는 산토끼 한 마리를 잡아 칼로 죽인 뒤에 아랫바지 주머니에 넣는다.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던 하커는 20마일 가량을 걸어와 집 근처에서 여관의 위치를 묻는 카듀와 만난다. 이 대화에서 언급 또는 암시를 통해 채식주의 단어를 낳는 첫 번째 형식이 등장한다. 카듀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살아 숨쉬는 피조물들의 보편적 친족 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바깥 세상에 대해 무지한 채 살아갈 것"이라고 선언한다. 여기에서 카듀가 언급하고 있는 "친족 관계의 교의Creed of Kinship"라는 말은 원래 헨리 솔트의 것이었다. 헨리 솔트는 이것을 "어떤 실질적인 도덕성은,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이 서로 친족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에 그 토대를 둔다"고 규정했다.
카듀는 다수의 채식주의 관련 텍스트들을 소장하고 있었으며, 피켓과 팸플릿을 통해 채식주의 단어들을 낳고 이 저술들을 통해 글자 그대로 이전 저술가들의 단어를 낳는다. 카듀는 이런 간단한 인쇄물의 제목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와 퍼시 셸리의 [자연식의 옹호]라는 단어를 낳는다.
콜게이트의 소설에 나타나는 채식주의 단어를 낳는 둘째 형식, 즉 소설의 주인공은 역사적 채식주의자를 상기시킨다. 콜게이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채식주의자 인물은 헨리 솔트를 본뜬 것으로, 미국의 저널리스트 헤이우드 브라운은 솔트를 "근대 채식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이 소설에서 채식주의 단어를 낳는 셋째 형식은 직접 죽은 동물을 지시하는 언어로 나타난다. 카듀는 동물을 죽이는 것을 "살인"이라고 부르며, 죽은 동물의 몸을 "시체carcass"[영어에서 carcass는 동물에게 사용]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송장corpse"[영어에서 corpse는 인간에게 사용]이라고 부른다.
채식주의 단어를 낳는 마지막 형식은 육식에서 채식으로 전환하는 동기, 즉 개인들이 육식을 중단하기 위해 곧장 채식주의 텍스트들을 읽기 시작할 것이라는 희망이다. 카듀는 자신의 채식주의의 말이 살이 될 것이라 믿는다. "처음에는 팸플릿에 적혀 있는 말들이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서서히 그 뜻이 새롭고 명확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팸플릿에 적혀 있는 말들이, 부자에게 착쥐를 당하는 가난한 노동자인 자신들에게는 모든 인간에게 착취를 당하는 동물과 동정적인 동맹을 맺어야 하는 필연성을 보여주는 한줄기 빛으로 보일 것이다."
본질적으로 텍스트에서 채식주의와 육식 사이의 변증법은 저자와 독자 사이의 변증법을 반영한다. 앞의 것은 텍스트의 힘을 빌려 뒤의 것을 전환시키고자 한다. 이미 고착화된 텍스트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고, 앞서 언급한 [프랑켄슈타인]에서처럼 죽은 동물을 지시하기 위해 자연에 상처를 내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들은 손상되지 않은 텍스트의 이미지에서 손상되지 않는 식사[채식주의]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카듀든 셸리든 릿슨이든 솔트든 상관없이, 채식주의 관련 텍스트에 새겨져 있는 서명은 고기의 텍스트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육식가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말이 살이 되도록 하고자 하는 시도며, 고기의 이야기를 중단시키고자 하는 시도다. 이 시도에 대한 반응을 기다리면서 이제 더는 해체된 텍스트들, 분해된 동물들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글자 그대로 살아있는 동물을 보호하는 텍스트로 기억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