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를 그리려다가 그만 세모를 그리고 말 때
나는 어떤 이야기를 생각했다.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면 그만큼의 땅을 주겠다는 악마에게 홀려 걷다 죽는 욕심쟁이의 이야기였다. 걸어나간 만큼 반드시 되돌아와야 하는 그 끔찍한 피로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변한다. 네모는 피로라고.
그러나 나무는 땅에 뿌리를 박고 산다.
종종 상도동 할먼네서 잘 때가 있었다. 할먼네는 전집을 하느라고 기름 냄새와 막걸리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할아버지는 미숫가루를 타서 밥 대신 잡숫고도 술에 취해 손님들하고 싸웠고, 성이 안 풀린 손님들이 셔터 내린 가게문을 발로 차고 욕을 했다.
나는 낮에는 할아버지랑 낚시를 하고 밤에는 막걸리 떠다 나르는 걸 도왔다. 자리에 누워서 슬레이트 지붕 위로 비 듣는 소리나 손님들 욕지거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옛날 얘기를 시작한다. 백설공주로 시작해서 망태 할아버지 괴담으로 끝나는 얘기다. 할머니 그거 아닌데? 그건 다른 얘기야. 내가 말하면 너 들으란 소리 아니야, 하고 할머니가 대답한다. 그럼 누구 들으란 소리야? 내가 다시 묻고, 할머니는 가만 있다가 이렇게 말한다. 이러면 안 무서워.
할머니가 무섭구나 생각하고 이야기로 도망치는 방법이 있구나 생각한 밤. 그 후로 나도 불 꺼진 방 벽걸이 시계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짓는 날이 있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피로할 때다. 내일 출근하면 회의만 세 개가 있는데. 서로 다른 입장이 어떻게 잘 만날 수 있을까. 완성해야 하는 계획서가 있는데. 예산 정리하기 귀찮다. 월세가 밀리는데. 꼬순이 츄르도 사줘야 한다. 꼬순이는 왜 저렇게도 입이 짧은지. 출근하자마자 관리비 통장부터 확인해야 한다.
네모를 그리려다가 그만 세모를 그리고 말 때
나는 어떤 이야기를 생각했다. 300억으로 시작해서 짝꿍의 편집샵으로 끝나는. 낮에 낚시한 물고기가 밤에 슬레이트 지붕을 때리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되었냐면.
지팡이 세 개가 황야에 꽂혀 있고 여행객이 그 중 하나를 짚고 서 있다. 시선 닿는 곳에 쉴만한 곳도 목적지도 없다. 그러나 지팡이 세 개는 네 개를 목전에 둔 구체적인 성장의 에너지. 내일의 나는 땅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네모난 옹이는 그냥 거기에 달린 것이라고 안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