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나 비루한지

<송곳>과 나

by 열무샘


이수인의 깐깐함을 보여 주려던 장면 같았다. 중년의 여성 노동자가 협력업체 직원에게 당연하다늣 듯이 무례한 어투로 일을 시킨다. 곧 이어 등장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다. 푸르미 정직원은 서로 주말에 쉬겠다고 하고, 협력업체 직원에게 평일 휴일을 떠민다. 이수인은 두 장면 모두에서 원칙을 강조한다. 만화 <송곳>에는 “확 다 잘라버리고 싶다.”는 이수인의 대사까지 있다.

이 장면 이후 나는 드라마 <송곳>을 계속 보겠다고, 책을 구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 꼭 변태 같다. 꽂힌 장면 모두 징글맞고 구질구질하고 지겹다. 전적으로 자기 필요에 의해서 노조에 가입하는 노동자들, 쉽게 흥분하고 쉽게 가라앉는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사람들, 무언가 이루었다고 함께 했다고 기뻐한 후 바로 등장하는 분열, 모이는 건 어렵지만 편먹기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아는 사람들, 이수인은 어떤가. 그는 좋게 말하면 원칙적이지만 사실은 꼴통이다. 대의를 위해서 노조를 결성한 것도 아니다. 다만 못 견뎠을 뿐이다. 구교신. 그는 당신 때문에 나와 남편은 이렇게 불행해졌다고 말하는 노래방 도우미에게 징계 위원회 증언을 부탁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고문했던 형사이지만 한 아이의 할아버지인 남자 앞에서, 남자의 손녀에게 자신의 배에 뚫린 구멍을 보여주려 한다. 어쩌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복수에 성공할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싫은데, 그 덕에 무의식은 우리 모두 다 그렇고 그러니 그냥 이대로 살자는 마음이 자리 잡았을 수도 있다.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마음도 어렵지만 내 마음을 아는 것도 어렵다.


나는 그냥 위로를 받았다. 자신의 위치와 상관없이 언제든지 내 밑의 누군가를 밟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자신을 위해서 내 새끼를 위해서 누군가를 배신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정해진 게 아니다. 성선설이니, 인간에 대한 믿음이니, 인간이니까 하는 말은 공허하다.


십여 년 전 시민단체에서 일하던 나는 마을 만들기니 작은 도서관이니 하는 명분과 일로 마냥 행복했다. 한 번은 마을 잔치를 한다고 주민 몇 분께 돈을 드리며 소머리 떡국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잔칫날 소머리 떡국에는 소머리 고기가 없었다. 살코기 몇 점과 기름과 흰 떡국과 파만 들어 있었다. 도서관 꽃 화분은 없어지기 일쑤였고, 남의 집 물건을 훔치기로 소문 난 분은 주민위원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모른다. 덕분에 나는 마냥 행복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 탓할 것 없다. 나는 내 밑의 사서를 해고시켰고, 그 아이가 실업 급여를 신청했을 때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그 때 나는 내가 잘못됐다는 짐작하지 못했다.

사람은 그렇다.


학교에서 <파업 전야> 영화를 상영했었다. 너무 오래 돼서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남자들은 쇠파이프를 들고 영화 상영 사수를 외쳤고, 나는 두려움과 기대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영화를 봤다. 영화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망치를 들고 서 있던 노동자의 실루엣 정도만 생각난다. 영화는 사라졌지만 영화를 보던 나와 상영관을 지키던 동기들은 기억나는, 이런 게 기억인가 보다.

그 때 <파업 전야>를 볼 때 나는 이십 오년 후 내가 <송곳>을 보면서 인간의 비루한 모습에 위로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드라마 마지막 회 바로 전 회를 시청하고, 고민했었다. 파업은 망할 것 같았고, 구교신은 아팠고, 이수인은 코너에 몰렸고, 푸르미 직원들은 끊임없이 갈렸다. 아무래도 결말이 나쁠 것 같아서, 나쁜 결말을 꼭 봐야 하나 싶었다. 고민하다 마지막 회를 보았다. 결말은 생뚱맞았다. 해피 엔딩이었다. 참 이상하다. 나쁜 결말이 나올까 무서웠는데, 나쁜 결말인 게 자연스러웠는데, 드라마의 결말은 거의 판타지였는데, 나는 고마웠다. 그래도 다들 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좋아했다. 스토리의 왁구보다 리얼리즘 보다 더 강했던 건 어쨌든 희망이고 행복이었나 보다.


나처럼 <송곳>을 보며 어처구니없는 위로를 받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가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