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수영 아파트
건물이 중앙 공터를 바라보며 네모 줄로 서 있었다. 3층이었고, 낮았고, 많은 사람이 살았고, 어두웠다. 흙바닥, 연갈색 바닥 사이에 철을 재료로 한 놀이기구가 놓여 있었다. 그네, 시소, 정글짐, 철봉. 유독 겁이 많은, 낯선 환경과 낯선 시도에 선뜻 몸을 쓰지 않았던 나는 그네와 시소만 탔다. 정글짐에 기어오르는 친구를 쳐다보다, 시도를 해 보았다. 정글짐의 이 정사각형에서 저 정사각형으로 옮겨가는 일이, 이 세계에서 저 세계를 나아가는 일처럼 느껴지는, 그때 나는 일곱 살, 여덟 살이었다.
공동 화장실이 있었다.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너무 무서워서 얼른 나왔다. 캄캄한 화장실이었다.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공동 화장실을 쓰나 보다, 그 집들에는 화장실이 없나 보다, 어린 내 머릿속에 박힌 생각은, 세월이 지나면서도 잊히지 않았다. 수영 아파트에는 집마다 화장실이 없어, 공동 화장실을 사용해야 해. 캄캄한 화장실을 같이 사용해야 해 하고.
45년이 더 넘는 시간 후에 수영 아파트를 찾았다. 기억보다 작고, 기억보다 아담하고, 기억보다 밝았다. 공동 화장실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45년의 시간 동안, 공동 화장실은 없어졌구나 하다, 문득 내 기억으로 사실이 왜곡되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 화장실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집 안에 화장실이 없다는 건 아무래도 틀린 것 같았다. 이 많은 집들이, 집에 사는 사람들이 몇 개의 화장실만 사용했을 리는 없다. 70년대였지만, 이곳은 대도시 부산이고, 방 2개가 있는 아파트 아닌가. 캄캄한 화장실 때문에, 겁이 많은 아이였던 내가 혼자 그렇게 상상하고 결론을 내렸을 것 같다.
연갈색 흙 위의 철봉과 정글짐과 그 내와 시소는 사라졌다. 아파트 사이 중정처럼 자리 잡은 땅은 주차장과 작은 마당으로 바뀌었다. 이 쪽 입구에서 저 쪽 입구까지 땅은 계단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그 밑으로 가는 순간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친구들을 따라 수영 아파트 놀이터까지 놀러 왔던 어린 내가 위 땅에서 아래 땅으로 내려가는 장면을 몸이 지니고 있었다. 10분 거리의 놀이터를 향하는 길의 두근거림, 두렵고 신나고, 친구들을 따라 어쩔 수 없이 따라가기도 했고, 스스로 낯선 곳으로 모험을 떠나는 마음으로 출발했던 그 길 역시.
수영 아파트 1층에는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는 오래된 가게와 1층과 2층, 3층 집들이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집의 사람들은 쨍쨍한 햇빛 아래 빨랫줄에 빨래를 넌다. 마당 한쪽에 벚꽃이 한창이다. 환한 벚꽃, 벛꽃 나무 아래 의자가 놓여 있다. 분홍색 플라스틱 의자.
수영 아파트는 재건축 추진 중에 있다. 45년이 넘는 시간, 여러모로 불편한 거주 환경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후기 : 단독 주택을 짓던 젊은 아버지가 친구들과 함께 의기 투합해서 지었던 첫 아파트가 수영 아파트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