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교육 유감

by 열무샘

현세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많이 있는 거랍니다. 특히 당신 같은 어린 사람에게는.

- 미야베 미유키 <안주> 중


진로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라면, 한 시간도 넘게 쉬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



언제나 상위권을 유지하는 여중생이 있었다. 성실하고, 꼼꼼하며 진지한 아이였다. 아이는 진로 교육을 마친 뒤, 적성과 하고 싶은 일이 다르다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고 싶은 일도, 적성도 바뀌는 거니 천천히 생각하라는 조언도 소용없었다. ‘너는 이런 적성이니까, 이런 일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명제는 아이의 머리에 박혀서는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신 3등급에서 5등급까지의 딱 중안인 아들과 아들의 친구들은, 엄청나게 노는 걸 좋아하지만, 공부에 손을 놓지도 않은 고등학생이었다. 아이들은 방학이면 1박 2일 바닷가에 놀러 갔고, 수능 시험을 마친 뒤에는 공장에서 일한 뒤, 받은 돈으로 여행을 갔다. 적성도, 좋아하는 것도 비슷비슷하고, 특별히 잘하는 과목도 못하는 과목도 없었던 아이들은 수학 성적을 기준으로 문과, 이과를 선택했고 내신에 맞춰 대학을 갔다.

유쾌하고 밝은 기운을 전하는 아이들이었다. 별 것 아닌 장난에 서로 킥킥대고, 12월 31일 술집 앞에서 쪼그리고 있다 시계가 1월 1일을 가리키자마자, 이제 합법적으로 술을 먹을 수 있다며 좋아하는 스무 살 청년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스무 살 봄은 유쾌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이든 뭐든 취업이 가능하다는 과에 들어간 아이들은 그나마 나았지만, 문과생은 심각했다.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선배에게 들었던 말은 “여긴 취업이 안 돼.”였다. 학교를 그만둬야겠다, 전과를 해야겠다, 재수를 할까 보다 전전긍긍하던 아이들은 일단 군대를 빨리 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적성, 꿈, 장래희망, 진로가 무색한 스무 살 봄이었다.

아들과 아들의 친구 이야기가 특별한 사례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나는 20대의 취업률과 고용 형태에 관한 증거를 제시하겠다. “우리 아이들 대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거나 취준생 혹은 백수로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진로와 적성 사이에 고민하는 여중생 역시 아이가 지나치게 소심한 게 문제 아니냐고 말한다면, 거꾸로 질문할 생각이다. “꿈을 꼭 이뤄야 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성에 맞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나요? 아이는 어른의 말을 잘 들었을 뿐이에요. 어른의 말을 잘 듣는 게 소심한 건가요?”라고.

또 나는 노동에 대한 존중과 왜 인간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토론과, 경쟁과 우리 사회의 고용 문제와, 기울어가는 경제, 와 자본과 교육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인간을 자원이 아닌 인간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계속 또 계속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하지 않는 게 낫겠다. 너무 길게 너무 비관적으로 말할 테니까.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다.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이가 자기 꿈은 기초생활수급자라고 말했다.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말했을까?

진심일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돈을 벌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박탈당하는, 지원을 받기 위해 노동을 하지 않는, 우리의 복지 현실은 얼마나 웃기고 졸렬한지 모른다.

장난으로? 누군가 아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웃었을까, 아이는 그게 고급 농담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시니컬하고 냉소적으로 들이받은 건 아닐까? 나는 요. 아무리 애써도요, 이미 공부는 바닥이고요, 잘하는 건 없고요, 우리 집은 지독하게 가난하거든요. 그러니까 꿈같은 건 웃기라고 해요.

세 가지 중 어떤 의도였는지 알 길이 없다. 아이들에게 네 꿈이 뭐냐고, 장래 희망이 뭐냐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질문과 격려가 싫다. 왜 자꾸 물어보는지, 누구도, 누구도, 또 누구도 쉴 새 없이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묻고, 꿈이 뭐냐는 질문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한다면, 적어도 아이들이 자기 꿈을 꾸준히 이룰 수 있는 사회 기반은 마련해줘야 한다. 요리를 좋아하고, 적성 검사가 요리사에 맞게 나왔고 요리사가 되고 싶은 아이가 있다. 그 아이들 모두가 호텔 셰프가 될 수 없다. 요리를 좋아하는 많은 아이들은 중국집 같은 동네 작은 가게의 요리사가 되어야 한다. 같은 요리사니까, 호텔만큼의 임금과 대우는 아니더라도, 중국집이든, 분식집이든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임금과 노동 조건이 가능해야 한다. 노동법이 뭔지, 노동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10원 동전으로 밀린 임금을 지불하는 사장님이 넘쳐 나는 나라에서 “그래, 니 적성에 맞는 요리사가 꼭 돼. 꿈을 이루어야 한다.”라고 가르쳐도 되는 걸까? 요리사뿐만 아니다, 프로그래머도, 디자이너도, 시인도, 회사원도 마찬가지다.

진로 교육 담당자에게, 진로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인적자원부의 관료에게 묻고 싶다.

사실 당신이 아이들에게 원하는 건 이런 거죠? “열심히 어떤 방법이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살아남아 훌륭한 인적자원이 되는 거야. 그러려면 니 적성과 소질을 잘 알아야 해. 어릴 때부터 목표를 정확하게 세워서 오직 앞만 보는 거야.”

나는 말하고 싶다. “그런데 말이에요. 현실적으로 훌륭한 인적자원이 될 수 있는 아이는 1퍼센트에 불과하잖아요. 그럼 나머지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하다.




대안이 뭐냐고? 대안 같은 건 모르겠다. 나는 그냥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말을 할 뿐이다.

못해도 상관없어, 못나도 상관없어, 네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든, 능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넌 존중받아 마땅해. 다만 조금씩, 조금씩 뭔가를 하길 바래. 뭐라도 조금씩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너는 지금보다 준중 받아야 해.

이 불평등한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혼잣말뿐이겠지,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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