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비 오는 날의 소풍> 에레네스트 아저씨와 셀레스티느

by 열무샘


가브리엘 뱅상의 그림책을 보다 보면 네가 생각나. 깔마가 제일 싫다고 했다가 제일 좋다고 하는 너,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먼지를 날리는 너, 친구 때문에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을 하는 너가 떠오르지.


비오는 날에 비 오지 않는 척하고 소풍을 가자는 셀레스티느만큼 너는 변화무쌍하고 에너지가 넘쳐. 덕분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어른이 되었다, 가짜 이야기를 지어내며 깔깔 거리는 교사로 살아갈 수 있지.


에레네스트 아저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비 오는 날의 소풍이라니, 정말 싫지 않을까? 작년 겨울이었어. 축구에 폭 빠진 수많은 너와 함께 축구 심판을 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니? 나는 축구라면 질색인데, 추운 건 더 질색인데...


에네네스트 아저씨는 나 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야. 네가 잘 알듯이 나는 단점과 약점 투성이의 사람이야. 까칠하지, 짜증도 잘 내지, 냉정하지, 너무 빠르지, 늙고 힘도 없잖아. 가끔 이런 내가 너랑 함께 있는 게 맞는 걸까 생각할 때도 있어. 결론은 함께 있자야.


이유가 궁금하다고? 그건 너랑 있으면 '척'하지 않아도 되거든. 너는 내가 척할 때면 귀신처럼 알더라고. 그렇다고 내가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도 아냐. 난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안 할 생각이야. 노력을 하다 보면 자꾸 나한테만 집중하거든. 난 나도 궁금하지만 네가 더 궁금해. 너 말고 세계도 궁금하지. 중력과 자기력과 마찰력도 궁금하고,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궁금해.


너는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지. 깔마 좋은 사람인척 하지 마. 깔마 훌륭한 척하지 마, 다 알거든. 난 그냥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너를 만나면 되는 거야. 어른과 너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런 거지.


에레네스트 아저씨도 말괄량이 셀레스티나와 함께 있는 게 힘들지만 좋았나 봐. "어른이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라고 잔소리를 하는 다른 곰 어른에게 "우리 같이 비 오는 날 소풍을 함께 해요. "라고 권하거든.


언젠가 네가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라고 말했을 때, 마음이 아팠어. 너한테 어떤 근사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생각이 안 나더라고. 난 그랬어. "응,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그거 알아? 세상 모든 사람은 자기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해. 왜냐면 다른 사람 마음은 모르니까." 너는 내 말을 이해했는지 그냥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어. 그래서 나는 또 그랬지. "이렇게 핫초코를 사주는 교사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너는 또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라. 그런데 참 이상해. 네 얼굴이 그다지 어두워 보이지 않았어.


나는 너한테 핫초코를 사주고, 너는 나를 웃게 해 주고, 나는 너한테 잔소리를 하고, 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투덜거리고, 또 나는 너한테 핫초코를 사주고...


우리는 그렇게 싸우면서, 웃으면서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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