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것들의 나탈리
“영화 굉장히 좋더라.”는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했더랬다.
영화를 보고 난 후배들이 그랬다.
“왜요?” “어디가 좋아요?”
나탈리는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중년 여성이다. 나탈리가 집필했던 철학교과서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이유로 폐기된다. 나탈리의 학생들은 그녀에게 구시대의 유물이라며 비판한다. 나탈리의 남편은 젊은 애인을 찾아 그녀에게 이혼을 요청한다. 나탈리의 골칫거리였던 엄마는 죽고, 그녀는 혼자 장례를 준비해야 한다.
나탈리에게 다가온 사실을 나열해 보니 끔찍하다. 이런 재료로 예상할 수 있는 영화의 장르는? 막장, 인간승리, 쓸쓸한 중년 멜로. 다 아니다. 막장의 요소가 없지 않으나, 쓸쓸하기도 하나, 결국은 인간 승리라고 결론지을 수도 있으나 아니다.
나탈리를 연기하는 이자벨 위페르는 묘한 얼굴을 지녔다. 신경질적이고 광적인 파국을 누구보다 잘 보여주다가도, ‘뭐 어쩌라고’하는 표정 역시 어울린다. 홍상수 영화에 출연했을 때는 장난기와 따뜻함을 온몸으로 발사한다. <다가오는 것들>의 이자벨 위페르는 이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 예민하고, 무심하고, 악의적인 장난기와 관심, 담담한 외로움이 장면이 바뀔 때마다 교차한다.
영화도 그렇다. 그녀는 울고, 좌절하고, 10대의 제자들에게 화를 내고, 남편을 조롱하고, 난처해하고, 쪼그라들고, 어쩔 줄 몰라한다.
삶도 이렇지 않나?
절망의 사실이 다가왔을 때 사람은 단일한 태도를 보일까? 우울하게 혹은 수동적으로 혹은 능동적으로 혹은 희망에 차서. 온갖 지랄 맞고 복잡한 감점을 경험하지 않나? 그런데 왜 숱한 스토리와 숱한 교훈은 지랄과 복잡보다는 올바르고 간단한 이야기를 하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지랄 맞고 복잡하지 않은 걸까?
패턴이라는 건 있을 수 있겠다. 나 같은 경우는 온갖 성질을 나와 타인에게 다 내다가, 현실을 인정하자로 결론을 내리고, 또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현실을 개선하자고 할 테고, 어떤 사람은 눈을 꼭 감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탈리처럼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닥친다면, 그 패턴이라는 것도 무너지지 않을까?
나탈리는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답게 지적이며, 젊은 시절 누구보다도 진보적이었으며, 현실을 유지하는 경제적 자본도 있고, 중년임에도 성적 매력까지 잃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한다. 다가오는 것들이 너무 어마 무시해서.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그랬다. 나탈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이 내게도 닥쳤거나 곧 닥칠 문제다. 나이 든다는 건, 삶의 후반부에 내가 맞이하고 있거나 맞이할 현실은 바로 저런, 어쩌면 더 심할 수도 있다. 그러니 나는 영화를 보는 그때도, 그 이후에도, 앞으로도 나탈리처럼 어쩔 줄 몰라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나는 그녀보다 돈도 없고, 번듯한 직장도 없고, 성적 매력도 없고, 아이고가 세 번쯤 나온다.
영화는 현실을 현실로 놔둔다. 중반 이후 나탈리의 젊은 제자 파비앙이 등장한다. 매력적인 남성이다. 어느 영화라면 나탈리와 파비앙의 어떤 로맨스를 보여줄 텐데, 영화는 정반대다. 로맨스는 일도 안 나온다. 나탈리는 파비앙이 속한 진보적인 공동체에 머물면서, 자신은 이들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인식한다. 젊은 그들은 그들이고, 나탈리는 나탈리다. 아니 젊고 늙음의 문제가 아니다. 나탈리는 더 이상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서, 자신을 타인에게 맞출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다.
영화가 진짜 좋았던 지점은 바로 여기다.
맞출 필요 없음, 노력하지 않을 것임. 나는 나, 타인은 타인.
비록 외롭고, 비록 쓸쓸하고, 어쩌면 궁핍하더라도.
후배들이 왜 좋았냐고 물어봤을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마 별 대답을 안 했지 싶다. 사십 대 후반의 나처럼 후배들이 영화를 보긴 힘들었을 것 같다. <다가오는 것들>을 좋아하는 젊은이를 상상해 보니, 좀 그렇다. 지나치게 성숙하고 배려 깊은 젊음은 슬프다. (이것도 꼰대 의식일까? 그럴 수도)
영화 말미쯤 나는 어떤 위로를 받았다. 위로의 성격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힘들다. 손자와 눈 맞춤을 하며 웃는 그녀를 보고 위로를 받았을 수도, 혼자 장례를 치르는 일이 짐작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배웠을 수도, 이제는 섣부른 희망에 기대지 않을 준비를 했기 때문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