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진,『에디토리얼 씽킹』
스마트폰과 SNS가 보급된 2010년대 이후 신문과 잡지가 쇠퇴했지만, 최혜진 작가는 오히려 세상이 ‘잡지화’되고 있다고 본다. 잡지의 편집 문법인 추천 목록, 큐레이션, 하우투, 후기 형식이 스타일쉐어, 오늘의집, 화해 같은 디지털 서비스 전반으로 확산됐고, 브랜드와 플랫폼 기업들까지 에디터를 채용하는 시대가 됐다. 정보와 상품, 콘텐츠가 포화된 환경에서 에디팅은 잡음 속 신호를 골라 의미와 메시지를 구조화하는 핵심 역량이 되었으며, 에디토리얼 씽킹은 정보를 맥락화해 독자를 설득하는 사고방식으로, 동시대 독자의 인식 지형을 읽는 감각을 요구한다.
수집이 곧 창조적 의미를 보장하지는 않으며, 핵심은 ‘모으기’가 아니라 의미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능력에 있다. 사소한 재료 속 메시지와 맥락을 질문하고 탐색하는 태도가 에디터적 사고를 키우며, 이를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에디터는 당장의 쓸모와 무관하게 신선함이나 가능성이 느껴지는 재료를 확보하고, 분류와 의미 부여는 이후의 과정으로 남겨둔다. 이러한 사고의 기반에는 잡다함을 배제하지 않고 카오스 속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신호와 질서를 믿으며 머무르는 태도가 자리한다.
우리가 접하는 사물과 낱말에는 사전적이고 고정된 외연적 의미와, 문화·시대·사회에 따라 유동적으로 확장되는 내연적 의미가 있으며, 예컨대 ‘사과/애플’, ‘검정/블랙’처럼 외연은 같아도 내연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내연적 의미를 풍성하게 떠올리려면 대상에 대해 질문하는 방식이 효과적인데, 구성 요소(무엇으로 이루어졌나), 감각적 특징(어떤 느낌인가), 기능과 쓰임(어디에 쓰이나), 연관된 인물·장소·사물(무엇이 떠오르나), 그리고 동의어·유의어·상위어·하위어·반의어 등을 탐색함으로써 대상을 다각도로 해체하고 확장해 볼 수 있다.
칵테일파티 효과라는 인지심리학 개념이 있다. 산만하고 소란스러운 환경 안에서도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를 우선으로 알아보고 선택하는 뇌의 기능을 뜻한다. 파티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떠들면 우리 귀에는 청각 정보가 대량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우리 뇌는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예를 들어 대화 상대의 목소리, 누군가 부르는 내이름-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다른 소리를 잡음으로 처리해버린다.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면 내가 산 모델이 갑자기 길에 많아진 기분을 느끼는 것, 이사를 앞두고 가구를 장만해야 하면 어딜 가도 가구만 눈에 들어오는 것 모두 같은 맥락의 인지 작용이다. 비슷한 원리로 질문은 지금 내가 어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짚어준다. 질문을 품고 있으면 정보는 딸려온다. 질문이 자석이라면 정보는 철가루다.
연상을 통해 재료의 가능성을 두루 살핀 이후에 해야 할 작업은 '정리'다. 에디터는 일단 풍성하게 재료를 모은 다음 분류 기준을 고안해서 재료를 정리하고 배치한다. 손 안에 든 재로를 특정 기준을 세워 정리하고, 그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의미나 시사점을 찾아내기 위해 습관처럼 질문한다.
이걸 뭐랑 묶지?
묶어서 어떤 이름을 붙이지?
이 두 문장은 설득력 있는 목차나 보고서 개요를 짤 때도 유용하다.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은 설득력이 감정이입과 상상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에디터라면 콘텐츠를 볼 상대방-클라이언트, 상사, 독자-입장에서 궁금한 점이 무엇일지 상상할 줄 알아야 한다. 업무용 문서라고 딱딱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앞서 중요하게 설명한 연상 작용처럼 편안한 일상어로 생각나는 대로 끼적이면 된다.
브랜드 아카이브 북을 제작하려는 회사의 CEO라면 어떤 질문이 있을까?
브랜드 아카이브 북을 만들면 뭐가 좋나?
꼭 지금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뭔가?
-> 타당성 검토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만들었나?
잘 만든 브랜드 북은 어떤 특징이 있나? 어느 외주사가 잘 만드나?
-> 시장 현황, 사례 연구
어떤 내용을 담게 될까?
왜 그런 내용을 담아야 할까?
-> 기획 방향성
제작 기간과 비용은 얼마나 들까?
마케팅에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
-> 일정, 예산 계획
작가가 단행본을 기획할 때는 독자의 궁금증을 상상해 질문과 아이디어를 분류·집단화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상위 개념과 구조를 통해 콘텐츠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며 제목과 편집 방향을 정한다. 범주화는 보이지 않던 대상·행동·상황의 측면을 드러내 관점을 명확히 하고, 숨은 속성을 발견하며, 전개와 결과를 예측하게 돕는다. 이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요소의 유사성과 연결을 포착하는 능력, 즉 은유와 유추의 사고와 맞닿아 있으며, 무질서한 재료를 새로운 의미와 메시지로 재구성하는 에디토리얼 씽킹의 핵심이 된다.
서로 다른 영역의 성공 사례나 개념(A)을 다른 분야(B)에 적용해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일상적 사고이자 오래된 전략이며, 이런 비유와 조합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유는 결국 관계를 포착하는 능력에 기반한다.《버즈피드》디자이너의 ‘Is Your Startup Idea Already Taken?’처럼 기존 사업 모델을 다양한 산업군에 대입해 가능성을 탐색하는 접근 역시 같은 맥락으로,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요소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본질화하고, 유사성과 연관성을 발견하며, 적절한 분류 기준을 세우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편집은 단순한 정보 정리가 아니라 의미를 설계하는 행위로, 정보의 배열 방식에 따라 인지 경험이 달라진다. 구조가 명확하면 이해는 쉬워지지만 자극은 약해지고, 낯선 구조는 해석을 어렵게 하지만 사고를 자극한다. 따라서 좋은 편집의 핵심은 독자 성향에 맞춰 정보들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는 감각에 있으며, 의미는 개별 요소가 아니라 요소 간 관계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관점은 글과 이미지뿐 아니라 브랜딩에도 적용되는데, 브랜딩의 본질 역시 연상 이미지 관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토스는 기존의 '공 던지듯 쉬운 금융'이라는 기존의 연상 이미지를 지우고, 3D 로고와 함께 '새로운 차원을 향한 비틀기(도전)'라는 새로운 연상 경로를 제안했다. 토스(던지다, 뒤섞다)라는 단어에 이전까지는 멀리에 있던 '도전'이라는 연상 개념을 가까이 놓기 위해 ‘쉬운 금융’ 이미지를 넘어 ‘도전’이라는 새로운 연상 경로를 구축했다. 이처럼 다양한 브랜드 사례를 통해 정보 간 간격과 관계 설계의 중요성을 읽어낼 수 있다.
창작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기존 레퍼런스를 해석·조합·변형해 자기화하는 과정이며, 오늘날 독창성은 무(無)에서의 창조보다 재배치와 연결 능력에 가깝다. 많은 작품들이 유사성을 공유하듯 창작자는 레퍼런스를 피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 차용이 아닌 의미화와 재구성이다. 이를 위해 독해력, 유추·추론 능력, 연상 및 변형 능력, 정보 조직력이 필요하며, SCAMPER 같은 사고 도구(대체, 결합, 적용, 수정, 다른 용도, 제거, 재배열)를 통해 레퍼런스를 분해하고 새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독창성은 거창한 차별성이 아니라 기존 요소에 자신의 관점과 해석을 더하는 데서 발생하며, 5~10%의 차이가 작품의 고유성을 만든다. 따라서 레퍼런스의 존재를 두려워하기보다 깊이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조합하는 태도가 창작의 핵심이다.
콘텐츠 제작에서 가장 핵심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what to say)’와 ‘어떻게 말할 것인가(how to say)’를 명확히 하는 컨셉 정의이며, 이는 작업 전체의 방향과 기준이 된다. 최혜진 작가는 편집자로 일하며 받은 “이 글의 야마가 뭐냐”는 질문을 통해 컨셉의 중요성을 체감했고,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대상의 본질을 규정하는 질문—예컨대 집, 책상, 그림책이란 무엇인가—을 던지며 차별화된 관점을 구축했다. 직방 브랜드 매거진 《디렉토리》에서는 집을 물질적 조건과 심리적 욕망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데스커의 매거진《디퍼》에서는 책상을 생각을 현실로 바꾸는 도구이자 비어 있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정의했듯, 컨셉은 표현 방식과 형식을 자연스럽게 결정한다. 결국 좋은 컨셉은 새로움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해석의 기준이며, 창작자는 끊임없이 본질을 묻고 자신만의 정의를 세우는 과정 속에서 콘텐츠의 힘을 만든다.
같은 사건이나 자료라도 무엇을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요약이 나온다. 예를 들어 하나의 사건을 다룰 때, 화제성이 중요한《디스패치》는 인물 간의 관계와 감정적 드라마를 핵심으로 잡고, 패셔너블한 이미지가 최우선인《보그》는 스타일과 시각적 이미지를 중심에 두며, 비즈니스 전망을 다루는《포브스》는 비즈니스 가치나 시장 영향 같은 구조적 의미를 핵심으로 삼는다. 사건은 같지만 매체의 관점과 맥락이 ‘무엇이 중요한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데이터 안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맥락과 목적, 독자의 기대에 의해 선택된다. 요약과 정리는 단순히 내용을 줄이는 작업이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본질을 정의할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이다. 결국 ‘핵심을 알아보는 눈’이란 정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관점 설정과 의미 구조화 능력에 가깝다.
같은 정보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정보 자체에는 고정된 의미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어떤 관점과 조건 속에서 그것을 바라보느냐가 의미를 결정한다. 동일한 사건이나 이미지, 메시지라도 어떤 요소를 강조하고 어떤 기준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정 반응과 판단이 달라진다.
성수동에 멋진 카페가 많이 생기는 현상을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에디터 A씨는 '요즘 뜨는 성수동의 멋진 카페 10곳'이라는 기획을, 에디터 B씨는 '싱글 오리진 vs. 블렌딩, 성수동 카페 지형도'라는 기획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에디터 A씨의 기획은 에디터적 사고력을 초급 레벨로 발휘한 기획이다. 일단 열 곳을 선별했다는 면에서 큐레이션이 들어갔지만, 어떤 기준으로 큐레이션했는지 보는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요즘 뜬다', '멋지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 기획자 스스로 정의하지 못했다. 현상에 대한 자신의 입장 혹은 관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기획은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기억에서는 금방 잊힌다.
에디터 B씨의 기획은 에디터적 사고력을 일정 수준 이상 발휘한 기획이다. 성수동 카페를 조사해보니 가게마다 간판스타처럼 알려진 원두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싱글 오리진파와 블렌딩파로 나누어 소개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지형도'라는 시각 표현을 이용해 로컬 콘텐츠로서 정체성을 부각시키겠다는 의도 역시 읽힌다. 현상을 바라보는 기획자의 입장과 해석이 느껴지기 때문에 이런 콘텐츠는 독자의 기억에 각인된다.
자신의 아이디어나 타인의 창작물을 검토할 때, 무의식적으로 전제하는 준거 기준(frame of reference)이 무엇인지 살피는 습관이 필요하다. 에디터 A씨 기획의 근간에는 '카페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발빠르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에디터 B씨가 딛고 있는 전제는 뭘까? '카페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원두 맛'이라는 믿음 아닐까?
'현금으로 결제하면 10% 이익' vs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10% 손해'. 둘은 동일한 현상을 서술한 카피다. 전자는 이익 프레임을 제시했고, 후자는 손해 프레임을 제시했다. 이때 소비자는 어느 문장에 흔들릴까? 사람들은 동일한 수준의 이익이 주는 충격보다 동일한 수준의 손실이 주는 충격을 심리적으로 훨씬 크게 받아들인다. 때문에 같은 현상도 손해 프레임으로 메시지를 구성하면 설득력이 높아진다. 소비자 메시지의 표현 방식처럼 프레임의 차이는 인식과 해석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스스로 개념을 정의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카페란 무엇인가? 요즘 뜬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멋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편집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취향이란 무엇인가? 일이란 무엇인가? 질문하면서 인식의 심해로 내려가보는 경험, 원형질의 알맹이를 손에 쥐려 노력하는 시간. 초라하게 느껴져도 자기 관점을 믿고 스스로 개념을 정의하려 애써보는 경험은 너무나 소중하다. 세상을 보는 당신의 두 눈, 정보를 해석하고 세상과 호응하는 당신의 방식은 귀하고 소중하다. 뛰어나서가 아니다. 화려해서가 아니다. 유일해서다. 당신이 이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렇다. 그러니 부디 질문하기를, 입장을 갖기를, 드러내기를!
최혜진 작가는 인턴 에디터 시절 기사 작성 과정에서 ‘나’, ‘내가’와 같은 1인칭 표현을 반복적으로 삭제하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당시 편집 관행은 감정, 인상, 해석을 배제하고 객관적 사실 중심의 서술을 이상적인 기준으로 요구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객관성의 개념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된다. 완전히 중립적인 시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우리가 객관적이라 부르는 사실 역시 선택과 해석의 결과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객관성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시대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기준에 가깝다. 과학, 예술, 평가 체계 모두 특정 관점과 조건에 영향을 받으며, 해석과 주관은 어떤 글쓰기에서도 불가피하게 개입한다. 감정과 인상을 제거한다고 해서 진정한 객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며, 결국 중요한 것은 주관과 객관의 대립이 아니라 얼마나 논리적이고 정교하게 관점을 구성해 설득력을 확보하느냐라는 결론에 이른다.
사람과 기억, 관계는 다면체와 닮아 있다. 하나의 단단한 실체처럼 보이지만, 시선이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면이 드러난다. 어떤 면은 빛을 반사하고, 어떤 면은 그림자를 품는다. 글을 쓴다는 일은 이 복잡한 다면체를 통째로 옮겨 적는 작업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창작은 결국 수많은 면 중 일부를 선택해 바라보고, 그 선택을 하나의 형상으로 굳히는 과정이다. 문제는 무엇이 진실이냐가 아니라, 어떤 면을 기준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구성할 것인가에 가깝다.
누군가를 쓴다는 일은 늘 이 질문과 마주하게 만든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는가, 나쁜 사람이었는가. 그러나 다면체를 평면으로 단순화하려는 순간, 우리는 필연적으로 무엇인가를 생략한다. 그 생략은 왜곡이 아니라 인식과 표현의 조건이다. 글쓰기는 다층적인 현실을 완벽히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특정한 면을 붙잡아 의미를 만들어내는 선택의 기술이다.
좋은 질문을 만드는 첫 번째 태도는 상대와 상황에 반응하고 있는 현재의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다. 질문이 사소해 보이거나 개인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억누르지 않고, 스스로 궁금한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질문의 체면이나 안전한 형식을 계산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질문은 힘을 잃는다.
두 번째 태도는 세상과 자신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전제들을 의심하는 것이다. 익숙하고 듣기 좋은 말, 당연하게 여겨지는 해석을 그대로 소비하지 않고 한 번 더 흘겨보는 태도다. 질문은 정보를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 사고의 전제를 다시 구성하는 계기가 된다.
세 번째 태도는 사안을 바라보는 위치와 맥락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관점과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질문자가 위치를 바꿔 상상할 때 사고의 폭이 확장되고, 보이지 않던 층위가 드러난다.
네 번째 태도는 결과보다 과정, 과정보다 이유를 묻는 것이다. 무엇을 했는가에 머무는 질문은 표면적 서술에 그치기 쉽지만, 어떻게와 왜를 묻는 질문은 경험의 구조와 감정, 동기를 건드린다. 좋은 질문은 사건의 목록이 아니라 의미가 형성되는 경로를 향한다.
다섯 번째 태도는 취재원과 독자 사이를 오가며 상상하는 것이다. 질문자는 한쪽의 입장에 고정되지 않고 양쪽 위치로 건너가 본다. 상대의 경험과 독자의 궁금증을 동시에 고려하며, 둘 사이의 간극을 연결하려는 태도 속에서 질문은 비로소 설득력과 생명력을 갖는다.
비주얼 감각은 외국어 능력처럼 표준화하거나 시험으로 측정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며 개인의 경험과 축적에 의해 형성된다. 과거 핀터레스트 같은 도구가 없던 시절 최혜진 작가는 스스로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며 수많은 시각 자료를 수집, 분류, 태깅했고, 그 과정에서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거리’를 감각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훈련했다. 핵심 개념은 메시지와 비주얼 요소 간의 거리 조절로, 거리가 너무 좁으면 새로움이 없고 너무 멀면 이해가 어려워진다.
《보스턴》매거진 2014년 9월호의 표제는 "Don't Stress"다. 스트레스라는 주제를 시각화하기 위해 편집자와 아트디렉터는 연상 그물망을 펼쳤을 것이다. 다양한 연상어 중 '연필 잘근잘근 씹기'가 떠올랐을 것이고, 씹힌 연필만 보여줘도 독자가'스트레스'라는 핵심 메시지를 이해할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메시지와 비주얼 요소 사이의 거리가 너무 좁지도, 너무 멀지도 않아 보편적이면서도 위트가 살짝 느껴진다.
《버라이어티》2023년 5월 표지는 여백이 가장 큰 비주얼 재료다. 표제 문장을 보자. "No Words. What the writers strike means for Hollywood" 미국 할리우드 작가 9,000여 명이 파업에 들어간 소식을 심도 있게 전하는 호였다. '작가 파업'이라는 주제어를 시각화하기 위해 역시 편집자와 아트디렉터는 연상 그물망을 펼쳤을 것이다. 작가의 작업 도구인 연필을 재료로 사용했지만, 글씨를 쓰는 장면 대신 연필을 깎고 남은 흔적을 보여준다. 표제인 "No Words"와 결합해 메시지가 수면 아래로 흐른다. '작가는 열심히 일할 준비를 했는데, 아무 단어도 쓰지 않았다'. 평소보다 표제 서체 크기를 확 줄여서 여백을 강조했다. 여백은 침묵을 시각화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침묵은 파업을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