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라는 이름

5년동안 그리던 '산티아고'를 위한 준비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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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웹툰, 비바산티아고)


여행을 떠나는 이유,


나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무엇이라 대답해야 하는 걸까, 나는 아주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나를 찾아나섰다"는 너무 추상적인 이유가 아닌 좀 더 깊은 이유, 왜 당신은 당신을 찾아 떠나야 했습니까?에 조금 더 '괜찮은 답'을 찾아내기 위한 것 말이다.



이 길을 걷게 된 이유를 곰곰히 되짚어보면 그 것은 내가 가장 아끼는 기억의 한 조각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제주대학교 중앙도서관 3층, 그 곳은 내가 학교생활을 하면서 가장 오래 머물던 곳이자 위로의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그 곳을 좋아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그 곳에서 새파란 제주도 바다가 멀찌감치 보였고 그 바다 끄트머리 어딘가에 내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어떤 안도감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해가 떠있는 낮시간이면 언제나처럼 따스한 편안함을 내리쬐어주는 그 책장에 닿게 된 건 그저 우연이었다. 따스한 햇살에 이끌려 찾아간 구석진 책장에는 아주 작은 먼지오라기가 햇살에 반사되며 조용한 비행을 하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닿을 수록 멀어지는 먼지에 시선을 빼앗겨 한참을 들여다보던 중, 그 먼지가 내려앉은 책에 비로소 시선이 옮아갔다.



'산티아고 순례길'



그렇게 나는 순례길, 이라는 조금은 무겁고 약간은 철학적인 여행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때 마침 제주도에 생겨난 '올레길'을 홀로 걸으며 나는 올레길이 바로 '산티아고'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올레길과 산티아고의 묘한 접점 사이를 끊임없이 이어가며 '꿈'이라 불리는 여정을 조금씩 준비하게 된 것이다. '가고싶다'는 막연한 꿈은 여러권의 산티아고 책을 통해 점차 구체화 되어갔고 어느 순간부터 그 꿈은 '계획'이 되었고 4년이 흘렀을 때 즈음에는 모두가 '나'를 '산티아고'와 같은 단어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내 꿈은 점차 현실이 되어갔던 것 같다.



오랫동안 그리던 산티아고,

나는 어느샌가 눈을 감으면 그 길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푸른 밀밭 사이를 간지럽히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 길이 너무나 간절해지는 날에는 그 곳의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나에게 간절한 무엇이 생겼다.



이 '꿈'이라는 녀석이 얼마나 나를 굳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공연기획사 인턴을 하다 회사가 망했을 때도, 다단계회사에 넘어갈 뻔 했을 때도, 1년 간 나홀로 서울에서 고시원 생활을 했을 때도, 돈 몇 푼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도 그리고 호주 생활을 하면서 인턴을 하던 회사와 국가기관의 무관심과 권력이라는 가면을 뒤짚어쓴 그 어떤 수모를 겪어낼 때도 '꿈(산티아고)' 하나로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와 조금 다른 점은 이 '꿈'들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길을 걷기 전에도, 길을 걸으면서도 그리고 길을 걷고나서도 말이다.



30살을 앞두고 있는 지금, 내가 통장에 가장 많이 돈을 모아두었을 때는 아마 산티아고를 앞두고 였던 것 같다. 호주 워킹비자가 끝나기 전, 4개월의 시간. 완전히 비어버린 통장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절박함'이라는 그 어떤 요소가 묻어난다. 나는 절박했다. 당장 집 값을 낼 돈이 없었기에 무엇이든 시켜만 주면 할 수 있는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었으니까.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사장님께 산티아고에 대한 계획과 책임감을 굉장히 지속적으로 어필한 결과 나는 일주일 중 7일 내내 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해가 뜨는 시간에 출근을 했고 일주일에 3일은 13시간동안 아이스크림 가게 안에서 일했지만 차곡차곡 쌓여가는 통장의 숫자들을 보면서 굉장히 행복했다. 350만원의 돈이 모이자 마자 나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고 50리터의 배낭을 꾸렸다. 55일의 여정동안 입에 겨우 풀칠을 할 수 있을 돈밖에 모으지 못했지만 '꿈'을 눈 앞에 둔 나는 꽤나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와 일주일 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

친구들은 모두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홀로 세상이 원하는 방향이 아닌 그 어떤 곳을 향해 나아가는 딸이, 부모와 상의 한 마디 없이 통보를 내리는 딸이 아빠는 분명히 불만이셨던게다. 기어코 그 곳에 가겠다는 나를 막기 위해 아빠는 비행기 티켓이 출력된 종이를 찢으셨고 결국에는 뺨을 때리셨다. 더 큰 일을 막기 위해 엄마는 내가 방으로 들어가 숨을 수 있는 시간을 버셨고 아빠는 밤새 내 방문을 두드리다 결국 지쳐 잠드셨다.

밤새 잠들 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왜 할 수 없는지, 아빠는 왜 그래야만 했는지 그리고 엄마는 왜 항상 중간에서 울고만 있는 건지 말이다. 이른 새벽, 아빠가 눈 뜨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50리터 배낭을 메고 살금살금 빠져나가던 나를 엄마가 불러 세웠다. 아마 밤새 엄마도 잠들지 못했던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지만 나는 꼭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다.


"엄마,

나는 친구가 자살한 걸 보면서 참 인생은 부질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한번 뿐인 삶인데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한번쯤 해봐야하는 거 아니야? 나 여기 갔다오면 내일 죽어도 후회 없을 것 같아서 꼭 가야겠어.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알고싶어. 미안해 엄마."



엄마는 뭐든지 다 안다는 그 말을 나는 그 순간 다시 한 번 느꼈다. 내 손에 말없이 쥐어주는 엄마의 비상금. 어쩌면 너무나도 큰 돈. 나는 50리터 배낭에 죄책감까지 짊어진 채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상경했다.



사실 내가 길을 떠나는 화두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였지만 떠나기 바로 전, 친구와 나누던 대화와 엄마의 눈물로 인해 길을 걸으며 나는 다른 질문 하나를 짊어지고 33일의 순례길을 걷게 되었다.



"너는 5살 이전의 기억 중에서 뭐가 가장 기억에 남아?"



나는 그 때 대답했다.



"음.... 4살 때 즈음이었나 친구가 놀러와서 같이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아빠한테 뺨 맞고 의자채로 넘어져서 코피 났던 일"


그리고 이 길을 걸으면서 깨달았다. 이 작은 일이 나의 트라우마가 되어 20여년동안 어른이 된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내가 아버지 당신에게 그렇게나 날을 세우고 지내왔다는 사실을.




길을 걸으면서 아빠를 아주 많이 생각했다.

비행기를 타는 그 순간부터.


길을 걸어야하는 이유는 길을 걷는 그 순간 깨닫게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