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그 후의 이야기
언젠가 그 길로 향할 누군가를 위해서 산티아고 위에서 느낀 모든 것들을 써내려 갑니다.
그 길이 저에게 주었던 영감만큼 당신께도 멋진 깨달음이 찾아오길 바랍니다.
부엔 카미노!
대학생 시절, 햇살이 내리쬐는 3층 창가 여행 서적 코너에 한참 관심을 가지던 내 눈에 띄던 책의 제목은 산티아고 라는 단어를 담고 있었다. 낯설지만 그 묘한 어감이 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꺼내 들었던 책 한권과 그 책을 향하기까지 내 눈앞에서 잠시 눈길을 끌었던 먼지의 조용한 비행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여정으로 닿는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는 살아가기 위한 영감이 되었다. 산티아고를 담고 있는 책과의 우연한 만남이 결국 나에게는 5년간의 꿈이 되었고 마침내는 11kg의 배낭을 메고 그 길위에 서게 만들었다. 한 어른은 나에게 보여지기 위한 선택이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기죽이려 하셨지만 나는 되려 당당하게 '온전한 나의 선택과 걸음에 의해 걸었던 33일의 시간과 견줄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지금까지 그러했고 또 앞으로도 가장 힘든 순간에 위로가 될 여정'이될 것이라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은 본인의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경험으로 타인을 판단하거나 섣부른 충고를 하려 나서지만 사실 타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지 않는 이상 한 면만을 보고 건내는 충고는 쓰레기통에 들어가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한다. 본인의 생각만으로 타인을 짓누르려는 성질의 그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그 길 위의 모든 순간들은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빛은 바랬지만 한번도 그 본질이 녹슨 적은 없었다.
내가 선택한 나의 길
산티아고를 가기로 결정하고 돈을 벌며 경험을 쌓기 위해 호주로 떠나던 순간을 기억한다. 국가인턴이라는 허울 좋은 기회를 얻어 호주에 갔지만 업체에서 많은 서러움과 모욕을 당하고 결국 법정 싸움까지 갔던 그 순간에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6개월 후 산티아고에 가겠다는 막연한 목표 하나였다. 통장 잔고는 매주 다가오는 집세를 내느라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나는 먹고싶은 것 하나 제대로 사먹을 수 없는 하루살이 여행생활자(워홀러)에 불과했다. 잔뜩 지칠대로 지친 심신이었지만 그 순간에도 나를 몇 번이고 일으켜 세우던 것은 책 속에서 수 십번도 더 보았던 노란색 화살표였고 저마다의 짐을 지고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뒷모습이었다. 너무도 간절해서 눈을 감으면 청보리 밭의 바람이 눈 앞에 그려질 정도로 매일 선명해져가는 화살표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 삶으로 이끌었고 차비를 아낄 겸 걸었던 7km의 출퇴근길이 나에게는 길을 걷기 위한 체력을 다지는 시간이 되었다. 온전히 내가 선택한 길 그리고 그 선택을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시간들은 그 후에도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게 했고 간절한 무언가를 현실로 그려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아마 그 순간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까지도 타인의 시선과 말에 휘둘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을 어영부영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떤 것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이 받아들이는 '우연의 순간'이 필요하며 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데까지는 흔들리지 않는 목표와 조금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간절하게 이루어진 꿈은 살아가면서 가장 값진 성취감을 남겼다. 내가 오롯이 선택한 나의 길이기에 나는 그 모든 순간을 허투루 보낼 수가 없었다.
800km의 숫자가 주는 용기
" 순례길을 다 걸으려면 몇일이나 걸려요? "
산티아고를 다녀온 경험을 이야기할 때 적어도 그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잊지 않고 이 질문을 던진다. 저마다 다른 무게의 짐과 몸 상태로 길을 걷지만 얼마나 오래 또 얼마나 길게 길을 걷는지에 따라 길을 마치는 시간은 달라진다. 길을 걷는 속도는 저마다 달라서 무엇이 표준이라 말할 수 없고 그 길 위에 서는 이유도 저마다 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숫자로 이루어진 것들이 마음에 닿는 온도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들이 조금 더 따뜻하게 남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숫자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짧지않은 길을 걸어냈다는 변하지 않는 사실과 그 것에서 오는 용기가 아닐까. 적어도 눈에 보여지는 숫자들을 통해 바래기 쉬운 경험들을 조금이나마 선명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누구나 이따금 마주하게 되는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준다. 아무 것도 없이 꿈 하나에서 시작해 몸통만한 배낭을 메고 그 길을 모두 걸었던 시간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서른이 된 나에게 적어도 스스로를 포기 하지 않는 힘과 용기를 주었다. "800km의 길도 모두 걸었으니 이 것도 이겨낼 수 있어"라는 용기는 지금까지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면 나를 지탱해주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세상에 사연없는 사람은 없다
혼자 길을 걸으면 가장 좋은 것은 길 위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도 모르는 혹은 잊고 있던 자신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왜 이 길을 걷게 된거야?"라는 모두가 서로에게 던지는 이 질문만큼 여정의 의미를 찾기에 좋은 시간은 없다. 이 것은 타인에게 느낌표를 전달하기에도 그리고 스스로에게 대답하기에도 의미있는 질문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이유는 나 스스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며 내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고 또 다른 이들은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사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서로의 언어로 인해 깊은 대화를 할 수는 없었지만 일본에서 산티아고로 날아온 유코라는 친구와의 시간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큰 눈으로 아무런 미움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듯 보였던 그녀와 길 위에서 혹은 숙소에서 종종 마주치며 눈 인사를 나누곤 했다. 발걸음이 비슷한 우리가 어느 날 같은 길 위에 섰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보폭에 맞추며 길 동무가 되었다. 한참동안 길을 걷던 중 매일처럼 그녀가 지니고 다니던 주머니 목걸이가 궁금했던 나는 그녀에게 그 것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했고 마침내 그녀는 길을 걷게 된 이유와 함께 목걸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의 목에 있는 것은 산티아고를 채 완주하지 못한 아버지의 채 화장되지 않고 남은 잔해였다. 그녀는 내가 길을 걷던 이야기를 들으며 본인도 가지고 살아가던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를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던 것이다. 평생 미워하며 살던 아버지를 마침내 용서하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채 완주하지 못했던 산티아고를 함께 완주하기로 마음 먹었다던 그녀의 이야기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오래도록 함께 걸었다. 누군가의 아픔에 함께 눈물을 흘려주는 일 그리고 용기내어 그 것을 꺼내어 놓는 일은 두 사람 모두에게 치유의 시간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티아고를 걷고 돌아온지 5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눈을 감으면 노란색 화살표가 눈 앞에 있는 것만 같다. 그 길이 쉬이 잊혀지지 않는 건 그리고 또 많은 이들이 그 길에 대한 로망을 끊임없이 꺼내어 놓고 있는 건 분명 그 길에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것은 어쩌면 파랑새 동화의 교훈에서처럼 찾으려고 했던 것은 결국 가장 가까운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교훈이거나 오랫동안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던 상처나 트라우마의 치유 혹은 앞으로를 살아가기 위한 용기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번은 아끼는 사람과 떠나고 싶은 곳, 나는 그 리스트에 여전히 산티아고 순례길을 제일 먼저 올려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