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그 후의 이야기: 묵시아 - 피스테라
새벽에 길을 떠나야 피스테라까지 닿을 수 있다는 계획을 토대로 새벽 5시에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알베르게의 키친 자판기에서 카푸치노 버튼을 꾸욱 눌렀다. 고요한 새벽에 홀로 정적을 깨는 자판기 기계음에 괜히 머쓱해져 동전을 만지작 거렸다. 사과 한 알과 카푸치노 한잔으로 배를 채우고 지난 밤, 돼지코를 빌려달라던 에드워드 자리에 돼지코를 찾으러 가보니 작은 쪽지 하나가 함께 남겨져 있다.
'항상 행복하길 빌어'
그 짧고 강렬한 문구에 나는 그만 코끝이 찡해지고 만다. 고마움과 아쉬움이 뒤섞여 쉬이 발걸음을 떼기 어려워지는 오늘, 하지만 오늘은 다시 30km를 걸어야 목적지에 닿게 된다. 이른 아침, 항구를 가득 매운 물안개와 그 사이로 고요히 자리한 묵시아의 풍경은 오래도록 가슴에 자리할 것만 같다.
후니와 함께 걷는 마지막 걸음이다. '폭풍속의 주'라는 브라운아이즈의 노래를 알게 된 건 후니의 노래를 빌려들으면서부터의 일인데 이상하게도 신을 믿지 않는 나에게 그 노래는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오늘은 후니와 그 모든 감정들을 나누고 싶어져 함께 그 노래를 듣자고 청했다. 바라보는 방향이, 가야할 길이 다르지만 길 위에서 후니는 나의 좋은 동료이자 친구였고 인생의 선배이자 작은 것들에 행복해지는 법을 알려준 순례자였다. 길을 걷는동안 그 아이는 나의 작은 신이었고,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여전히, 그 아이를 생각할 때면 종종 눈물이 나곤 했다.
산티아고를 벗어나고부터는 길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를 찾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선 바람에 한참동안이나 잘못된 길을 걸어 다시 원래의 길을 찾아오느라 진을 뺐는데 그런 우리를 보고 계셨던 한 할아버님께서 대문 밖으로 나와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셨다. 우리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내고 다시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뒤돌아본 자리에 여전히 손을 흔들고 계시던 할아버님을 보고선 다시 뛰어가 가방 한켠에 넣어둔 초코바를 쥐어드렸다. 말이 통하진 않았지만 우린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그저 그 웃음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다시 먼 길을 걸을 힘을 얻었다.
F피스테라로 가는 길, M묵시아로 향하는 길.
순례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누군가의 배려가 엿보였다. 길은 듣던대로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묵시아에서 피스테라 구간이 특히나 그랬다. 바다는 쉴새없이 반짝였고 하늘은 청명하고 푸르렀다.
바다와 숲을 고루 느끼며 걷는 길,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겉옷을 하나 둘 벗어 가방 한켠에 차곡차곡 넣었지만 다시 먼 길을 걷는다는 부담에 온 몸은 이미 땀 범벅이 되었다. 자꾸만 들이키는 물 때문인지 나는 오늘따라 자주 숲으로 향했고 후니는 그런 나를 배려해 콧노래를 부르며 앞서 걸었다.
힘이 들 때마다 바다를 보며 위안을 받고 또 다시 걸음을 옮기길 반복하던 중이었다. 오늘은 유난히 한국사람을 많이 만났는데 가방을 택시로 보내고 피스테라에서 묵시아까지 뛰어가는 한 남자분은 특히나 오래 기억에 머물렀다.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는 그 모습은 오래도록 잔상에 남았다.
나는 이미 가벼운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간 사람의 마음이 된다.
얼마나 가볍고 또 행복한 마음일지, 그 멀고도 먼 길을 스스로 걸어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지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함께 가벼워졌다.
피스테라는 꽤나 큰 마을이었다. 피스테라에만 오면 모든 게 다 끝날 줄 알았는데 길은 끝이 없고 우리의 걸음은 조금씩 지쳐갔다. 잠시 걸음을 쉬며 가방에 넣어둔 초코바를 먹는동안 후니는 오늘을 기점으로 수염을 깎고 그의 오랜 상징이었던 밀짚 모자를 태우겠다며 작은 구멍가게에 들러 면도기와 라이터를 한 손에 들고 나왔다.
겨우 찾은 0km의 장소를 위해 묵묵히 오르막길을 오르던 중이었다.
"와우, 이게 누구야! Jessie!!
완전 반가워. 여기까지 걸어온거야? 이제 조금 밖에 안남았으니 조금만 힘내서 걸어봐.
아참, 우리 지난 번에 사진을 못찍어서 너무 아쉬웠는데 우리 사진 한장 찍자"
그렇게 한참을 걷는데 호주에서 온 팽과 브렛이 우리를 반겼다. 우린 짧은 인연이 아쉬워 진한 포옹을 몇번이고 나누었고 그들은 내 뺨에 짧은 입맞춤을 해었다. 그리고 마지막 여정이 남아있는 나를 위해 "부엔 카미노"라며 축복을 나눠주면서 말이다.
드디어 눈 앞에 나타난 0.0km의 사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도달했을 때와는 또 다른 뭉클한 마음이었다. 후니는 아마 이 곳에서야 비로소 뜨거운 눈물을 참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조용히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아름다웠고, 지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이 곳까지 고단한 걸음을 해왔을 이 아이가 대견했다. 그리고 또 고마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름다운 뒷모습을 조용히 담아주는 것 뿐이었으리라.
언젠가 '꽃보다누나'에서 배우 이미연씨에게 지나가던 한국분이 나눴던 말이 떠올랐다.
"항상 마음으로 바라왔어요. 기쁘고 행복하세요"
라는 말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던 이미연씨를 보며 나도 함께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은 흐른다.
힘들었던 순간, 깊고 아팠던 그리고 영원히 낳지 않을 것 같았던 상처도 언젠가는 나아진다.
언젠가는 나아질거라는 그 일말의 희망으로 살아가야 한다. 힘든 순간을 기필코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이, 아프고 힘든 순간도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닫는 지혜가 필요했다.
나도 이제 내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피스테라, 이 곳에서 우리는 한 때 우리의 일부였던 것들을 태워버리기로 했다. 그동안 저마다의 마음 한 켠에서 응어리져가던 감정과 함께 말이다. 후니가 밀짚모자를 던져두었고 나는 장갑을 한 켠에 던졌다. 이미 누군가가 태우고 간 옷가지와 신발 그들의 그을음을 오래오래 내려다 보았다. 그 속에는 그들이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곁을 떠나간 사람과 세상을 떠나버린 가족, 차마 내려놓지 못한 미움과 미련들이 응어리져 함께 남아있었다.
산티아고를 걷는동안 나의 일부였던 무언가를 태우는 의식을 하며 사람들은 그제서야 비로소 카미노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누군가의 시선은 오랫동안 미동도 없이 바다를 향해 있었다. 울어도 좋고, 웃어도 좋고, 소리를 질러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 곳에 닿으면 정말 공(空)의 상태가 된다.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아무런 짐도, 미련도 없는 그런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아마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라고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비워내야 채워갈 수 있어. 라고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그 말의 뜻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서야 마음으로 깨닿고 있다.
다시 돌아온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해가 뉘엇뉘엇 져가는 시간에는 대부분의 알베르게가 순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지라 우리는 숙소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후니와 이미 안면이 있던 언니 덕분에 겨우 알베르게 한 켠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숙소는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하기하도 하는 듯 너무나 황홀한 풍경을 선물해주었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대성당의 모습은 황홀했고 또 아름다웠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의 선물이 이런 모습이라면 몇 번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나는 마음으로 외쳤다.
오랫동안 나의 일부였던 신발과 옷, 양말을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두고 석양이 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날이 어두워져서야 비로소 배가 고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이의 식탁에 맥주 몇 캔을 사오는 수고로움으로 저녁을 해결할 수 있었다.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동안 나는 아쉬움을 어쩌지 못해 홀로 콤포스텔라거리로 나섰다. 작은 골목의 흥겨운 음악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끝에 작은 라이브 펍에 닿게 되었는데 가게 안은 이미 행복한 얼굴을 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가게 밖 한 켠에 오래도록 서서 그들의 행복을 함께 나눴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이토록이나 아쉬울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항상 같은 모습일텐데 내 마음이 변한 것만으로 풍경은 너무나도 달라졌다. 나는 주변이 바뀌면 내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면 나도 질새라 똑같은 상처를 만들고, 그 상처에 또 다시 마음 아파하곤 했다. 내 마음 하나 바꾸기도 힘든데 다른 이의 마음을 바꾸는 건 얼마나 더 힘든 일일까.
마음을 먹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내가 바뀜으로서 주변은 자연스레 바뀌어갈 수 있다는 걸 이젠 알 것만 같다.
산티아고 대 성당 앞에 서서 오래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내일이면 포르투갈로 향한다는 설레임과 이제 정말 카미노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섭섭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후니와도 내일이면 다른 여정을 떠난다. 그날 밤,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한참동안이나 침낭을 들썩였다.
다음 날도 어김없이 많은 순례자들이 사무실 앞에 줄 지어 가방을 두고서 순례자 증서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나는 익숙한 모습의 누군가가 나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걸 발견했다.
벨기에에서 온 레이몬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셨고 그저 하염없이 내 두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셨다. 아마 할아버지도 나도 서로를 평생동안 다시 만날 수 없을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우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으로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었고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언젠가, 문득 그렇게 생각나는 그리운 사람.
나는 카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렇게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히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아름다울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후니와 나는 또 다른 여정을 앞두고 카미노에 마침표를 찍으며 마지막 차 한잔을 나눴다. 후니가 건내준 엽서 한장을 몇 번이고 읽으며 나는 몇 번이고 입 안 가득 느껴지는 쓴맛을 삼켜야했다. 포르투갈로 향하는 버스는 쉴새없이 달리고 있었고 창 밖 풍경은 야속하게 흘렀다.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지기 위한 여정을 다시 시작하는 중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 앞에 다시 섰다.
엄마와 거실에 같이 누워 팩을 하면서 이 길 위에서 느낀 것들을 하나 하나 꺼내놓았다.
엄마는 그래도 잘 다녀왔네, 한 마디 하시고선 목이 막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빠에 대한 내 마음들을, 내가 받은 상처들을 그제서야 깨닫고 꺼내놓는 내가 부모님은 부담스러우셨을지 혹은 마음 아프셨을지 알수 없지만 나는 언젠가는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에게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카푸치노는 그 날따라 어찌나 더 뜨겁던지 -
아빠는 괜히 커피가 쓰다면서 설탕을 넣어달라고 하셨다. 아마 아빠는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이미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겠다. 한참동안 말을 선뜻 꺼내지 못하는 나를 타이르고 또 타이르며 겨우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 나는 아빠를 참 사랑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5살 때 아빠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오랫동안 남아 트라우마로 자리하고 있었어요. 아빠가 나를 때리고 그 상처를 아빠가 치유해주지 않은 채 지금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아요. 그래서 아빠가 무슨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제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 저는 저도 모르게 화가 주체가 되지 않았어요. 그게 지금까지 아빠와 저의 트러블을 종종 만들어 왔던 것 같아요"
물론 아빠가 쉬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아빠는 다른 아빠들도 다 아빠처럼 자식들이 말을 안들으면 때리고 그렇게 체벌하는게 당연한 부모의 교육행위라고 대답을 하셨다. 이미 이런 행동을 예상해서였는지 화가 나지 않았다. 나는 아빠를 바꾸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받은 상처를 아빠가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을 건냈을 뿐이었다. 하루 아침에 무언가가 달라질거라는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그게 내가 이번에 달라진 무언가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하며 단 한번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 아빠의 눈동자를 봤다. 내가 아닌 창 밖을 응시하며 대답하는 아빠의 눈빛은 이미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딸아......'
아빠는 강한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도 원하지 않는 말들을 하고 있었지만 분명 아빠는, 아빠의 눈동자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빠~ 이제 집에 가자. 배고프다. 오늘 저녁엔 맥주 한캔 마실까?"
그 후로도 나는 종종 아빠와 트러블이 있었고 물론 지금도 그렇다 -
하지만 내 마음 속의 상처받은 아이는 그 날 이후로 많이 자랐고 더 많이 웃었다.
좋아하는 일이자 심장이 떨리는 일을 위해 호주에서 20대의 절반을 보냈다. 돈은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 마음먹은 길을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가끔 생각하고 있다. '돈'이 아니라 '뜻'을 보고 길을 걸으면 곧 나도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으며 말이다. 4년이라는 시간동안 사막에서 보낸 시간과 그 곳에서의 깨달음들을 늦지 않게 사람들에게 나누기 위해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카미노가 끝나고 다시 새로운 인생의 카미노를 걷고 있는 것만 같다.
산티아고와 인생의 카미노가 다른 점은 노란색 화살표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방향을 찾고 걸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카미노에는 동반자도 없고 끝이라는 기약이 없으며 도착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도 다르다.
하지만 카미노를 걸으며 얻은 지혜와 용기 그리고 깨달음으로 나는 인생의 카미노도 아주 잘 걸어낼 수 있을거라 믿고 있다.
나의 카미노는 오늘도 여전히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