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장피드포르
생장피드포르
이름을 발음하기 조차 어려운 이 작은 마을은 순례자의 길로 인해 조명을 받기 시작한 곳이다. 이렇다 할 것도 없는 이 작은 마을은 온통 순례자들을 위한 용품을 판매하고 있고 그 속에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다. 지팡이, 우의, 모자 같은 순례길에 필요한 물건들을 대부분 구할 수 있기에 혹여나 빠트리고 온 것이 있다면 너무 걱정하지 말것.
오후 5시가 채 안되서 도착한 작은 마을, 떼베제가 꽤나 요란한 경적 소리를 내며 정차하자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순례자들이 우르르 내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내려야하는지 한참을 어리버리하게 고민하던 사실이 조금은 우습게 느껴질만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역에서 우르르 내렸다. 내 앞을 걷는 몇몇 사람들의 배낭에는 책 속에서 익히 봐왔던 하얀 가리비가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나는 사람들 틈 바구니에 끼어 순례자 사무실로 향했다.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하니 나를 포함해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줄을 서있었는데 옷차림을 보아하니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난히 밝고 튀는 아웃도어 제품을 준비해 온 걸 보면 말이다. 순례길을 걷기 전 수도 없이 찾아 읽은 글들을 읽고 고심하던 끝에 노란색의 신발을 신고 온 나 역시도 누군가에겐 '딱 한국인'처럼 보였을테지만 말이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이 곳을 다녀간 것일까,
궁금하던 찰나, 순례자 사무실 한 켠에 이 곳을 다녀갔다는 다양한 국적의 이름과 사람수가 기록되어 있다.
한참동안이나 Korea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Coree Sud 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처음에 코린, 혹은 수드 꼬레아 라고 했을 때 뭔 말인가.했는데.. 나중에 아! 하고 깨우쳤다는...) 이미 한국인들에게는 꽤나 유명세를 탄 순례길이기에 아마 당신이 이 길을 걷는 동안에도 꽤 많은 한국인들을 만나게 되리라 생각한다. 세상 어디든 한국인이 없는 곳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여행을 하는 내내, 길을 걷는 내내 나는 그 의미를 몸소 깨닫고 있었다.
혼자 길을 걷기 위해 그 곳에 닿은 나조차도 기차에서부터 친구를 만나지 않았는가, 물론 나는 오롯이 혼자 걸으며 생각하기 위함이 목적이었지만 길을 걸으며 결국 나를 깨닫게 되는 과정은 길 위에서 만난 좋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였음을 산티아고 여정이 끝난 후에야,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Refuse _ 라는 단어를 많이 보게 될텐데 알베르게가 있는 장소를 알려준다
대부분의 숙소는 완전히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이를 알고 있던 많은 순례자들은 이미 숙소를 예약하고 왔거나 이 곳에서 이틀 정도를 머물며 여유를 즐기고 여정을 시작했지만 나를 비롯해 또 다른 3명의 한국 여성들은 숙소를 찾다 지쳐 순례자 사무실로 돌아가 도움을 청했다. 첫번째 숙소는 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거절, 두번째 숙소도 다시 거절 당했다. 방이 없는게 아니라 동양인인 우리에게 방을 줄 수 없다는 것. 불어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제빠노, 꼬레아나 걸들은 샤워를 너무 오래해서 싫다는 것이 그 이유인 듯 했다. 순례자 사무실의 도움으로 거절당한 숙소에 겨우겨우 부탁을 하고 들어간 방은 2층의 작은 다락. 아주 작은 방에 처음 만난 4명의 여성이 서로 통성명을 하고 앉아 제일 처음 한 것은 방 값을 계산하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지불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두가 불끈했지만 사실 더 억울한 일은 그 후에 일어났는데 샤워를 하기 위해 제일 먼저 샤워장에 들어갔던 언니가 5분도 채 되기 전에 할머니가 물을 끊어버려 샴푸가 덜 헹궈진 채로 샤워를 마치고 나오게 되었다는 사실. 그 전에 이 길을 걸었던 한국인들이 어떤 생활을 하다 간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완전히 푸대접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서글프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작은 걸음이 적어도 내 뒤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막아야 하는 게 아니겠냐는 화가 섞인 불평을 결국 혼자서 토해내고 말았다.
영어를 잘 못하시는 할머니와 불어를 못하는 우리는 아주 철저하게 바디 랭귀지로 대화를 했다. 그리 친절하지 않은 할머니는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자 등을 떠밀거나 문을 닫아버리는 행동으로 우리를 대하셨는데 기가 죽어버린 나는 정말 3분 만에 샤워를 마치는 쾌거를 이뤄냈다.
조금은 소란스럽게 샤워를 마치고 우리는 서러움에 고픈 배를 부여잡고 생장피드포르라는 작은 마을을 걸었다. 조그만 강이 흐르고 그 강을 끼고 작은 돌다리와 빨간 지붕으로 멋을 더한 마을, 그 사이 자그맣게 자리한 크고 작은 창문들 앞에 서서 나는 조그맣게 셔터를 눌렀다. 그러고보면 내가 찍은 사진들은 유독 카페테리아의 의자와 창문 혹은 문 사진이 많다는것을 알 수 있는데 어쩌면 나는 은연 중에 누군가와의 '소통'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두드려 나가야할 문과 내가 만나게 될 사람들이 문득 궁금해지고 만다.
피레네를 넘기 위해 간단한 요기거리를 구매하고 저녁 식사를 위해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프랑스 남부 또한 스페인처럼 씨에스타라는 문화가 존재하는지 우리는 식사 시간까지 기다려야했고 정각이 되자마자 부끄러움이란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여자처럼 꼿꼿하게 손을 들고 메뉴를 주문했다.
앞으로 한 달동안 정말 지겹도록 먹게 될 순례자 메뉴, 어딜가나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빵, 샐러드, 와인 한잔은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요소라 볼 수 있다. 순례길 시작도 전에 순례자 메뉴에 감탄하는 나를 보며 옆 테이블의 할아버지들이 너털웃음을 터뜨리셨다. 매사에 감동도 잘하고 감정표현을 잘하는 나는 '숨김'이라는 버튼이 고장난 사람인 것 같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아껴주는 거라고도 믿고 있다. 앞으로 더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려면 '숨김'버튼을 장착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할머니가 무서워진 우리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사용해보는 침낭은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처럼 그리 따뜻하진 않았다. 얇은 거적을 덮고 있는듯한 추위에 한참동안 잠들 수 없었지만 사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곳에 왔다는 설레임과 이렇게까지 고집스럽게 순례길을 걸어야했던 나의 이기 그리고 엄마의 눈물이 떠올라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녘, 나를 배웅하던 엄마의 빨간 두 눈이 잊혀지지 않아 나는 아무도 모르게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겁게 울컥이며 올라오는 그 어떤 감정을 추스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만 같았다. 울음이 겨우 멈출 무렵에야 나는 비로소 얕은 잠에 빠져 들었다.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야하는 것일까.
5년동안 꿈꿔오던 그 길은 정말로 내 머릿 속에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던 그 모습일까,
그 길을 걸으면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까,
무수히 많은 물음 끝에 결국 이 곳에 왔다.
그렇게, 길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