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아줌마의 클라이밍 입문기
클라이밍에 입문한 지 세 달 차, 오늘도 암장(클라이밍장)에서 두 시간 동안 클라이밍을 하고 돌아왔다. 초급반부터 함께 수업을 들었던 (귀농을 한) 언니오빠 부부와 함께 팀이 되어 일주일에 나흘을 꼬박 연습을 한다. 운동은 자율적이라 가고 싶지 않을 땐 양해를 구하고 가지 않아도 되지만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은 무척이나 정직한 운동이어서 조금이라도 쉬었다 돌아온 날에는 몸이 한껏 무거워져서 지난주에 풀었던 문제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로프를 잡아줄 파트너가 필요하기 때문에 함께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기를 쓰고(?) 나가야 운동을 할 수 있는 단점이자 장점이 아주 분명한 운동이다. (귀찮더라도 파트너가 운동을 간다면 함께 운동화를 신고 암장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꽤 기쁜 마음을 안고 암장을 나설 수 있었다. 3주 동안 채 해내지 못했던 문제를 비로소 풀었기 때문이었다. 검은색 올리브 모양의 홀드를 3주 동안 노려보면서 찝찝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 이따금 완등을 하는 꿈을 꾸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홀드의 모양을 떠올리며 암장에 누구보다 먼저 향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피자에 올라간 검은 올리브가 미워서(?) 피자도 한동안 멀리했으니 요즘의 나는 클라이밍에 꽤나 미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듯하다. 누군가가 문제를 풀기 위해 비장한 뒷모습으로 암벽 앞에 설 때면 암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의 완등을 응원한다. 어려운 구간을 해냈을 때 "나이스" 혹은 "좋아"라는 구호를 덧붙이면서 말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적당히 꿉꿉한 날씨,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암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스트레칭이다. 완등에 대한 욕심으로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 부상을 입어 오랫동안 클라이밍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근육들이 놀라지 않도록 꼼꼼하게 몸을 풀어주는 것이 제일 먼저 운동을 시작하는 루틴이다. 적당히 몸을 풀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새로 산 암벽화에 발을 구겨 넣는다. 파트너와 함께 오늘의 도전 구간을 정하고 암벽 앞에 선다. 수업시간에 배운 8 자 매듭과 옭매듭 그리고 아래에서 하강을 도와주는 확보기를 파트너와 거듭 확인하고 나면 비로소 클라이밍을 시작하는 준비동작이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암벽을 오르기 전에 파트너와 출발 사인을 주고받은 후 등반이 시작된다.
오늘도 늘 그렇듯이 다소 난이도가 있는 구간에서부터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난해한 구간에서는 서로 길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힘이 빠져있을 땐 응원을 보내기도 하면서 말이다. 3주 동안 채 풀지 못한 홀드 앞에 마침내 섰을 때는 잔뜩 긴장이 되어 호흡을 여러 번 나눠 쉬어야 했는데 몇 주째 같은 문제 앞에서 아쉬움을 안고 집으로 향하는 나를 잘 알기에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주셨다. 그렇게 주위의 격려와 응원을 딛고 마침내 완등에 성공한 순간, 가슴에 가득 쌓여있던 우울들이 하늘로 훨훨 증발했다.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을 해냈을 때의 그 기쁨과 심장이 뛰는 순간이란 어른이 된 이후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으니까.
완등을 하고 내려와 기쁜 마음으로 오늘의 완등을 이끌어준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초크가루(홀드를 잡은 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손에 하얗게 바르는 가루를 '초크'라고 부른다)가 하얗게 묻은 손바닥 군데군데 지난 3개월간 차곡차곡 자리 잡은 굳은살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수많은 실패의 경험이 훈장처럼 손바닥에 쌓인 셈이다.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루트를 탐색하고 반복해서 도전하며 비로소 나만의 길을 완성해 가는 동안 두 몸을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던 두 손은 그 시간들을 차근차근 담아내고 있던 모양이었다.
혼자 아이를 돌보며 매일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하루하루. 하나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고, '나'로서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서 자주 울먹이던 나는 손에 쌓인 굳은살을 보며 분명 육아도 이렇게 차곡차곡 굳은살이 만들어져 가는 중이라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조심스레 꺼내어 본다. 오늘은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루하루 시간과 함께 쌓이다보면 어느새 멋진 결과물로 돌아오게 될테니 쉬이 포기하거나 주저 앉지 말자고 말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점심에 먹은 것들이 채 소화되지 않아 늦은 밤까지 잠을 못 이루던 나였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점심을 먹고 책상 앞에 앉았다. 손바닥 위에 내려앉은 굳은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내일의 나는 다시 새로운 문제 앞에 기꺼이 서겠노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