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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Sep 08. 2023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른여섯 아줌마의 클라이밍 입문기

 클라이밍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멋진 근육을 자랑하며 암벽을 오르는 클라이머의 뒷모습 그리고 그들이 하나씩 잡고 오르는 알록달록한 ‘홀드’ 일 것이다. 클라이머들은 맨 몸으로 (리드 클라이밍의 경우 줄에 의존해서) 홀드를 잡고 목표점을 향해 이동한다. 이때 규칙은 같은 색의 홀드만을 잡거나 밟고 완등 홀드로의 등반을 시작하는 것인데 제삼자의 시선에서는 간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중력의 힘을 이겨내고 55kg의 몸뚱이를 완등홀드까지 짊어지고 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온전히 두 다리와 두 팔로 몸의 중심을 잡으며 이동해야 하는데 홀드의 모양이 워낙 천차만별이라 무엇을 잡아야 하고 또 무엇을 밟아야 할지를 선택하는 것도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의 한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이는 ‘루트 파인딩’이라고 불리는데 암벽에 오르기에 앞서 어떤 홀드를 어떻게 활용해서 완등할 것인지 미리 경로를 탐색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클라이밍은 전신을 이용한 운동이면서 머리도 끊임없이 써야 하는 고난도의 운동인 셈이다.



 암벽에 처음 오르기 시작했을 때는 완등이라는 목표를 해내기에 급급해서 눈앞에 놓인 크고 작은 홀드들을 아무렇게나 잡고 벽을 올랐다. 무식하게 힘만 이용해서 벽을 올랐던 셈인데 물론 어떤 방식으로든 완등만 하면 되지만 ‘다음’ 도전을 위해서는 힘을 효율적으로 비축해서 등반을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홀드들은 비슷비슷해 보여도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모습만큼이나 홀드가 붙어 있는 위치와 모양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열쇠가 되는데 오래 클라이밍을 해 온 사람들은 홀드의 모양만 보고도 손으로 잡아야 하는지, 발로 밟아야 하는 홀드인지를 한눈에 알아차린다. 그 모양을 토대로 어떤 홀드를 이용해 완등을 해야 하는지를 유추하게 되는 것이다. 때론 손으로 잡거나 발로 밟는 것뿐만 아니라 발 뒤꿈치를 걸거나 발 등으로 홀드를 이용해 다음 목표로 이동해야 할 때도 있는데 아직은 초보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이유로 발 뒤꿈치를 이용하는 기술이 요즘은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최대치의 영역이다. 이따금 클라이밍장에서 발 등으로 홀드를 지지해 등반하는 고수분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클라이밍은 운동의 영역을 벗어나 예술의 영역에도 살짝 발을 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클라이밍을 오래 해 온 사람들의 몸은 다부지고 적당히 그을려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곤 하니까 말이다.







 클라이밍은 같은 문제를 앞에 두고도 저마다 신체 조건과 유연성에 따라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다르다. 이를테면 키가 큰 사람은 멀리 있는 홀드를 높이 뛰지 않고도 잡을 수 있지만 키가 작은 사람은 발돋움을 해서 홀드를 잡아야 하고 유연성이 없는 사람은 다리를 찢어서 발을 딛고 서는 동작 대신 발이나 팔을 조금 더 이용한 동작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키가 큰 것은 클라이밍에 있어서 분명 좋은 조건이긴 하지만 160cm가 되지 않고도 세계 챔피언이 된 김자인 선수를 생각하면 한계를 설정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가 피해야 할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 주어진 비슷한 결의 문제를 두고도 사람마다 풀어가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본인에게 주어진 조건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단점을 보완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한 가장 우선적인 일 아닐까.



 아직 클라이밍장에는 내가 해결한 문제들과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50대 50의 비율로 남아있다. 암벽 앞 매트에 가지런히 앉아 스트레칭을 하며 채 풀지 못한 문제를 한참 동안 올려다보는데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풀었을 때의 그 쾌감을 잊지 못해 클라이밍의 세계에 얼떨결에 입문하게 되었다. 엄마로 살아오면서 느껴왔던 성장과는 확연히 결이 다른 성취였다.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은 너무도 정직해서 조금이라도 운동을 쉬고 돌아오면 실력이 그대로 줄어드는데 반대로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조금씩 근력과 지구력이 늘어나 자신감이 차곡차곡 쌓였다. 엄마로 살아가면서는 늘 당연하게만 치부되었던 나의 노력들이 클라이밍장에서는 성취라는 이름을 달고 돌아와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홀드들을 용감하게 딛고 완등을 외친 것처럼 엄마로서의 삶도 그리고 ‘나’로서의 삶도 크고 작은 문제들을 잘 딛고 일어나 더 단단해질 수 있기를 매일매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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