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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Sep 02. 2023

암벽 앞에선 나이도 숫자에 불과하다

서른여섯 아줌마의 클라이밍 입문기


우리 집 24개월 꼬마의 뒷모습


 오전 9시 반 수업을 위해 아이를 일찌감치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클라이밍장으로 향한다. 조금이라도 수업에 늦게 되면 한 시간밖에 안 되는 수업의 흐름이 행여나 흐트러질까 봐 조심스러운 마음에서다. 초급반 강습생들은 모두 8명. 3팀의 부부와 중년의 아주머니 그리고 나로 구성된 인원이다. 운동이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남자와 살고 있는 나에게는 다소 꿈같은 일임에 틀림없다. (본인 분명 구기종목에는 관심이 많다고 했지만 지난 7년의 시간 동안 농구공을 잡은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았을 때 확실히 흥미가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부부가 함께 취미생활을 한다는 것은 꽤나 부러운 일이어서 나는 그 세 커플을 종종 곁눈질로 훔쳐보곤 했노라 뒤늦게 고백해 보는 바이다.


 

 한 시간 동안 순서를 지켜가며 부지런히 암벽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8명의 인원으로 실전을 경험하기에는 다소 운동량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클라이밍은 운동량이 꽤 많은 운동이기에 암벽을 오르기에 앞서 충분히 몸을 푸는 것이 중요해서 대게는 클라이밍장이 문을 여는 9시에 언저리에 클라이밍장으로 향하곤 했다. 아무도 없는 클라이밍장에 덩그러니 앉아 2년 동안 잠들어있던 근육들을 조심스레 흔들어 깨워본다. 근육들이 기분 좋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날 준비를 하고 나는 오늘 정복할 홀드 앞에 조심스레 서서 장비를 제대로 입었는지를 확인한다. 아무래도 다른 운동에 비해 다소 위험요소가 있는 지라 안전에 대해 스스로가 한번 더 경각심을 가지는 것이 좋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으니까.




 빼곡하게 벽에 붙어있는 홀드를 바라보는 일이 좋아서 수업이 없는 날에도 종종 이른 아침 시간을 골라 홀로 운동을 가기도 했는데 혼자만의 싸움을 묵묵히 하고 있노라면 등 뒤에서 응원의 목소리가 들려오곤 한다.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주시는 분들은 대게는 클라이밍을 오래 해오신 어른들이신데 평일 오전을 자유롭게 쓰실 수 있으신 걸 보면 보통 현업에서 퇴직을 하시고 운동을 시작하신 것처럼 보인다. 부모님보다 훨씬 연배가 있으신 어른들이시지만 홀드를 잡고 암벽을 오르시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균형 있게 자리 잡힌 근육들이 그분들의 운동 내공을 짐작케 한다. 적게는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부터 많게는 70대 어른들까지도 클라이밍장에 계신데 특히나 어른들이 묵묵하게 장비를 입고 암벽을 오르시는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이가 무색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반면 저학년 친구들이 클라이밍장에 체험을 오는 날은 무척이나 시끌벅적한데 떨어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친구들은 원숭이처럼 각자의 홀드에 올라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낸다. 완등을 하지 못하고 홀드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더라도 다시 내려와 마치 처음 도전하는 것처럼 생경하게 홀드를 오르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기분 좋은 느낌표를 얻는 날이 많았다. 말없이 아이들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홀드 앞에 서면 어느새 아이들의 시선은 나를 쫓아오기도 했는데 어려운 구간을 지날 때마다 응원을 보내주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평소 풀지 못한 문제도 어느새 완등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내게 건네는 응원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이 금세 잊힌다. 근육 깊숙한 곳에서부터 힘을 끌어내어 다음 홀드까지 손을 뻗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다.




 서른여섯의 아줌마. 어떻게 보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기에는 다소 난해한 나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클라이밍장에서의 내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이곳에서는 그저 꾸준히, 다치지 않고 암벽을 오르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암벽에 가득 채워진 색색의 문제들을 앞에 두고 우리는 모두 나이를 잊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동지가 된다. 서로가 가진 신체적 한계에 따라 저마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함께 땀 흘리고 서로를 응원하며 나이를 뛰어넘는 공감과 존경이 하루하루 쌓여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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