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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Aug 31. 2023

143화. 클라이밍을 시작했습니다.

제시의 어설픈 육아그림일기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던 지난 반년의 시간들. 무언가를 부지런히 해내는 중이었지만 기분은 늘 널뛰기처럼 뛰어올랐다 가라앉고를 반복했습니다. 아마 가장 편안해야 할 고향에서의 시간들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꽤나 거리가 있었던 이유에서였을 테고, 또 남편과 떨어져서 혼자 독박육아를 하는 고단함에서 온 문제 들이었겠지요. 아무리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홀로 아기와 개를 돌보는 일은 정말 엄청난 마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바입니다. 



 곁에서 저를 지켜보던 친구가 어느 날 '클라이밍'을 제안해 왔습니다. 시골이라 무언가를 배우기엔 인프라가 부족한 편이지만 대신 훌륭한 자연경관과 함께 아주 커다란 클라이밍장이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거든요. 이따금 산행을 갈 때면 벽을 오르는 사람들의 근사한 근육을 보며 '언젠가는 꼭 도전해 보리라' 다짐했었지만 늘 삶이 우선이라 잊고 지냈던 그 일, 서른여섯의 아줌마가 되어서야 뒤늦게 클라이밍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 믿었던 가족과의 트러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와 샛별이를 키우는 일, 베트남으로 가족이 모두 이주해서 사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지에 대한 숱한 고민들. 올 한 해는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두통에 지긋지긋하게 시달려야 했고 무기력에 절어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해야 하는 일(육아와 산책)을 꾸역꾸역 해내느라 꽤 지쳐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동안 봐왔던 저의 모습과는 180도 다른 저를 보면서 어떤 위로도 쉽게 건네지 못하는 듯 보였고 말이죠.


  친구가 제안한 클라이밍을 등록하고 첫 수업에 다녀온 날, 암벽장의 알록달록한 문제들을 보면서 오래 앓고 있던 두통을 비로소 잊을 수 있었습니다. 분명 풀 수 있을 것 같은 문제에서 며칠이고 미끄러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결국 완등했을 때의 그 성취감이란. 엄마로서 살아왔던 저의 삶에 작고 반짝이는 전구 하나가 켜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목이 뻐근할 만큼의 높이까지 가득 채워져 있는 홀드를 하나씩 밟고 올라갈 때마다 지금 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도 딱 이만큼 용기를 내서 직면해 보기로 마음먹어 봅니다. 클라이밍이 저에게 준 건 어쩌면 주어진 문제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결해 내려는 용기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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