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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Aug 28. 2023

내가 가지고 있는 끈기를 찾아서

서른여섯 아줌마의 클라이밍 입문기



Grit: 성공과 성취를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투지 또는 용기, 근성

         재능보다는 노력의 힘을 강조하는 개념. 즉, 평범한 지능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도 열정과

        끈기로 노력하면 최고의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


 무기력함을 떨쳐내기 위해 숱한 노력과 시도들을 하며 지난 상반기를 보냈다. 육아를 하면서도 무기력은 이유를 알 수 없이 계속되었고 늘 무언가를 시도하며 지내온 나에게는 그런 시간들이 참을 수 없이 괴로웠던 이유에서였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바로 강아지 산책. 실외배변을 위해 하루종일 화장실에 가고 싶은 마음을 견디는 녀석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아이가 노란 어린이집 차량에 올라 떠나고 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산책 준비를 마치고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보통은 한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걷지만 마음이 부쩍이나 소란스러운 때에는 음악조차도 소음이 되기 마련이라 언젠가부터 한 때 인상 깊게 들었던 TED강연을 듣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반복해서 들었던 주제는 바로 안젤라 더글라스 교수의 'Grit(성공과 성취를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투지 또는 용기)'편이었다. 그녀의 강연은 끈기 없이 늘 이것저것 시도하다 흐지부지 놓아버리고 마는 나를 채찍질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상이었다. 강아지를 산책하며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다 보니 어떤 구절은 이제 따라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도서관에서 Grit 책을 빌려 다시 읽고 나니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새롭게 '끈기'에 대한 정의를 써내려 가게 되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무언가를 이렇다 할 만큼 끈기 있게 해내지 못했지만 아이는 나보다 더 끈기와 집념 있게 본인에게 주어진 것들을 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Grit을 되새기며 클라이밍을 시작하게 된 것은 꽤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는 적어도 운동에서만큼은 남들보다 조금 더 끈기가 있는 편이었기에 무기력과 의기소침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조금 더 자신 있는 분야를 선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살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승무원’이라는 꿈을 위해서는 체력 관리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매일 학교 근처의 작은 동네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달리기, 스킨스쿠버, 수영, 산악자전거, 요가 그리고 복싱까지 숱한 운동을 거쳐 엄마가 된 이후로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운동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채였다. 친구의 권유로 무작정 찾아갔던 클라이밍장 그리고 그 시기 즈음에 우연히 듣기 시작한 Grit 강연까지, 용기를 내서 운동화를 신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 것만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이었지만 2년 만에 다시 주인의 부름을 받은 근육들은 생각보다 착실하게 제 역할들을 해주었다. 강습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클라이밍장을 찾아 장비를 대여하고 벽에 올랐다. 아이와 강아지를 키울 때면 이렇다 할 성취 없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때론 스스로를 옥죄이곤 했는데 클라이밍장에 다녀온 날이면 엄마가 아닌 ‘나’로 비로소 존재하는 기분이 들었다. 평일 오전이면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아서 이따금 홀로 클라이밍장에 앉아있기도 했는데 아직 해결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하나씩 풀어나갈 문제들이 있다는 사실이 기쁜 벅참으로 다가왔다. 하나씩 벽에 나열되어 있는 문제들을 풀면서 나는 삶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대신해 무언가를 해결하는 성취감과 기쁨을 느꼈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남편의 상황으로 가족에 대한 지원이나 도움을 받기 어려워 우리가 함께 해외살이를 하는 일이 금전적으로든, 심적으로든 부담이 컸기에 돌봄이 필요한 녀석들을 데리고 나는 돌아오고야 말았다. 점점 야위어가는 나를 보며 내 주변인들은 안타까움에 남편이 이기적이라며 비난했지만 그것 역시도 나에게는 또 다른 우울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조심스레 털어놓아보는 바이다.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 독박육아로 잔뜩 지쳐버린 마음, 주변인들의 안쓰러운 시선까지 모두 생각나지 않을 만큼 나에게는 몰입이 필요했고 그 탈출구가 나에게는 클라이밍이었다. 남편은 늘 장비를 대여해서 쓰는 나를 위해 클라이밍화를 큰맘 먹고 사주었다. 내가 지금의 어려운 마음을 딛고 다시 우리 가족이 모여 살게 되는 날까지 잘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이제 나는 화요일이 되면 기꺼운 마음으로 아이를 배웅하고 클라이밍장으로 향한다. 남편이 사준 클라이밍화를 신고 알록달록한 홀드 앞에 서면 꼭 지금의 우울과 어려움도 시간이 걸릴 테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정복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든다. 지금 무너지기에는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이 여전히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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