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아줌마의 클라이밍 입문기
클라이밍은 꽤 오랫동안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의 목록에 있던 종목 중 하나였다. 그간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고 서른여섯의 아줌마가 되어서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오랫동안 해외생활을 하며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지내왔거니와 정착하자마자 엄마가 되어버린 덕분이었다. 아이를 낳고 일 년 동안은 무리한 운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오롯이 육아와 강아지 산책으로 운동에 대한 욕구를 애써 잊으며 살고 있었다. 애와 개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어찌나 짧은지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돌아서면 금방 석양이 지는 시간이 찾아왔다. 오롯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분명 어렵고 힘들었지만 하루하루 보석 같은 순간들을 줍는 일이었고 엄마로서 아주 조금씩 성장하는 일도 나라는 인간을 놓고 보았을 때 분명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에 찾아온 우울이 반년이 다되어가도록 증발되지 않고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곰팡내를 큼큼하게 풍기기 시작하면서 나는 적어도 하루 한 번은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따금 나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다녀가는 친구는 육아에만 메여있는 나에게 무심히 말했다.
“오롯이 너를 위한 시간을 좀 가져. 강아지 산책도, 육아도 다 남을 위한 일이잖아.
운동을 해봐. 클라이밍을 가던지!”
분명 친구는 내가 무엇이라도 시도하며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무심코 던진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에 건강한 자극을 받았다. 다음 날 클라이밍장에 전화를 걸어 초급반 수업에 빈자리가 있는지를 물었고 그 길로 등록을 하고 돌아왔다. 클라이밍을 등록하고 돌아온 날, 나는 서랍 깊숙한 곳에서 몇 년 동안 노랗게 색이 바랜 버킷리스트 목록을 꺼내어 오랜만에 잉크 자국을 남길 수 있었다. 15년 전의 내가 맹랑하게, 큰 고민 없이 적어 내려 간 버킷리스트는 좀 더 철이 든 내가 다시 읽어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바람들이 많았지만 ‘클라이밍’이라면 서른여섯의 내가 해낼 수 있을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나이가 애매하다는 이유로 시도해보지 못하고 덮어둔 일들이 많았다. 이번만큼은 꼭 그런 생각들을 내려두고 그저 ‘하고 싶었다’는 이유로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고 싶었다. 시골에 살아서 아쉬운 점도 많지만 국립공원으로 둘러싸인 우리 동네에는 국제 클라이밍장이 자리하고 있어 군민이라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수강료를 내고 클라이밍에 입문할 수 있었으니 고향에 머무는 지금이 도전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시간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꼭 배우고 싶었던, 산에 가기 위해 이따금 클라이밍장을 지나면서도 늘 아쉬움을 안고 바라만 봐야 했던 그 일을 서른여섯의 여름에 비로소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던 날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