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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ul 27. 2023

그렇게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육아우울증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초보엄마의 일상

 우울을 벗어나기 위해 참 많은 시도들을 했다. 주변에서는 연락이 되지 않는 나를 걱정하며 이따금 전화를 걸어오거나 카톡을 남겼지만 '우울'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도와준다고 해서 빠져나올 수 있을만한 늪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는 스스로 그 늪을 빠져나올 의지가 있어야만 마침내,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친한 친구들과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해서 깊게 가라앉아있는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비슷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타인의 감정을 공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유에서였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이후로는 인스타그램도 자주 접속하지 않았다. 작은 화면 속에 담긴 사람들은 나만 빼고 하나 같이 행복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다 보면 마지막에는 늘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주근깨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거울로 들여다보며 결혼이라는 선택을 한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었다. 미움은 종이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서서히 번져서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갉아댔는데 이로써 우울이 왜 위험하다고 모두 입을 모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몇 년 전, 고향에 돌아왔다가 친구에게 초등학교 동창이 육아 우울증으로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둘째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결혼과 거리가 멀었던 그 시절에는 그저 안타까움으로 남았던 그 뉴스가 엄마가 된 후에는 몇 번이고 곱씹어보게 되는 소식이 되었다. 어린 둘째까지 낳고도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을 친구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단 한 번이라도 손을 잡아줄 이를 만났더라면 지금은 웃으며 "육아라는 거 진짜 쉽지 않지. 그 맘 내가 잘 알아"라며 위로를 건네주는 내공 있는 엄마가 되었을 텐데. 친구의 어머니는 동네에서 꽤 오랫동안 작은 미용실을 하고 계셨는데 그 소식을 들은 후 다시 눈길을 보낸 그곳에는 낯선 전기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우울은 그렇게 남아있는 사람에게도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기는 법이었다.




 우울을 벗어나기 위해 첫 번째로는 나 자신의 감정과 그 감정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아차리는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내가 우울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늘 씩씩하고 명랑했던 내가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은 상황이 되면서부터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가족센터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남편과 함께 갔던 상담이었지만 남편이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난 뒤로는 매주 화요일 10시 30분에 맞춰 홀로 상담을 다녔다. 결론적으로 기분이 나아지거나 상태가 썩 괜찮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행위를 한 것만으로도 아주 조금씩 상처에 바람을 씌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을만한 누군가에게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터놓는 경험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는 일이기도 했고 우울을 벗어내기 위해 어디서부터 노력을 해야 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나와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제삼자가 책을 읽듯이 우리의 상황을 읊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담은 오롯이 제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의 조언은 이미 많은 이들이 예전부터 나에게 건네왔던 이야기였지만 상담이라는 행위를 한 것만으로도 ‘우울의 이유’를 알아차리는 노력을 한 것일 테니까.



 두 번째로는 매일 해야 할 일들을 다시 기록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된 이후로는 늘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며 더 이상 나에게는 'To do list'같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 육아를 해나가는 때일수록 성취감을 통해 스스로를 격려할 필요가 있었다. 나의 하루에 대한 소중함을 표현하기 위해 오랜만에 깨끗하고 예쁜 다이어리 한 권을 준비했다. 그리고 사각거리는 필기감을 위해 언젠가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로 받았던 만년필을 찾아 몇 년 만에 잉크를 갈아주었다. 매일 밤 아이를 재우고 스탠드 조명 아래 앉아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자그맣게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심바 산책', '물 1L 마시기', '비타민 먹기', '코스모스 읽기'.. 같은 아주 사사로운 것들. 누군가가 보기엔 너무나 작고 소소해 굳이 해야 할 일 목록에 담아야 할까 싶은 것들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은 것들을 하나씩 완료하고 다이어리에 체크해 나가는 일은 예상외로 바닥에 가라앉았던 자존감을 일으키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오늘도 이런이런 것들을 해냈구나’, '나는 내일도 일어나서 해야 할 일들이 있는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마음을 먹게 하는 그런 마법 같은 도전이었다고 감히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나의 ‘버킷리스트’ 목록에 있던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그건 늘 낡은 종이 한 구석에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던 클라이밍이었는데 엄마가 된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며 삶에 약간의 긴장감이 생겼다. 주말이 되면 강습이 있는 화요일과 목요일을 떠올리며 잠이 들 정도였다. (결코 팔근육이 불끈불끈하는 멋진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히죽) 새로운 도전을 하며 생겨나는 설렘과 긴장이 우울을 잊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되어주고 있음을 요즘의 경험들을 통해 깨닫는 바이다.

 통장에 있던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오랜만에 나를 위해 클라이밍 바지도 한 벌 사 입었다. 어려운 코스를 하나씩 성취해 나가며 오랜만에 '엄마'로서의 내가 아니라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정직하게 땀 흘리는 '나'의 온전한 모습을 바라보는 중이다. 얼마 전에는 몇 년 만에 심장이 힘차게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내가 반 년동안이나 앓던 우울의 터널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혼자 독박육아를 하는 와중에도 이렇게나 발버둥을 칠 수 있었다니 나 자신의 노력이 참 가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건 분명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두텁게 깔려 있던 덕분일 것이다. 베트남에서 돌아와 지금에 이르기까지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남들이 보기엔 늘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축에 속했다) 책을 마음껏 읽기도 했고, 자연이 울창한 곳으로 산책을 떠나기도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던 마음은 숱한 시도와 도전 끝에 지금은 한결 보드라워졌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울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많은 엄마들에게 내일은 꼭 스스로를 위한 일(그것이 무엇이든)을 하나 시도해 보기를 권해본다. 그리고 그 일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까지도. 그렇게 일주일, 한 달 그리고 일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지금의 우울을 잊을 만큼 밝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 주문을 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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