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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ul 12. 2023

남편에게 잠시 육아를 맡겨둡니다.

엄마 혼자 떠나는 북스테이 _ 청도 <오마이북>


 부부 사이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 아슬아슬하던 시간들. 남편은 5시간의 비행을 기꺼이 감당해 잠시 집으로 돌아왔다. 고작 일주일의 시간이지만 시댁과 친정을 하루씩 다녀오고 나면 금세 남편이 떠날 시간이 된다는 걸 지난 4월의 시간을 보내고 깨달았다. 그가 돌아옴은 우리의 관계 회복을 위함이었지만 사실 23개월의 아이와 4살 배기 강아지를 곁에 두고 온전히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나는 모두가 함께 떠나는 여행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선언했다. 고민은 깊게, 결정은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나자 나의 손가락은 급격히 바빠졌다. 먼저 내가 추구하는 ‘휴식’의 테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곳이어야 했고 고향에서 떠나기에도 멀지 않은 곳이길 바랐는데 서점과 북스테이를 찾아보던 찰나,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마음에 쏙 드는 숙소를 발견했다. 게스트하우스 형식의 숙소로 온전히 책을 읽고 사색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고 짧은 1박 2일의 여행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짐을 싸들고 갈만한 배낭이 마땅치 않아서 결혼 선물로 남편에게 사주었던 프라이탁 배낭에 옷 한 벌, 잠옷 한 벌, 세면도구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을 야무지게 넣어 기차를 탔다. 운전을 해서 온다면 시간을 아낄 수 있었겠지만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고독한 여행자였기에 먼 길을 돌아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청춘이었을 땐 넘쳐나는 시간을 어쩌지 못해 불안을 잔뜩 움켜쥐며 살았는데 엄마가 된 이후로는 책 한 챕터를 읽는 시간조차 소중해져 아기가 잠드는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울산역에서 동대구역까지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청도까지 다시 무궁화호를 탔다. 돈보다 시간이 훨씬 넉넉했던 대학시절, 무작정 해 뜨는 장면을 보겠다며 호기롭게 강릉행 야간 무궁화호에 몸을 실은 후 거의 10년 만에 다시 타는 느림보 기차였다. 비 내리는 창 밖의 풍경이 정겹다.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바라보는 창 밖의 풍경은 나를 10년 전 그때로 돌아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소박한 모습의 청도역에 내려 김밥 한 줄과 생수 한 병을 사들고 택시를 탔다. 희끗희끗한 중단발 머리를 멋스럽게 묶으신 택시 기사님의 핸드폰 화면에 ‘사랑하는 나의 딸’이라는 이름이 반짝였고 이내 앳띈 목소리의 소녀가 전화를 받는다.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다니라는 아빠의 진부한 인사에 알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던 아이. 경상도 아버지에게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무뚝뚝함 대신 넘치는 따뜻함을 가진 기사님에게 감탄하던 중이었는데 14년의 시간 동안 홀로 두 아이를 키워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며 겸연쩍게 웃으셨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육아 우울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잘 알고 있다는 기사님은 아이를 두고 홀로 여행을 왔다는 나를 칭찬해 주셨다. 숙소에 조심스레 나를 내려주시고선 마음껏 혼자의 시간을 보내라는 격려도 잊지 않고 떠나셨다.







 장마가 시작되어 책방과 숙소는 고즈넉했다. 장맛비가 무섭게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시간이었지만 덕분에 근사한 창 밖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었다. 육아로 우울증이 온 뒤로 나는 잠시 사람들로 향하는 문을 닫아두었다. 각자가 속한 환경이 달라지며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점차 줄어들었기에 친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것들이 사라져 갔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군가가 마음대로 뱉어내는 감정 쓰레기들을 더 이상 받아내지 않기로 다짐하고 꼭 필요한 가족 외의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돌볼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라던지 ‘손녀’라는 이름을 잠시 내려두고 눕고 싶을 때 눕고, 듣고 싶은 것들을 듣고, 읽고 싶은 문장을 읽고 쓰고 싶은 글들을 쓰고 싶었다. 나에게 주어진 1박 2일의 짧은 휴가는 거창하게 무언가를 하는 대신 마음에 오랫동안 품고 있던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는 시간이었다.







 내년이면 서점을 운영한 지 20년 차가 되는 사장님과 나눈 지난밤의 대화들을 꺼내어본다. 서점을 하며 돈을 번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부분인데 도대체 어떻게 책방을 운영하시는 건지 알고 싶다며 찾아온 한 책방 운영자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지 말고 사랑하는 일을 하셔야죠”



뭔가 진부한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분명 그 짧은 문장 속에는 많은 고민과 20년 동안의 시행착오와 책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장님은 나에게도 곧 다음 말들을 이어서 전해주셨다.



“아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시죠?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대가를 바라지 않게 되거든요.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대할 때면 인간은 자연스레 대가를 바라게 된답니다. 책방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저는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서점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책 3권을 팔아야 겨우 또 다른 책 한 권을 살 수 있는 서점식 계산을 하다 보면 그 일은 오래 유지하기 어려워지죠.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을 오랫동안 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닌 부수적인 것들을 해야 하기도 하고요. 카페와 북스테이를 함께 운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거예요. 남편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어보세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말이에요.”




 카페에 앉아 멀리까지 나를 데리러 올 남편과 아이를 기다리며 글을 쓴다. 나는 과연 무엇이 두려워서 선뜻 함께 떠나지 못하는 것인지를 떠올려본다. 지난밤 책방 사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얼마 되지 않는 물건들에 미련을 가득 품고 앉아 옹졸하게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앞으로 그가 출국하기까지의 남은 이틀을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 보내기로 했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와 마음을 가득 내려놓고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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