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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an 18. 2024

나는 요즘의 내가 좋아요

작은 도전들을 통해 우리 조금씩 단단해져 가기로 해요.

 

@ 서호주 사막 / @ 그 곳을 이따금 떠올리며 글쓰는 시간들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종종 있다.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연인들을 보며 '좋을 때구나'라고 혼자 생각한다던지, 혼자 밥을 먹는 일이 익숙해져 갈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 조바심이 날 때 그리고 한 해의 마무리를 하며 또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설레는 감정보다는 아쉬움이 들 때가 나에게는 어른으로 익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다.


 아이와 강아지가 잠들고 홀로 식탁에 앉아 2023년 마지막 날을 보냈더라면 조금 섭섭하거나 슬픈 감정이 더해졌을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날이 채 오기도 전에 엄마 집으로 향했다. 이미 연말을 거기서 보내기로 작정을 하고 바지런히 짐을 싸들고 가서 나흘을 꼬박 신세를 졌다. 물론 나와 29개월 아들 그리고 5살짜리 강아지도 함께 말이다. 아이와 강아지가 재롱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이 든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끊임없이 웃었다. 덕분에 연말이 연말 같지 않게, 새해가 새해 같지 않게 흐르는 시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한 해를 맞이했다.






@ 호치민에서의 일상


 지난 상반기는 홀로 흔들리는 시간이었다. 준비 없이 떠났던 호치민에서의 생활들이 그리 나쁘지 않았고 혼자서도 그리고 강아지와 아기까지 셋이서도 더할 나위 없는 시간들이었는데 나는 왜 남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 선택을 했는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소란스러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나서 알아차린 몇 가지 것들이 있었는데 '나'와의 관계를 들여다보며 그 답을 몇 가지 깨달을 수 있었다.



 호치민에서는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새로운 곳에서도 씩씩하게 잘 지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늘 바빴다. 하루 두 번의 산책과 이해할 수 없는 언어 속에서 끊임없이 알아듣기 위해 노력하는 일, 익숙한 식재료를 주섬주섬 골라 담아 아이 이유식을 만들고 밥을 먹이는 일까지 끝내고 나면 어느덧 해 질 녘이 되었다. 남편은 청소와 육아를 도와주는 아줌마를 불러다 나의 일손을 덜어주려 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나에게는 낯선 사람이 집에 오는 것도, 그런 나를 보며 아줌마에게 끊임없이 일을 주문하는 남편에게도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갔을 뿐이었다. 그냥 가볍게 떠나면 될 거라는 남편의 말만 믿고 정말 가볍게 짐을 꾸리고 떠난 용기가 오히려 독이 된 셈이었다. 오롯이 둘만 떠나는 거라면 '삶을 여행처럼'이라는 모토와 평행선을 달렸겠지만 우리에겐 돌을 갓 지난 아이와 작은 강아지가 함께였다. 나는 어느덧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엄마'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남편은 본인의 결정에 의해 오게  호찌민에서 매일같이 최선을 다했지만 무엇 때문인지 나의 마음에는 커다란 공백이 있었다. 나 역시도 그동안 스스로 일어서기보다는 의존하고 기대어 지내는 일들이 많았기에 한국에 돌아와 짧은 시간동안 일어난 몇 몇의 에피소드를 핑계로 호치민에 돌아가는 비행편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그 후, 남편의 ‘그만하자’는 말에 크게 낙담하고 주저앉아 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소용돌이 치는 호수가 가라앉기를 가만히 기다릴 뿐이었다.






@ 클라이밍 6개월차의 일상


 독박육아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아온 일 년의 시간은 되려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내’가 행복해야 비로소 ‘아이’와의 시간도 즐겁게 보낼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으면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여섯 시간 동안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떠나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들에 도전하면서 무기력을 한 꺼풀씩 벗어내는 용기를 얻었다. 클라이밍을 하면서는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무형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평소엔 잔뜩 움츠러들어있던 근육들을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몸에 대한 알아차림과 함께 삶에 주어진 어려움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근력을 키워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들도 다시금 깨달았다. 몸 위로 근육들이 견고하게 자리 잡아가면서부터는 마음도 함께 단단해져 갔다. 낯선 모양의 홀드에 매달려 떨어지고 다시 도전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일상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일들에 대한 경계심도 조금씩 낮아졌다.



 클라이밍과 도서관만 부지런히 다니던 어느 여름날, 도서관 게시판에 붙어있는 공지문 하나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그림책 만들기 수업이었다. 그렇게 홀리듯 등록을 하고 세 달 동안 매주 수요일 오전은 그림책을 위해 오롯이 채우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독자를 상상하며 그림책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며 출판까지 도전했다. 기획의 즐거움과 함께 무언가를 성취하는 소중한 열정까지, 버킷리스트에서 먼지 쌓인 채 묻혀있던 꿈을 조금씩 현실로 이뤄낸 것이었다. 책을 만드는 일은 성취감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에도 선명한 물감 한 방울을 퍼뜨렸는데 책을 만들기 위해 읽었던 수십 권의 그림책들이 나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작은 아이에게 따스히 손을 내밀어주었다는 점이었다. 좋은 책들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 차오르는 설렘이 하루를 잘 견디고 또 살아내는 버팀목이 되었다. 용기 내어 마주했던 작은 도전들이 나비효과가 되어 얼마나 얼마나 따뜻한 동력이 되었는지 알게 된 시간들이었다. 이 일을 시작으로 11월과 12월에는 서울에서 개최되는 전시회에 '작가'로서 참여하는 기회도 얻었고 연말은 잠실에서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었다. 처음이 없었다면 그 무엇도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일들이었다.






@ 연말에 '작가'로서 참여했던 오혁진 작가님의 전시 <내 마음에 잔물결이일어서>


 책임져야 하는 존재들을 생각하느라 나의 2023년은 한결같이 바빴지만 정말 다행인 것 하나는 내가 발디디고 있는 작은 흙더미가 작고 연약한 나의 뿌리들을 단단하게 움켜쥐고 쓰러지지 않게 도와주었다는 사실이다. 너무 메말라서 단단하지 않게 하지만 너무 축축해서 뿌리가 썩지 않을 만큼 나를 잘 들여다보고 햇빛에, 바람에 또 빗물에 나를 끊임없이 내어놓는 일. 우리에게는 크고 거창하지 않지만 소소하고 꾸준한 그런 관심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이제야 막 싹을 틔운 생명을 잘 보살피기 위해서는 더더욱이나 말이다.


 새해가 되고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다. 거창하게 새해 계획을 세우기보다 어느 날 문득,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후로 큰 저항 없이 새벽 6시에 눈을 뜨고 커피 한잔을 내려 책상에 앉는다. 요가 지도자 과정을 준비하기 위해 난생처음으로 해부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언젠가 한 번쯤은'이라고 되뇌었던 것들을 실천해 가는 중이다. 무언가를 꼭 해내야겠다는 굳건한 결의가 없어도 괜찮다. 그저 물 흐르듯, 주어진 기회들을 하나씩 해나가며 나에게 맞는 일들을 해나간다면 걸어온 길들이 점이 아니라 하나의 분명한 선이 되어있을 거라는 사실을 믿어본다. 엄마로서의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일들. 그런 일들을 해나가면서 나는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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