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나는 즉흥적인 모습과 계획적인 모습이 꽤나 엎치락뒤치락하는 성향의 사람이다. 기본적인 삶의 뼈대는 흔들림 없이 유지되는 것을 선호하지만 갑작스레 마주한 이벤트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라면 기분 좋게 조정이 가능한 타입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을 하지 않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요즘에는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는 일, 커피를 마시는 일, 짬짬이 책을 집어드는 일 그리고 반려견과 산책을 하는 일이 그것이다. (예전에는 매일 해 질 녘에 하는 달리기가 그러했다.) 한번 정해진 루틴은 어떻게든 지키고자 하는 성격이라 정해진 시간에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수면 시간을 줄여서라도 욕심을 내는 편인데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강아지 산책을 마치고 빠르게 샤워를 마친 후 공항으로 떠난 적도 있다. 꼭 정해진 일을 끝내지 않으면 죄책감으로 인해 남은 하루의 일정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ENFP라고 하기엔 자그마한 하루 일과는 무척이나 계획형 J에 가까운 모습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 나는 꽤 즉흥적이라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는 갑자기 대공원에 자리한 책방이 가보고 싶어서 난생처음으로 대공원에 자리한 카페에 와서 글을 쓰고 있다. 계획적 성격과 즉흥적 성격이 적절히(?) 버무려진 일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나의 변화는 결혼 1년 차에 조금씩 시작되었다. 비교적 자유롭고 히피스러운 삶을 살았던 내가 조금씩 계획적이고 책임감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말이다.
남편은 얼마 전 나에게 말했다.
“너는 일상은 그렇지 않은데 반려동물에 관해서는 PC(Political Correctness) 성향인 것 같아.”
PC는 PC방이 전부였던 나에게 이 무슨 외계어란 말인가. PC라는 것은 Political Correctness의 줄임말로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신념, 또는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회적 운동을 비판적으로 지칭하는 명칭이다. 이 표현은 사회정의와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하는 이들의 발언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지만 아마 남편은 매일 강아지를 산책해야 한다고 규칙을 세우고 너무 오래 반려동물을 혼자 두지 않길 바라는 나의 삶을 에둘러 나무란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의 말도 일정 부분 일리가 있지만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나에게 반려인간의 삶을 살게 한 남편이 사실은 처음부터 단추를 잘 못 끼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 글을 빌어 대꾸해주고 싶은 바이다. (남편이 산책을 한 번 더 나가주었더라면 그런 말을 해도 밉지는 않았겠지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집을 대충 치워두고 가장 먼저 산책을 나선다. 집에서도 배변을 하지만 기왕이면 밖에서 볼 일을 보고 싶어 하는 반려견의 눈빛을 누구보다 빠르게 읽어낸 까닭이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탓에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의 마음도 누구보다 민첩하게 알아차리곤 하는데 그 대상이 5년을 함께한 존재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젠 공놀이가 하고 싶은지, 물이 마시고 싶은지, 간식이 먹고 싶은지는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정도가 되었다. 산책을 나가고 싶어 하는 얼굴은 두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내가 고향에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산책을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물론 베트남으로 떠나는 남편과 홀로 남겨지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족과 친구가 있는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었지만 그 결심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바로 심바(반려견)였다. 서울 중랑구의 도심은 안전하게 산책을 하기엔 어려움이 존재했다(한다고 느꼈다). 자그마한 땅덩이마다 놀랄만한 가치가 매겨지는 까닭에 발 디딜 틈 없이 건물이 들어선 그 공간에서는 늘 조바심이 났다. 집에서 10분 정도를 걸어야만 인위적으로 조성된 작은 산책로가 등장했는데 그마저도 질릴 만큼 다닌 터라 나는 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남편이 베트남으로 파견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냉큼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내비쳤다. 물론 이 결정에는 뱃속 아기가 큰 역할을 했지만 말이다.
자연과 가까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또 20대의 대부분을 초록에 기대어 살았던 나에게 서울의 삶은 늘 이방인의 감정을 느끼게 했다. 짧지 않은 서울 생활에 지친 내가 고향에 돌아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바로 산책을 하는 일이었다. 환경이 바뀌고 분리불안이 생긴 강아지를 위해 매일같이 하루 두 시간을 꼬박 걸었는데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오토바이나 길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들 대신 계절을 알려주는 풍경들이 마음을 채워주었다. 벚꽃보다 먼저 피어나는 매화부터 노랗게 흩날리는 금계국, 여름이 익어감을 알게 해 주는 해바라기, 데굴데굴 오솔길에서 만난 도토리 그리고 낙엽이 발 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길에서 만난 풍경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었다. 강아지와 단 둘이서 시작했던 산책은 어느새 아기까지 더해져 셋의 나들이가 되었다.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든 일을 매일처럼 해낸 것은 길을 걸으며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해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흔히 우리가 산책을 하고 숲을 걷을 때면 나무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상쾌하고 좋은 기분을 느낀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는 고대 그리스어로 피톤 ‘식물 pyton’ + 치드 ‘죽이다 cide’에서 비롯되었는데 식물이 유해곤충이나 미생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내뿜는 모든 물질을 일컫는다. 이는 항균 및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가 있는데 나무의 방어체계가 인간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유는 인간이 나무와 동일한 DNA를 15%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숲을 걸으며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짧은 단어만 표현할 수 있었던 아이는 산책을 하며 눈에 담은 풍경들을 문장으로 읊을 수 있게 되었다. 자연 속을 걸으며 아이에게 들려주었던 다양한 문장들이 아이의 말 그릇에 차곡차곡 담겨 꺼내어질 때마다 그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도토리가 데굴데굴 굴러가네”에서 시작하던 문장은 얼마 전부터는 “발 밑에서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네”, “빗방울이 떨어지네! 아프겠다”라는 표현에 이르렀다. 말 그릇에 담긴 예쁜 문장들을 작은 입으로 꺼내었을 때의 그 놀라움은 엄마가 되고 마주한 가장 큰 행복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행복이 모두 산책이라는 작은 걸음에서 시작되었음을 안다. 강아지를 위한 일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우리의 삶을 알록달록하게 채워주는 일상이 되어버린 산책.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존재가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들을 마음껏 만끽하며 자라나는 아이와 강아지를 볼 수 있어서 요즘은 엄마로서 가장 충만한 시간들이라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