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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에 했던 생각

+ 나연님, 상담선생님과의 대화

by Jessy

도대체 이제까지의 나는 어떻게 살아온건지 반추되는 순간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20대 후반의 신혼부부가 부모님이 뚝딱뚝딱 해준 결혼식을 치르고 1년정도 지나 돌아볼때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내가 대체 결혼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올해 3분기의 나는 이날 이때까지 대체 어찌 살았던 건지 싶은 순간이 많았다. 이렇게까지 몰랐던 게 많은데 지금 내가 이만큼이라도 잘된게 거의 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그랬다.


여름에 나연님과 점심을 먹으며 한달에 한두번씩 받는 상담과 나의 변화에 대해서 말했다.

요즘의 나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주위에 도움을 구하기도 하고, 의견이 부딪히면 다정하게 듣고 부드럽게 해결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나의 생각 선에서 넘어간 자극에 반응하기 보다는 중심으로 돌아와 바로 대답하기 전에 찬찬히 생각한 후 답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래서 올해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본게 좋다고.


그랬더니 나연님은, 그럼 제시님 이제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해온 거에요? 라고 내게 물었다.

그러게요... 참 치열하고 악착같은 삶이었네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삶이었다. 도와줄 사람이 없었고, 마땅히 도와야 하는 사람도 도와주지 않았으며, 쳐내기에 바빴고 바로바로 반응하지 않으면 뒤쳐지고 눈에 띄지 않는다른 불안감이 넘쳤던 삶.

그냥 정신이 없었다. 살아남고, 살기 위해 세상의 자극과 계속해서 싸우고 부딪히느라. 그 수많은 충돌과 숨결을 때로는 사랑했고, 때로는 너무 상처받아 아스팔트 바닥에 살결과 심장이 쓸리는듯이 아팠다. 그것이 살아있음이라 생각해 거침없이 내맡겼던 삶의 태도가 쓰임을 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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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삶에서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알았던게 아니라 단순히 그냥 추동이 강한것 같기도 했다. 정확함이 아닌 높은 진폭.

당연히 삶에서 정확하게 질문할수록 그에 맞는 대답이 오고,

상황과 백그라운드, 도메인을 이해한 구체적인 질문으로 답을 구했을때 더 구체적인 답변이 온다.


물론 답을 구하는 상대방이 늘 항상 정확한 답변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질문에 부정확한 답변이 오면 거를 수 있다. 거르고 다른 대상에게 질문을 함으로써 정확하고 원하는 답변을 받을 확률이 올라간다.


나는 이제까지 날카롭게 질문하며 살았지만, 원하는 답변을 얻기 위해 정확하게 질문한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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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답을 구하되, 질문과 구함 없이 남으로부터 나의 의중을 바라지 않기로 한다


세상이 부여한 목표와 타인의 시선에 정신없이 반응하며 앞만보고 달리다가 가끔 발목을 삐끗할때,

사실 나에게 스스로 뭘 하고 싶냐고 물어왔던 사람들은 많았다. J 부장님과, 제롬, 경훈님, S, 그리고 윤섭. 다만 그때는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들었으나 말뜻을 알지 못해 들음으로 남겨두었다가 그 남겨두었던 문장들이 한데 모여 깨달음으로 퐁퐁 샘솟을 때가 있다. 최근이 그랬고 요즘이 그렇다.


올해 3년만에 다시 제롬으로부터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라고 다시 한번 들었고, 최근 팀원 S 와 윤섭에게각자 다른 순간 같은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하고 싶냐고.


그 질문을 받았을때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했고 ,그렇게 내가 스스로 삶의 리더십에 있어서 손 놓고 있었구나, 하고 무서울 정도로 깨닫는다. 눈 앞에 주어진, 달성해야할 것이 있거나 세간의 말에 흔들리며 모든 사람을 어떻게 만족시킬지 전전긍긍했지 내가 어떤 trade-off 를 통해 어떤걸 포기하고 어떤걸 도전해서 나름의 결과를 가져나갈지는 고민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점검하는 습관과 루틴을 다 미뤘었다. 그냥 빨리 눈앞에 닥친걸 해결하고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서. 눈치보지 말걸. 아 그냥, 꾸준히 해볼걸. 한계가 닥쳤을때 감정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나, 내가 가진 것과 맞춰나가야 할 매트릭스를 비교해보며 스스로 선택하는 시간들. 휘말리거나 하지말고, 조금씩이라도 지켜봤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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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중심으로부터 비롯하는 루틴의 정립


이제까지 나의 헤멤은 스스로의 중심과 루틴 정립을 위한 것이었나? 사실 헤매보는 것도 재미있었어.

하지만 헤맴 그 자체에서의 재미나 설렘이 사라진지는 꽤 오래되었다. 지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에서 언급하듯이 날마다의 가변적인 상태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 정한 하루의 딱 한시간 글쓰기, 스스로의 discipline 에 따른 계획적이고 의식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롱런, 지속가능한 꾸준함.


이제는 더이상 무작정 달려들지만 말고 상황을 파악한 뒤, 계획을 세워본다.

어떤 벤치마크를 내가 채워야하며, 내가 채운다고 선택할 것이며, 내가 어떤 집단 기억을 가진 사람과 일하는지 파악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나는 뭘 하고 싶은지."


길게 보고, 여유를 가지되 똑바른 마음으로 중심을 내가 세워 본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는 기록과 문서화, 시장에 대한 센싱, 믿을 수 있는 사람과의 크로스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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