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관계보다는 사랑으로 보듬어 주었으면.
스무 살 작곡 일기.
그 네 번째 악장. 고전 음악에서는 심포니의 피날레. 결론. 하지만 여기서는...
나는 항상 작곡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면 절대로 "나"로 시작하지 않는다. 주로 나는 "제 내면에 존재하는 작곡가"라고 한다. 나랑 그 작곡가는 약간 동떨어진 존재이다. 항상 작곡을 끝내고 내 곡을 직접 들을 때마다 어떻게 그런 멜로디나 구성이 나오는지 나 자신도 놀라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곡을 하는 도중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무조건 앞으로만 달려갈 뿐이다. 주저 없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무작정 시작해서 대부분 약간 다른 목적지에 도달한다. 원래 예상했던 것과 약간 다른 목적지지만 항상 유튜브나 다양한 플랫폼에 나오는 곡들은 결과로 따지면 절대 실패한 적이 없는 곡들이다. 그게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작곡가의 능력이다. 그렇다 보니 내가 느끼기에는 그 작곡가가 초월적인 존재로밖에 느껴질 수가 없다. 이질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녀와 내가 자주 대화하는 적은 별로 없다. 서로서로 마음이 약간은 연결되어 있어도 유일하게 대화할 때는 작곡할 때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느낌에 '응답'을 해 주는 하는 아이가 바로 내면의 작곡가이다. 그 '응답'이 다른 사람들에게 울릴 때, 그들은 나에게 칭찬을 한다. "곡이 정말 좋네요! 아름다워요!" "이거 듣고 눈물 날 뻔했어요"라고 하는 분들의 칭찬은 결론적으로 그 작곡가에게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작곡을 하나도 하지 않는 내가 모든 칭찬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 때문인지 작곡가는 나에게 냉정했고, 칭찬을 받다 보니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압박감 때문이었다. 그녀로부터 더 좋은 응답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
그 압박감과 더불어서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받다 보니 우울 증세가 찾아왔다. 밥도 잘 안 넘어가고,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작은 일에 감정적으로 굉장히 예민해졌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에워쌌다.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유명해질 거다, 좋은 곡 많이 만들어낼 거다 라는 이야기를 해도 나는 100% 부정했다.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작곡할 때만 그런 증세가 사라졌는데, 어쩌다가 작곡을 하는 도중에도 좋은 곡이 나오지 않자 그녀에게 쏟아지는 질책과 채찍질이 증세를 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작곡에 손을 놓았다. 내 유일한 취미도 사라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찾아오자 더욱더 우울해졌다. 실제 친구들과의 관계도 주로 그렇게 깊지 않아서 내 속마음을 꺼내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그때, 한번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내가 왜 이렇게 우울해야 할까. 뭐가 나를 이렇게 스트레스받게 만들었을까. 결론은 나와 내 작곡가 사이에 있는 관계였다. 비즈니스 같은 딱딱한 관계 때문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그 작곡가에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서 받는) 무지막지한 압박감을 가지고 일을 시킨다.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칭찬은 내가 받는다. 그녀는 나를 돌아보고는 째려본다. "압박과 동시에 일을 그렇게 시키면서 칭찬은 자기가 받냐"라는 냉정한 반응이다. 그녀의 마음이 차갑다 보니 나도 차가워진다. 결론적으로는 둘 다 관계가 안 좋아지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작곡과 관련된 칭찬은 그녀가 직접 받을 수가 없다. 그 감격과 좋은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표면적이기 때문이다.
그럼 유일하게 그녀가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내가 직접 그녀에게 칭찬을 건네야 한다. 대화로 보듬어야 한다. 오늘 아침에 시도해봤다. 마음속에 외로이 있는 그녀에게 말을 조용히 건넸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너 진짜 잘하고 있어. 넌 참 좋은, 재능 많은 작곡가야. 정말이야. 많은 사람들이 너를 응원하고 있어. 잊지 마."
그러자 머릿속에 있던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금씩 긍정을 되찾았다. 작곡가가 응답을 보냈다. 고맙다는 표시였다. 동시에 몇몇 멜로디가 다시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암울하고 이상한 멜로디보다는 조금 더 가볍고 행복한 멜로디였다. 나중에 꼭 그 멜로디를 가지고 작곡을 해 봤으면 싶은 생각이었다.
생각해보면 작곡가 그녀도 나에게 가끔 격려의 대화를 건넨다. 내가 정말 힘들 때 보듬어주는 마음으로 그녀가 작곡한 곡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곧 출시되는 "함께(Together)"라고 하는 곡이다. 이 곡을 다시 들어볼 때 한 번도 그녀에게 칭찬과 격려를 해주지 않은 나 자신이 정말 미안해졌다.
앞으로는 이렇게 더 자주 대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곡가, 그녀도 칭찬과 격려가 많이 필요했다. 작곡만 해주는 기계가 아닌, 감정을 가진 하나의 존재로서. 이것은 나와 그녀의 관계뿐만이 아닌 다양한 직장에서도 필요한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갑질과 질책이 아닌, 서로 협력하고 보듬어주는 대화와 더불어 생산적인 아이디어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브런치 펜네임은 사각사각. 예명은 Jessie Yun.
영화 작곡가. 성우. 무엇이든 도전하려고 하는 창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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