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집으로 돌아온 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다. 후덥지근한 열기가 어느덧 선선하게 식어가기 시작할 즈음인 지난주, 요양병원을 퇴원해서 돌아왔다.
예정보다 한 달이나 먼저 퇴원한 이유는 '내' 집, '내' 공간이 그리워서였다.
5개월 동안나의 생활 터전은 병실이었기에 별별 살림들이 다 들어가 있었고 그래서 병실 짐을 뺀다는 건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덕분에 집으로 오자마자 이틀은 짐 정리를 해야 했다. 게다가 각종 빨래며 비어있던 집 정리며계절이 바뀌는 짐 정리까지 더해져 손 느린 나 혼자 치우느라 5일 동안은 집안일에 파묻혀있어야 했다. 이제야 집안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듯하다. 이제 글 좀 써야지.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하루의 첫 시작을 산뜻하게 산책으로 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상이자 기다린 일과 중 하나다. 다들 한창 출근을 하고 있거나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는 아침 시간에 뒷산 숲길을 걸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노라면 저들 속에 끼지 "못"하는 도태된 마음보다는 나 혼자 아침을 풍요롭게 여는 듯한 마음에 오히려 뿌듯해졌다. 나에게는 몸도 마음도 그야말로 힐링하는 시간.
주섬주섬 일어나 옷을 입고 블렌더에 토마토를 갈고 준비한 병에 담아 들고는 모자를 푹 눌러쓰면 산책 준비 끝. 테니스 스윙 연습도 해야 하니 라켓도 챙겨야지.
새벽에 비가 와서 집 뒤편 숲길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이 얼마 만에 다시 밟아보는 길이던가. 발에 밟히는 푹신한 흙바닥도, 여전히 싱그럽게 푸르른 나뭇잎들도,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도토리며 밤송이들도 그저 다 반갑기만 하다. 앗! 오늘은 두더지가 땅속에서 길을 내는 장면도 목격했다. 귀여운 것들.
목적지에 도착해서 작은 벤치에 자리를 잡고는 잠시 아래 동네를 내려다보니 아이들이 한창 등교 중이다. 그와 반대로 내가 있는 공터는 언제나 그랬듯이 나와 한 두 사람 정도가 보이는, 한없이 한적한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참 신기했다. 분명 오랜만에 집으로 왔는데 나는 항상 이곳에 있었던 것 같은 이 느낌이. 더 신기 건 일주일 전까지 머물렀던 병원생활이 하룻밤의 꿈처럼 짧고 희미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익숙한 것의 힘이 이런 것인가 보다.
이제는 때때마다 알아서 나오는 식사도 없고 간간이 불편하게 찾아오는 통증을 호소할 곳도, 풀어줄 곳도 없다. 스케줄에 알알이 박혀있던 치료 일정도 없다. 대신, 집에서 택배로 식료품을 박스채 배달받아 냉장고와 창고를 고구마와 토마토, 바나나, 달걀 등으로 가득 채우고 직접 일일이 조리해야 한다. 물론 매번은 귀찮으니 비상식품처럼 늘 냉동식품으로 만들어서 보관하면서 요령껏 먹기로. 여러 신체 이상을 감지하며 의료진을 찾아 보고할 생각을 하는 대신 병원에서 알음알음 배운 것들을 기억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응급처치, 평소 운동법 등을 생각하며 더 책임감 있게 스스로 관리도 잘해야 한다.
그리고 그간 나도 모르게 몸에 배었을 '환자 마인드'도 완전히 벗어버려야지. 생활은 때론 전투와도 같으니까 전투복 장착을 해야 할지도.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간호사들의 대화 소리를 듣는 대신 반려묘의 울음소리를 듣는 일도, 매번 바뀌는 환자들을 적응하며 지내는 대신 항상 그대로인 익숙한 살림살이들을 다루며 지내는 일도, 지루한 병원 안을 뱅뱅 맴도는 대신 동네 이곳저곳을 마음껏 돌아다니는 일도, 모든 것이 다 반갑고 만족스럽다. 게다가 이건 또 웬일일까. 병원에서는 그렇게도 먹기 싫었던 밥이 집에 오니 반찬도 없이 먹는 밥인데도 어쩜 이리 맛있는지. 내가 언제 밥을 이리 잘했단 말인가. 놀랍도록 새삼스럽다.
앞으로의 일상은 전과 같으면서도 다를 듯하다. 내 건강에 대한 책임감이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시간의 소중함도 더 느꼈으며 한번 더 나에 대한 성찰 비슷한 것을 가지면서 앞날에 대한 작은 계획도 더 가지게 되었다. 어쨌든 다시 돌아온 일상에서 못하는 요리지만(사실은 귀찮은 거지만) 내게 맞는 방법으로 새로운 식습관도 가져보고 좋아하는 운동도 조금씩 다시 도전해보고 하고 싶었던 일도 소박하게 슬슬 시작해봐야겠다. 가을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아주 좋은 계절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