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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딩제스 Feb 23. 2022

해 뜨기 직전이 가장 추울 때야

마포대교를 걸으며

얼마 전에 양화대교 노래를 듣다가 코끝이 살짝 찡해졌다. 사랑 노래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노래라서  찡했던  같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마포대교를 건너면서 출퇴근을 하던 때.


나는 회사에서 보직이 여러 번 바뀌었다. 고객 대응 CS팀에서 시작해서, 기술영업팀을 거쳐 물동 영업 잠깐, 마지막 기획팀까지. 팀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신입사원이 된 것 같았고 일과 사람들 모두 다 어색했다. 특히 새로운 업무에 적응한다는 것은 매번 내게 큰 도전이자 숙제였다. 아무리 야근을 해도 일을 끝낼 수가 없고 주말에 나와 몰래 일해도 월요일 아침에 혼나기 일쑤였다.


짬은 차는데 일하는 것은 신입사원 같고

기대하는 아웃풋에 비해 내 능력은 제자리만 같고

여기서 그만둘 수도, 팀을 또 바꿀 수도 없었다.


억이 넘는 담보대출과 매달 따박따박 내야 하는 이자금에, 다가오는 원금상환에 

부모님의 기대와 친척들의 시선

가진 건 개뿔 없고 차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고

회사라도 다녀야 결혼할 수 있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아무것도 던질 수 없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지만 내일 아침 다시 출근해야 하는 현실에

갑갑하고 답답하고 우울하고 울적하고 외로울 때면

한강공원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 들고 마포대교를 건너 퇴근하곤 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때 마포대교 난간엔 자살예방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강바람을 맞으며 한 문장, 한 문장 읽다 보면 마음속에 아주 작고 따뜻한 위로 같은 게 생겼다. 아주 작고 따뜻한..


, 그리고 음악. 정말 힘들 때는 통화할 기력도 누구를 불러  힘도 없었다. 음악이 유일한 친구이자 위로가 되었다. 가사 있는 음악보다 연주곡. 그리고 맥주.


마포대교 자살예방 문구. 마포대교를 건너면서 난간에 쓰여진 문장을 하나 하나 읽다보면 마음 속에서 따뜻하고 작그마한 위로가 생겼다.


돌이켜 보면 나는 힘든 시기를 꽤나 잘 버텨냈다. 술로 몸을 망가뜨리지도, 어디론가 탈선하지도, 쇼핑 중독이 되거나 더욱이 일 중독도 되지 않았다. 혼자 술을 마시거나, 조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가끔 혼자 여행을 하면서 풀곤 했다. 그리고 이 말을 자주 되뇌곤 했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추울 때야’


가장 추울 때를 겪고 나니 정말 따뜻한 날이 왔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처럼, 달이 지고 해가 뜨는 것처럼 따뜻한 세상이 왔다.


따뜻한 우리 가족, ‘나의’ 가족..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 말고.


#마포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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