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형 클래스 들어보기
나는 음식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한국음식 중에서도 나름 하드코어한 음식들(곱창, 청국장, 산낙지와 같은)을 좋아하고 잘 먹는다. 고수가 들어간 음식이나 동남아 쪽 향신료 향이 강한 음식들도 잘 먹는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나라를 여행해도 음식에 실망한 적이 별로 없다.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는 이미 지났건만,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은 주체할 수 없다. 이국적인 비주얼과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면 이미 내 뇌는 ‘WOW!’를 외친다. 특히 해외여행 시엔 한 번도 안 먹어 본 신기한 메뉴를 도전하는 것을 즐긴다.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독특한 북부지역 음식들을 경험해보았는데 (지난 글 참고) 남부에서는 좀 더 특별한 방법으로 스페인 음식을 즐겨 보기로 했다.
스페인 요리 체험하기
세비야에 머물게 된 나는 Taller andaluz de cocina라는 쿠킹 클래스를 예약했다. 마켓투어(30분)+요리 및 시식 (3시간 30분), 60유로의 가격이었다. 만들 요리는 아래와 같았다.
• 살모레호 (토마토 베이스의 차가운 수프)
• 시금치 병아리콩 타파스
• 발렌시아 빠에야 (닭고기)
• 레몬 셔벗을 섞은 Cava(스파클링 와인)
이 클래스의 매력 포인트는 마켓투어를 하며 스페인 식재료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남부지방에서 생산 되는 올리브 품종들에 대한 차이점, 식용 고기에 대한 이야기, 하몬의 등급별 차이점 등. 물론 설명은 영어로 진행되지만 초 집중하여 듣다 보면 얼추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쿠킹 클래스는 내 손으로 만드는 거니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덜 하겠지 라며 엄청난 기대를 하진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수준급의 요리가 나왔다. 요리를 각자 하는 것이 아니라 수강생들이 하나의 요리를 다 함께 만드는 거라, 나의 삐뚤빼뚤한 칼질도 어떤 외국인 어머님의 명품칼질에 묻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클래스에선, 요리를 전혀 못해도 각자의 몫만 아주 조금씩 잘 해주면 멋진 요리를 탄생시킬 수 있다. 그리고 아주 훌륭한 선생님이 간을 맞춰주신다. 간만 잘되어도 반은 성공한 것 아닌가?
세비야의 주요 관광지를 걸어 다니다 보면 한국인을 정말 많이 만날 수 있는데 이 쿠킹 클래스에서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아마도 한국인 커뮤니티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았다. 내 옆엔 미국에서 온 사이좋은 커플이, 건너편엔 호주에서 온 노부부와 홍콩 여성이 앉았다. 처음엔 다소 어색했으나 만든 음식을 시식하는 시간이 다가오자 하나 둘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토익 리스닝보다 더 어려운 영어 듣기 시험이 시작됐다. 영어를 10년 이상 공부했는데 이렇게 안 들릴 수가 있나? 나는 대한민국 영어교육 시스템의 낙오자다. 알아들어도 자연스럽게 치고 들어갈 실력이 안되니 ‘음~’, ‘오우~’, 하며 감탄사로 대신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즐겁지 못할 망정 듣기 평가나 하고 있을 바엔 다 틀리게 말할지 언정 용기 내어 말하자. 다들 이야깃거리가 떨어질 때 즈음, 슬쩍 옆자리 미국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이 재료가 뭐라고 했지?’
‘이거 알카초파래.’
‘이거 우리나라엔 없는 것 같은 데.’
‘그래? 어디서 왔어?’
부족한 영어실력이지만 대화는 이어졌다. 알고 보니 이 친구는 중남미 여행을 오래 한 까닭에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고, 나는 영어보단 스페인어 실력이 조금 더 나았기에, 서로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즐겁게 대화할 수 있었다. 대화라고 해봤자 대단한 것도 아니고 세비야 여행 관련된 것이었지만 꽤 재미있었다. 나중엔 이야기하느라 빠에야를 다 못 먹어서 접시를 치우려고 하는 걸 ‘잠시만요!’하고 황급히 해치웠다. 막 친해지려던 찰나에 클래스가 종료됐고 함께 요리한 기념으로 그 커플과 사진을 찍었다.
3시간이 넘는 긴 수업이었지만 마시고 먹고 즐길 수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수업 내내 홀짝댄 상그리아 때문에 알딸딸한 기운이 올라왔다. 취기가 올라 벌건 얼굴로, 과달키비르 강을 따라 걸었다. 뜨거운 햇볕에 기미가 생길까 걱정했지만 그것 외엔 아무런 걱정이 없었기에, 오랜만에 평화로운 산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