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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석천 Jun 27. 2017

말라파스쿠아, 상어와 노니는 환상의 섬

다이빙과 여행으로 세부 CEBU 한 바퀴 (6)


환 도 상 어
Thresher Shark


환도. 환.도.

환도.. 라니, 이름도 어쩜 이렇게 예쁠까.


그 이름 자체로도 '환상의 섬(幻島)'을 표현하고 있는 이 환도상어란 녀석을 처음 알게 된건 어떤 다이빙샵에 놓인 자그마한 나무조각 때문이었다.

환도상어의 우아한 꼬리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나보다
from Google images ⓒ Derrick Crossland / eazytraveler @ Flickr


저 길고 우아한 곡선을 가진 꼬리는 뭐지-

희화화한건가....

통통한 몸매와 그렁그렁 왕방울만한 눈은 또?

저게 상어라니!?


그런데 저런 상어가 진짜 있단다. 정말 저렇게 길고 아름다운 꼬리를 가진 귀여운 상어가. 가끔 앞바다에 나타나 저 긴~ 꼬리로 정어리떼를 사냥해 배를 채우고 사라진단다.

동네 필리핀 총각들에게 물어보니, 해질녘에 물질하러 들어갔다가 가끔 저 아름다운 상어와 마주치면, 그들마저도 넋 놓고 보곤 한단다.


그리고, 황송하게도, 그 앞바다에서 딱 한번 환도상어와 마주쳤다. 스노클링하며 물고기떼를 구경하던 찰나, 통통한 환도상어 한마리가 정어리떼 사이로 사라지는 걸 보았다.

온몸을 흔들며 나아가는 짧지만 당찬 몸뚱아리, 우아하게 휘날리는 긴 꼬리에 나는 매료되었다. 돌이켜보면 사냥하러 가는 상어와 불과 5미터 남짓 떨어져있었던건데. 순수해보이는 동그란 눈과 우아한 꼬리 덕분에 무섭기보다 오히려 귀엽단 느낌이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환도상어의 우아한 자태 ⓒLG전자 from Google images

그래서 말라파스쿠아로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말파에서는 매일 아침 환도상어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다음 여행은 그 까맣고 동그란 눈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그 '환상의 섬'으로 꼭 떠나고 말리라고. 다짐했었다.



태풍으로 인한 예약 캔슬. 6시간의 이동거리.

이 환상의 섬에 발을 들이기까지 참 힘들었다.

그렇지만 일단 말라파스쿠아에 도착한 이상, 환도상어를 보는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만 하면 됐다.


환도상어는 원래 200m 심해에 사는데, 하루에 딱 두번 50m 혹은 그 이상의 수심까지 올라온다. 해 지기 직전 그 길고 긴 꼬리를 휘둘러 먹이 사냥을 하기 위해.

그리고 동 트기 직전 몸 청소를 하기 위해.

많은 큰 물고기들이 그러하듯, 환도상어도 작은 청소고기들에게 몸을 내어주고 기생충과 입 안 청소를 받는데, 그곳이 바로 말라파스쿠아의 클리닉 스테이션clicnic station 모나드숄Monad Shoal이다. 모나드숄에는 매일 90%의 확률로 한마리 이상의 환도상어가 청소를 받으러 올라오는데, 이 정도로 환도상어에게 인기 있는(?) 클리닉 스테이션은 전세계에서 손에 꼽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다이버들이 이동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섬을 찾는다.

오늘을 위해 전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덕분에, 일어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새벽 4시, 동 트기 직전의 칠흑같은 어둠 속을 겨우겨우 짚어가며 다이빙샵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 방카 보트에 오르다보니 발을 헛디디고 여기저기 쿵 쿵 박기 일쑤였다. 그 와중에 필리핀 직원들은 이 정도 어둠따위 별것 아니라는 듯 무거운 다이빙 장비들을 들고도 가볍게 방카에 올라탔다.


새볔녘의 어둠은 조금 을씨년스러웠다. 열대지방이라곤 하지만 해 뜨기 전 바닷가는 꽤나 추웠다. 방카가 빠른 속도로 바다를 가로지르니, 바닷바람이 거세게 부딪혀와 머리가 지끈거렸고 뒤늦은 졸음마저  몰려왔다.

하지만, 저 멀리 햇살 끝자락이 수평선 위로 비치기 시작하자 그런 피로감 따위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동틀녘, 모나드숄로 가는 길 Monad Shoal, Malapascua, Philippines ⓒ제석천

서울에 살면서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을 본적이 있던가. 하늘이 이런 색깔을 발하는걸 본적이 있던가.

근대 화가들이 화폭에 칠했던 연분홍빛, 연노랑빛 하늘이 진짜 내 눈앞에 펄쳐져 있다니. 가장 위대한 예술은 자연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보러가는 길마저 아름다워서, 나는 환도상어가 더 좋아졌다.


짙은 남색의 바닷 속. 예민한 환도상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모든 다이버들은 몸을 낮추고 숨을 조절해 공기방울 소리도 낮추었다. 심해어종이라 빛에 예민한지라 고프로의 깜빡이는 녹화불빛마저 종이테이프로 가려놓았더랬다.


순딩이 환도가 놀랄까봐, 조금이라도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래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일렬로 늘어선 다이버들 앞에는 길게 로프가 쳐져 있고 그 앞은 새까만 낭떠러지였다. 수십여명의 다이버들이 깊은 암흑 속에 시선을 고정하고 미동도 없이 작은 버블만 내뿜고 있었다.

엄숙하고 정갈한 기다림...
Monad Shoal, Malapascua, Philippines  ⓒ Jesuckchun

또 다시 기다림인가... 생각하려던 찰나 현지 가이드가 내 어깨를 콕콕 찔렀다. 화들짝 놀라 그를 쳐다보니 한곳에 시선을 멈추고 있었다. 다른 다이버들도 조용히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 기운 가득한 눈을 최대한 부릅뜨고 그 시선을 따라가니 깊은 어둠 속에서 새까만 눈 하나가 떠올랐다. 헉-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가 혹시 이 소리마저 방해될까 싶어 꾹 참았다가 아주 조금씩 내쉬었다.


모나드 숄에서 처음 조우한 환도상어는 왕방울만한 눈으로 청소고기 두세마리를 몸에 붙인 채 우리 앞을 크게 한바퀴 돌았다. 환도의 우아한 꼬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뿌연 바닷속 저편에서 뾰족한 삼각형 코가 하나 더 나타났다. 환도 두 마리는 아주 고요하고 편안하게 우리 앞을 두어바퀴 돌다 각자가 온 방향으로 사라져갔다.

우아하게 사라져가는 환도의 뒷모습... 가지마...
Monad Shoal, Malapascua, Philippines  ⓒ Jesuckchun

한편의 무언극을 본 기분이었다.

우아하게 곡선주행을 하는 긴 꼬리. 편안한 몸짓. 새벽바다색과 구분되지 않는 푸른잿빛 몸. 그 몸 구석구석을 돌며 잔망스럽게 헤엄치는 새파란 줄무늬의 청소고기 잔상이 더해져 묘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어떤 의식을 관람하는 느낌이랄까. 전세계에서 온 수십명의 다이버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엄숙한 의식.


운이 나쁜날은 한두마리, 운이 좋으면 십여마리의 환도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날은 운이 좋았다.

두마리 환도의 엄숙한 의식이 끝나자, 그날의 관람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는 듯 여기저기서 환도상어들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저 멀리서 나타나 우리 머리 위를 쓰윽- 지나간 녀석도 있었고, 분명히, 내 눈을 보고 있다고 생각할만큼 가까이 다가온 녀석도 있었다. 어떤 녀석은 바위 옆에 자리잡은 내 옆을 너무 당당히 지나가는 바람에 오히려 내가 부딪힐까 겁나 몸을 피해주기도 했다.

우아한 환도의 몸짓  Monad Shoal, Malapascua, Philippines  ⓒ Jesuckchun

깊은 바닷속에 살아 겁이 많은 종이라고 하는데. 운 나쁘게 다이버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자기가 더 놀라 심해로 숨어버리곤 한다는 이 녀석들이...

오랜 경험 끝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위험하지 않다는걸 인지한걸까.

오랜 세월 그곳을 지키며 모나드숄의 다이빙 문화를 지켜온 선배들이 너무나 고마운 순간이었다.


영원히 이 곳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나이트록스까지 사용했음에도- 공기탱크는 내 마음과 다르게 빠르게 비어갔고,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는 하찮은 인간은 더 이상 이 환상 속에 머물 수가 없었다.


나도, 아름다운 너희의 꼬리를 계속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노라고, 괜히 다짐하면서. 혹시 환도의 뒷모습을 한번이라도 더 볼 수 있을까 몇번이고 몇번이고 뒤 돌아 보았다.



(말라파스쿠아 마지막 여행기로 이어집니다... )

https://brunch.co.kr/@jesuckchun/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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