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음악 평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지의 걸작 Aug 05. 2023

대중음악 속 아름다운 전환에 대한 소고

2022.9.30의 글

요 근래 우리나라 대중음악에서는 여러 가수들이 후렴의 절대적인 지위를 무너뜨리고자 노력하였다. 블랙핑크와 엔믹스를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시도는 그 완성도와 별개로 언제나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후렴은 음악에서 너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에 수차례 반복되며 권태를 낳기 때문이다. 너무나 노골적으로 후렴을 좋아하라고 강요하는 곡도 있어 때로는 거북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나는 후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후렴은 머무르는 부분이다. verse와 bridge를 통해 진행되는 이야기는 후렴에서 정체되어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고자 하는 창작자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아무도 혁신을 꾀하지 않는 대중음악의 그러한 구조는 진부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불완전한 시도일 지라도 후렴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음악 구조를 구상하는 모든 시도를 경배한다. 새로운 시대의 음악은 무비판성의 음악, 동일성의 음악에서 벗어나는 무엇이 되었으면 한다. 기존의 구조를 고수하는 예술은 시대정신을 발전시키지 못하지만, 바로 자신의 그러한 특징 때문에 시대정신의 진보를 초래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여주며 새로운 대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진부함에서 벗어나는 핵심은 전환이다. 기존의 구조를 따르는 듯하다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때 희망찬 이질감이 싹튼다. 백 년 간의 관습에 따라 대중음악 청취자는 모든 노래를 포괄하는 하나의 구조를 무의식에 상상한다. 전환의 음악은 이러한 기대를 넘어 새로운 방향으로 떠나기에, 단조로운 목표와 발전하지 않는 서사를 기대한 청취자에게 새로운 충격을 준다. 이야기의 진행을 방해하는 후렴을 떠나 새로운 한 걸음을 딛는 것이 전환의 음악이고, 현실을 반영하는 음악일 것이다. 삶이 끊임없는 변화를 마주하듯, 복합적인 인간의 감정, 인간의 이야기를 담아야 할 것이다.


단순한 전환의 음악은 블랙핑크와 엔믹스, 넓게는 SM의 많은 걸그룹 노래에서 보여진다. 이들 노래들은 대체로 기존의 구조에 충실하게 진행되다 bridge를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러한 기초적인 형태에서 전환의 계기는 지시적 언어를 통해 나타나며, 음악 형식으로는 전환을 납득시키지 않기에 때로는 어색하게, 완전히 이질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들 노래는 일관적인 곡의 흐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요구되는 정당성을 만족시키지 않는다. 단순한 전환의 음악은 설명 대신 강요를 일탈의 정당화 수단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감상자들에게 곡의 전환 과정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게끔 강요하는 것이다. 블랙핑크의 <Forever Young>에서는 "BLACKPINK is the revolution"이, 엔믹스의 <Dice>에서는 "NMIXX, change up (let's go)"가 이러한 지시적 전환 동기의 대표 사례이다.


더 고차원의 음악은 음악 형식을 통해 전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폴 매카트니는 이러한 차원에서 전환의 음악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가수이다. 그는 긴 음악 커리어 동안 이질적인 곡들 사이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대표적으로 <Tug of War>, <Venus and Mars/Rock Show>, <Band on the Run>이 그의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들이다.


https://youtu.be/TsqZng4zNik

https://youtu.be/L7eJEXj8QNA

https://youtu.be/bmEXlWgSotU


고차원적인 전환의 음악은 이질적인 두 개의 선율을 자연스럽게 하나의 선율로 자연스럽게 통합한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기술을 요구한다. 현대의 대중음악 작곡가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에 도달하고자 노력하였으나 모두 좌절되었다. 반면 폴 매카트니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포섭하는 데 천부적인 능력을 보여주었다. <Venus and Mars/Rock Show>에서 매카트니는 서정적인 일렉트릭 기타의 아르페지오 반주를 순식간에 빠른 템포의 락 반주로 전환한다. 곡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 빈 공연장을 바라보는 화자의 모습을 그리는 <Venus and Mars> 와 공연의 모습을 묘사하는 <Rock Show>로 구분되지만, 기타 전환 동기를 통해 하나로 이어진다. 매카트니의 전환은 시간을 달려 단숨에 공연의 한 가운데로 감상자를 이끈다. 이 '몰입'의 과정이 너무나 환상같기에 <Rock Show>에서 그려지는 광란의 모습은 더욱 더 매혹적으로 비추어진다. 이러한 과정이 비지시적인 음악적 표현을 통해서 이루어지기에 감상자는 이전 단계의 전환의 음악에서 가지게 된 '거리 둠'의 태도를 버리게 된다. 매카트니의 사례가 보여주듯 이질적 요소들의 통합은 전환의 음악이 이질적이고 화해 불가능한 세계를 통합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환의 음악의 극단은 후렴이 없는 음악이다. 이 단계에서는 곡의 반환점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음악은 어떠한 방향으로 계속하여 흘러가기만 할 따름이다.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의 위대함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울리는 소리는 "Ooh, it makes me wonder"로 대두되는 연결부의 변주를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떠나가는 선율을 다시 붙잡는 듯한 연결부는 서서히 새로운 방향으로 곡을 이끈다. 곡의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수수께끼같은 질문들이 떠오르고 여명을 알리는 듯한 기타 소리를 시작으로 곡은 자연스럽게 격렬해진다. 이어서 샤우팅이 나오고, 곡은 마침내 쉴틈 없는 여행을 멈추고 주제의식을 강조하며 끝을 맞이한다.


https://youtu.be/X791IzOwt3Q


결국 대중음악에서 전환의 음악은 <Stairway to Heaven>을 모범으로 삼아 끝이 없는 항해를 하고자 한다.  <Stairway to Heaven>의 사례에서 설명의 주체가 'She'와 'I', 'We'로 끊임없이 오가며 시점의 통합을 보여주듯, 음악가들은 온갖 분위기, 이야기, 어조 등을 통합하며 대안적 세계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최고 수준의 전환의 음악은 음악가가 통합하고자 하는 서로 다른 세상을 하나로 잇는 방식을 보여주는 다양한 제안의 음악이다.


제안의 음악은 난해하다. 곡에 통일성, 응집력을 부여할 후렴이 부재하기에 난잡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보통의 대중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시도를 통해 음악가들이 제시하는 통합에 대한 아이디어는 우리에게 생각할 지점을 마련해 준다. 결과적으로 제안의 음악이 락의 전성기에 잠시 유행한 음악 형식일 지라도 이러한 음악은 여전히 대중음악의 확장 가능성, 대중음악의 예술성 변호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이러한 음악을 접하는 것이 어려워졌기에 지금의 리스닝은 그때의 노래를 듣는 것만큼의 설렘을 주지 못한다. 때로는 의무감에 곡을 듣기도, 억지로 곡을 반복하며 스스로 '이 곡은 좋은 곡이다'라는 세뇌를 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때의 음악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다운 가사의 향연: 신지훈. <별과 추억과 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