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24의 글
아름다운 음악은 시에 비견되곤 한다. 인간의 감정을 노래하는 시를 음악의 모범으로 삼아 다양한 곡들이 탄생하였다. 대표적으로 윤지영, 잔나비, 검정치마는 음악과 시의 거리를 성공적으로 좁혔으며, 자기만의 스타일로 시와 같은 음악, 시다운 음악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신지훈의 곡은 '아련함'의 정서를 환기한다. 신지훈은 윤동주를 연상케 하는 그의 첫 정규앨범, <별과 추억과 시>에서 서정적 작사 능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이 앨범을 통해 시간 지나 빛바랜 아픔을 추억하는 신지훈만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10개의 시절이 이제 나를 떠나려 하네요.
이 순간 수많은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릅니다.
후회도 자책도 참 많이 하였던 지난 일들 중에
헛된 추억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열렬히 꿈꿔왔고 여전히 꿈만 같은 정규 1집, 별과 추억과 시입니다.
- 신지훈, <별과 추억과 시> 앨범 소개글 -
스물하나 열다섯
<별과 추억과 시>의 첫 곡은 신지훈의 기억에 천천히 우리를 초대한다. 잔잔한 기타 반주와 "시간을 되올 수 있다면"으로 시작하는 나지막한 보컬은 아주 가벼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신지훈은 앨범 전반에서 가족/고향을 회상하는 한편 사랑/연인을 추억하는데, <스물하나 열다섯>에서 두 유형의 기억들을 각각 열다섯의 자신과 스물하나의 자신에 연결지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구름 타고 멀리 날아
<구름 타고 멀리 날아>는 옛 사랑을 추억하는 밝은 분위기의 노래이다. 피아노와 보컬만으로 시작되는 곡은 verse를 거치며 악기가 추가되며 점점 풍성해진다. 2절 후렴에서는 오보에, 플루트 등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도 등장한다. 한없이 스케일을 더해가던 노래는 무한한 팽창을 멈추고 아이들의 합창으로 포커스를 옮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컬과 오케스트라, 합창의 앙상블이 진행되며 곡은 마무리된다.
이 곡에서 신지훈은 자신을 떠난 옛사랑을 떠올린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지만 자신의 세상을 찾아 떠난 사람을 생각하며 신지훈은 추억을 모아 그의 꿈속에서 비가 되어 내리고자 한다. 집착보다는 끝맺음에 가까운 이 마음은 내리는 비에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을 모두 담아 끝내 잊어버리고자 하는 것으로, 노래는 신지훈의 복잡한 감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심해
<심해>는 사랑과 외로움의 관계에 대한 신지훈의 통찰이 돋보이는 곡이다. 건전한 사랑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개인을 더욱 더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개인의 결점을 덮어 놓거나 타인에게 의지하며 자신을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고는 한다. 이런 사랑에서는 외로움에 쉽게 잠식될 수 있는데, 인간이 자연법칙에 무기력한 존재인 동시에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는 의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느끼는 실존적 분열감이 도피적인 사랑에서는 심화되는 까닭에서다. 신지훈은 이러한 상황을 현실적인 차원에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에리히 프롬을 닮았다. "너가 나를 사랑해 주는 만큼 나는 날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너에게 숨게 돼"에서 드러나는 문제의식이 심화되어 outro의 "내 맘속에 고여있는 슬픔을 너와의 시간으로 보이지 않게 덮어버리네"와 "내 맘속에 가다듬지 못한 모서리는 나를 향해 있어"에 이르러선 부적절한 사랑의 방법이 원인이었음을 화자가 스스로 자각하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정말 심오한 곡이다.
*이영경, <고독의 철학>, 《哲學硏究》 Vol. 134, 대한철학회, 2015, 111-150면.
밤의 창가에서
<밤의 창가에서>는 쓰린 기억을 감내하는 신지훈의 모습이 드러나는 이례적인 곡이다. 여전히 덤덤한 어조이지만, 다른 곡들과 달리 이 곡에서 신지훈은 자책하기도, 잊혀 가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간절히 잊고 싶은 기억이 너무나 간절하였기에 계속하여 '나'에게 찾아오는 상황을 '나'도 모른 새에 "밤하늘에 새"긴 것 같다고 말하는 부분이나, 슬픈 기억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상황을 "온 세상이 밤의 기차처럼 한껏 찬바람을 일으키며 날 떠나가요"라고 말하며 사랑의 세계에서 '내'가 소외되었음을 밝히는 장면은 이 곡의 백미이다. 잠 못 드는 밤, 나를 찾아오는 슬픔, 외로움에 이끌리는 개인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한 명곡이다.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
때로는 아련하기도, 때로는 씁쓸하기도 한 과거의 추억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신지훈은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를 통해 그 대답을 내놓고 있다. 신지훈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러하다. 과거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아 우리를 이끄는 빛이 될 지어니, 그때의 슬픔과 고통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자는 것. 이 곡은 이 시집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최고의 곡이다. 그에 걸맞게 앨범에서 가장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준다.
열 개의 추억을 아름답게 보내주는, 신지훈의 마음이 담긴 아름다운 곡이다.
신지훈의 <별과 추억과 시>는 가사 측면에서는 비교할 작품이 없을 정도로 수작이다. 외로움, 그리움, 슬픔의 정서를 신지훈만의 시적 표현으로 훌륭하게 그리고 있으며, 감상자를 사로잡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가벼운 회상으로 첫 곡을 시작하여 점점 정서를 강하게 표현하다 마지막 곡에서는 추억을 정리하는 구조마저도 이러한 효과를 위해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앨범의 곡들은 대체로 8~90년대의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는데, 신지훈이 노래하는 '회상'에 조화를 이루며 과거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선율 또한 만족스러웠다. 다만, 몇몇 곡들의 일부 부분이 정말로 8~90년대의 곡과 유사하게 들린다는 점이 아쉬웠다. 시대정신이 흘러감에 따라 과거의 것을 재현하기만 하는 것에는 큰 가치가 없다. 이러한 점이 '반동적'인 것인지 과거의 향수를 성공적으로 재현해 낸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개별 감상자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신지훈'만'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아쉽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별과 추억과 시>는 신지훈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다. 비록 오래 음악 활동을 했다고는 하지만, 첫 정규 앨범에서 보여준 성과가 대단하기에 앞으로 신지훈의 새로운 앨범을 기대하게 하는 수작임에 분명하다.
평점: 8.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