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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르래 May 27. 2019

고독사를 하지 않으려면

스카이 피플은 무슨! 을지로로 가라.

오랜만에 내가 교집합이 되어 방송작가 아카데미 동기들이 모였습니다.


방송작가와 9 to 6 회사를 벗어나 프리타족으로 사는 나, 방송작가를 때려치우고 사무직으로 취직하고 싶은 친구, 라디오 작가 친구, 티비작가친구 이렇게 네 명이 오늘의 멤버였습니다.


친구들은 일주일에 한 번 서울로 학원을 오는 나를 항상 좋은 곳, 가보지 못한 곳으로 데려가 주고 싶어 합니다.


"언니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음.. 나 을지로?"

요즘 거기가 그렇게 핫하다면서요?


"그래! 가자!"


오늘은 정말 지각을 하지 않으려 아침부터 서둘러 1등으로 을지로 3가 역에 내렸습니다. 지하에서 개찰구 쪽으로 올라오니 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단에 우르르 앉아있었습니다. 로마의 스페인 계단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들 자연스럽게 앉아있어 나는 그 계단이 원래 그렇게 앉아있는 곳인지 알았습니다.


맛집이라 추천받은 <계림 닭도리탕>을 갔습니다. 다들 여기를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거지? 싶을 만큼 좁은 골목길에 어깨를 비집고 들어가니 계림 닭도리탕이 거짓말처럼 나왔습니다. 그리고 문에는 이렇게 써져있었습니다. 앞문으로 가세요. 아, 역시 이 좁은 골목은 정식 길이 아녔군요. 웨이팅이 있었지만 줄은 금방 금방 줄어들었습니다. 내가 생각한 자작한 국물의 닭볶음탕이 아니라 깊이가 깊은 냄비에 물을 국물이 한강 같은 닭볶음탕이었습니다. 맛있었습니다. 거의 오후 2시였고 밥을 한 끼도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대화 주제는 "고독사"입니다.


서로 매일매일 전화해주기로 하자.

아니 다 같이 살면 되잖아.

아니 나는 같이 사는 건 싫고 같은 동네에는 살았으면 좋겠어.

아니 우유를 받는 거야. 그래서 우유가 3개 이상 쌓이면 문을 두들기는 거지.


그럼 고독사를 하지 않고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일단 혼자 잘 살려면 내 생계를 뒷받침할 돈이 필요합니다. 물론 돈이 있다고 해서 고독사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일단 최소한 살아있기라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니 이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그러려면 회사에서 잘리지 않아야 하고, 정년까지 보장받아야 하죠. 그렇게 버티려면 일을 아주 열심히 해야 하고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또 퇴직 이후의 삶을 생각하면 일을 그만두고도 몇십 년을 더 숨이 붙어있을지도 모르니 그전에 돈도 많이 모아 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고용시장은 늘 불안하기만 합니다. 나는 학교 연구소가 예산이 떨어지거나 책방이 망하면 이 경력으로는 어디에서 다시 막내부터 시작해야 하고 영원히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백수로 쓸쓸한 말로를 맞이할 운명에 놓였고, 사무직으로 취직하고 싶은 친구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과 역시 재취업에 실패한다면 다시 방송국의 노예로 들어가야 할 처지입니다. 다른 방송작가 친구들도 프로그램이 갑자기 없어지거나, 피디가 작가를 교체하거나 하면 그다음 날이건 짐을 싸야 하는 것 현실.


그냥 적당히 벌고 적당히 잘 살고 싶은데, 회사에서 적당히 일해서 승진을 한 분은 내 일평생 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유지하는 여성들을 보면 치열하게 버티고 싸우고 살아남은 사람들뿐이라 나는 그만 울적해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일을 평생 업으로 여기며 끝까지 해나갈 자신도 열정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가끔의 보람과 희열은 있지만 순간의 그뿐입니다. 영광의 기쁨과 고용 보장을 차지하는 건 내 몫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현실은 불안하기만 한데 과연 우리는 혼자 잘 살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다들 자꾸 결혼을 하라고 하지..”

“맞아...”

“그럼 결혼을 할까?”

“그래 그러자”

“근데 누구랑?”

“진짜 괜찮은 사람들은 벌써 결혼을 했어”

“그러게”

“근데 일단 연애가 먼저 아니냐?”

“근데 어디 만나?”


“야, 너네도 스카이 피플 깔아!”

계림 닭볶음탕 집을 거쳐 백두강산을 거쳐 세운상가 다전식당을 거쳐 로스트 앤 파운드까지 흘러들어온 그곳에서 스카이 피플 유경험자인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그게 뭔데?”


스카이 피플 줄여서 스피

그것은 바로 서울대생이 만든 웅앵웅 소개팅 어플이었습니다.


학교과 직장, 사진 인증을 통한 프리미엄 소개팅을 해주는 매개체.


왜 이딴 사람을 나에게 소개해준 거지? 라며 주선자와 서먹해질 없으니 일단 합격입니다.


스펙을 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하트를 보내고 매칭이 성공되면 서로의 전화번호가 공개되고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왜 이 어플이 프리미엄 소개팅이냐, 웬만한 스펙 이상이 되어야만 가입되기 때문이고, 그것은 남자 한정입니다. 여자의 스펙은 정면 얼굴이 잘 나온 사진 3장이면 충분합니다.


아,,, 우리는 모두 탄식을 금치 못했습니다.


나는 이날 로스트 앤 파운드 DJ를 무척이나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모든 음악이 좋았고 울적해질 때마다 우리는 각자 취향껏 음악을 검색하느라 핸드폰을 스피커로 쳐들기 바빴으니까요.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옵니다.

나는 새벽 세시반에 집으로 떨어지는 버스를 타야 합니다. 아쉬움에 걸음이 느려 치고 한숨을 쉬며 까만 하늘을 올려보는 도중 우리는 허름한 건물 4층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보라색, 분홍색 네온사인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야 저기 뭔데, 저기 갔다 와 볼 사람!!”


적극적인 2명이 가파른 계단으로 뛰어올라가고 입구에서 우리의 저돌적인 모습을 본 외국인이 물었습니다.


“저기 어떤 일 때문에 그러세요?”

나는 자연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저기 뭐하는 곳인가요! 너무 궁금해서 그래요. 뭐하는 곳인가요?”

“오늘 레트로 루프탑 파티인데 만원 주고 입장하면 와인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어요”

“오... 와.... 근데 이런데 다들 어떻게 알고 오시는 거예요?”


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외국인과 나 사이를 가로지르며 검은색 옷으로 대동 단결한 청년 3명이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아 저도 여친이랑 지나가다가 불빛 비치는 거 보고 그냥 갔어요.”

“아, 그러시구나”


어느새 담배를 다 태운 외국인은 저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계단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언니, 저 사람 외국인 맞지?”

“어 왜?”

“아니 한국말로 둘이 너무 대화를 잘하길래, 나 외국인 아닌 줄 알았어.”

“내 말이. 나도. 역시 사람은 언어 배우려면 연애를 해야 해.”

“어 근데 이 노래 뭐지?”

“변진섭”

“아 너 근데 어떻게 알아? 근데 방금 저 외국사람은 변진섭 감성을 알고서 입장한 걸까?”


우리가 실없는 대화를 하는 사이 루프탑으로 돌진한 2명이 내려왔습니다.



“대박 대박 우리 다음엔 저기로 가야해요!!!”

“진짜 왜???”

“야!! 세상 힙쟁이 저기 다 모여있더라!!”


“스카이 피플은 무슨!! 이제부터 을지로다!!!”


을지로의 밤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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