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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미 Feb 25. 2022

의견차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숙소 구하기 여정은 계속되었다. 제주에서 얼마의 기간동안 머무를지, 어느 지역으로 선택할지 확실히 정하기 어려웠다. 특히 제주살이 기간에 대해 남편과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다.

남편은 한 달 정도 지내다 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입장이었고, 나는 그보다 더 길게 머무르고 싶었다.   

  

“한 달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동안 제주도 많이 가봤고, 넉넉잡아 한 달이면 제주 전역을 돌아봐도 충분하지~” 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타고난 집돌이인 남편은 집을 참 좋아한다. 그런 그가 집을 떠나 한 달이나 나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결심이었다. 그 사랑하는 집을 오래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자고로 집은 사람의 손때가 묻어야 하거늘 집에 사람 온기가 없다면 어찌할까 한걱정인 것이다.     


“아니야. 한 달은 아쉬울 것 같아. 당신 휴직까지 하고 가는데 한 달만 지내다가 다시 올라오자고? 난 반대야. 적어도 두 달 이상은 지내고 싶어. 우리가 여행가는 게 아니잖아. 나는 정말 제. 주. 살. 이를 할 거라고!! 제주에서 일상을 살고 싶어.”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나에게 제주살이는 여행이 아닌 일상으로의 초대였다. 

설렘으로 이곳저곳 관광지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평소와 같이 사는데 그 지역이 지금의 거주지가 아닌 제주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물론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명소들은 그 일상을 살며 누리는 혜택이라고나 할까?

이직이나 이사를 하지 않는 이상 제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기회는 흔치 않다. 

스스로에게 그런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동안 애썼다고, 충분히 누려도 된다고.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게 바로 제주에서의 삶이었다.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나의 성격과 반대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남편의 성격은 자주 맞붙었다. 

그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쯤, 막 연애를 시작하던 순간부터였다.

대학생 시절,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남편에게 나가서 놀아야지 이렇게 날씨 좋은데 도서관에서 무슨 공부냐고 꼬시던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남편에게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인 나는 유명한 MBTI검사를 해봐도 극과 극이었다.     


하지만 연애할 때는 최대한 상대방에게 맞추며 지내기에 서로의 성격 차이, 생각 차이, 가치관 차이 등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비로소 ‘우리가 이 정도로 다르구나’를 느끼게 된 것은 결혼하고 부터였다. 결혼 이후 수많은 의견 차이의 난관을 거쳐왔는데, 이제 제주살이 기간을 놓고 다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난 셈이다.     


마음에 먹은 일은 꼭 하고야 마는 내 성격에 남편이 원하는대로 딱 한 달만 지내다 돌아올 순 없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의지는 더욱 불타올랐다. 자 그렇다면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까? 감정에 호소할까?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어필해볼까?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나도 그와 지내면서 많이 바뀌었다. 연애 때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속상한 상황이 생길 때, 못마땅한 표정으로, 쥐어짜는 눈물로 나의 감정을 알려줬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이제는 전략적으로 나간다. 말을 하지 않고 그가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다린다면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그는 모른다. 그렇기에 머리를 잘 써야 한다(지혜롭게, 현명하게 남편을 설득하는 방법이라고 해두자.)     


“여보, 아이들을 봐. 우리도 우리지만 언제 아이들이 제주에서 오래 지내보겠어? 햇볕 뜨거울 때 푸른 바다에서 실컷 물놀이하고, 가을바람 선선해지면 오름도 오르는 거야. 자연만큼 큰 선물은 없잖아. 이왕 선물하는 거 한 달 말고 두 달 가자. 막상 당신도 지내보면 한 달은 짧다고 느낄 거야. 천천히 잘 생각해봐.”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남편에게 최후 반론을 했다. 남편은 잠시 듣더니 콧구멍을 벌름거린다. 이것은 미묘한 긍정의 신호다. 느낌이 좋다.      


내 예감은 맞았다.

“그래, 당신 말 들어보니까 아이들이 여름, 가을 두 계절에 걸쳐서 지내면 더 좋아하겠어. 우리가 9월에 가니까 두 달 지내다 추워지기 전에 오자.”

오케이, 됐다. 두 달살기 할 수 있겠다.      


이제 나는 두 달살기 계획에 맞춰 다시 숙소 검색에 들어갔다. 그전과 다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준비했다.      

그러나 의견 차이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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