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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미 Feb 05. 2022

어쩌다 제주

그들은 왜 제주로 가려고 했을까?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가수 성시경의 노래 [제주도의 푸른 밤]이 내 귓가에 맴돈다. 떠나고 싶은 것인지, 훌훌 버리고 싶은 것인지 중독성 있게 마음에 콕 박히는 이 노래는 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일까?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일이 자꾸 생각난다. 바로 제주살이다.      






현재까지 지내온 나의 일상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 결혼하고 남편은 남편의 일터에서, 나는 엄마의 자리에서 육아를 하며 서로가 최대치로 에너지를 끌어모아 지내고 있었다. 7살, 5살 두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욕심에 아이를 일반 어린이집이 아닌 협동조합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다. 협동조합 어린이집 특성상 부모가 맡아서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집에서 가계부도 안 쓰던 사람이 재정이사를 맡게 되어 억 단위의 회계장부를 운영해야 하니 그 부담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매달 교사들의 월급 계산부터 보험처리, 각종 이체까지 해보며 행정실에 취업한 느낌으로 1년을 보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일은 해내야지 하며 스스로 감내해왔다. 그러나 연료가 바닥이 나고 있었다.     


남편은 본인의 일터에서 혼자서 두 세 명 몫을 감당하며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슴이 뛰어서 시작했던 일들이 10년간 지속되자 처음의 열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가불하여 쓰는 상황이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 지쳐있었다. 

각자의 상황에서 서로의 몫을 감당하느라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져갔다.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 

사회의 세찬 바람을 맞고 집에 들어오면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축 늘어져서 남편은 말하곤 했다. 

‘얼마나 지치고 피곤하면 그럴까?’ 그 마음을 이해하다가도 아이 두 명을 키우느라 어린이집 업무에서부터 가정일까지 위태롭게 붙들고 가는 나의 상황에 약이 올라 맞받아치기 일쑤였다.

“나는 할만해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 당신만큼 나도 힘들다고!”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다시 재정비하고 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나의 마음속에 들어온 것이 제주살이였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내고 싶었다.      


처음엔 막연한 동경이었다. 

’길어야 4박 5일 여행 갔던 제주에서 한 달, 두 달 길게 지내는 것은 어떨까? 제주에서의 여행과 일상은 과연 다를까? 제주의 푸른 바다와 오름을 자주 보면 좋겠지? 제주에서 지내면 우리 가족이 행복할까? 가족이 매일 붙어있으면 힘들진 않을까?‘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래도 결론은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다’ 였다.     






혼자서 생각만으로 집을 한 채 짓다가 남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여보, 우리 제주에서 살면 어떨까?‘ 

남편에게 공을 던졌다.


”제주에서 살면 좋겠지~ 아~ 나도 휴직하고 제주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남편이 공을 받아친다.     


’오호~ 당신 생각도 그렇단 말이지?‘ 

이때다 싶어 나는 공을 더 세게 던졌다.     


”여보~ 당신 지난 10년 동안 쉬지도 않고 계속 일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어~ 더구나 요즘 번아웃 오고 지쳤잖아. 우리 딸 내년에 학교 가기 전에 육아휴직 한번 하는 게 어때? 우리 가족 다같이 제주에서 살아 보자. 자기 인생에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거야.“     

남편은 얼떨떨한 표정이다. 

그저 제주에 가고 싶다는 나의 의견에 맞장구를 쳐 줬을 뿐인데 이렇게 덥석 미끼를 물다니! 



그냥 해본 말이었다고 후퇴할 수도 없는 남편은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나의 공격을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 눈만 마주쳐도, 같이 밥을 먹다가도, 쇼파에 앉아 쉬려고만 해도 나는 앵무새처럼 계속 되풀이했다.   


“여보, 휴직하고 제주가자.”

“여보, 휴직하고 제주가자.”

“여보, 휴직하고 제주가자.”     


제주살이 경비는 어떻게 충당할 것이며, 숙소는 어떻게 구할 것이며, 제주에서는 어떻게 지낼 것인지 이런 세세한 고민은 하지도 않고 일단 가자는 나의 말에 남편은 난감한 얼굴이다.     


당신, 이번에 마지막 기회다.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앞으로 정년퇴임 할 때까지 자기는 계속 일만 하게 될 것이다. 

이 시간은 아이가 학교 가기 전에 아빠 엄마랑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정말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당신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마치 마법사가 마법을 거는 주문을 외듯이 나는 남편 얼굴을 볼 때마다 말하고 또 말했다.

그렇게 남편은 서서히 마법에 걸려 들어갔다.  

남편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직장에 휴직계를 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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