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다듬을 때입니다.
상식은 우리가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과 판단의 기준을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사회적 관습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와 원칙으로 작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상식은 때때로 집단의 욕심과 이기주의로 변질되며,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상식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가슴과 이성이 함께 "맞다"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입니다. 가슴은 진정성을 요구하고, 이성은 논리를 요구합니다.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상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감과 신뢰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 중 하나라도 결여될 때, 상식은 편견이나 자기합리화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편의에 따라 상식을 정의하지 말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장자는 "도는 모든 것 위에 있으나, 사람의 마음이 이를 왜곡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상식 또한 개인이나 집단의 욕망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한 개인의 판단이 옳고 그름의 경계를 흔드는 것은 위험하지만, 집단이 이를 상식이라 강요할 때 그 파급력은 더욱 크고 치명적입니다.
현대사회는 상식이 결핍된 사례로 가득합니다. 그중 하나는 이기주의적 집단행동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키고,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외면하는 결정들이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때, 우리는 그 본질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를 방관하거나 묵인하는 태도는 결국 또 다른 불의를 낳을 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악행에 침묵하는 것은 악을 조장하는 것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상식은 이처럼 침묵하지 않는 용기를 통해 지켜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상식을 바로 세울 수 있을까요?
첫째, 상식의 기준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이는 개인의 편견과 사회적 환경에 물들지 않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둘째, 공공의 책임을 지닌 이들이 상식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이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이는 판사나 정치인, 교육자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이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덕목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상식의 본질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상식은 단지 개인의 도덕적 잣대가 아닙니다. 이는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원리이자, 타인과의 신뢰를 쌓는 밑거름입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의견과 욕구 속에서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상식을 통해 가능합니다. 욕심과 이기주의가 상식을 대체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경계하고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있었던 윤석열 내란 사태는 상식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준 사건입니다. 당시 계엄령과 관련된 논의가 이루어지던 가운데, 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결정과 명령이 이상하다"라고 느끼면서도 이를 수용하거나 방관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일부는 충성심을 이유로, 또 일부는 두려움으로 침묵을 선택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 계엄령이 실행되었다면,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았습니다. 이번 사태는 상식이 왜곡되고 침묵이 지배하는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상식은 단순히 개인의 양심이 아닌, 사회적 책임의 문제로 확장됩니다. 집단의 욕심과 이기주의를 상식으로 둔갑시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깨어 있음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