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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감옥

by 가치지기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문자의 틀이 우리의 사고를 얼마나 제한할 수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어는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크기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이 말을 곱씹으며, 문자가 우리의 사고를 확장하는 동시에 가둘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고민해 보았습니다.


언어마다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감수성이 있습니다. 같은 감정을 표현해도 언어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고, 같은 단어라도 문화적 배경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온도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문자가 만들어 놓은 틀에 갇혀 상상력을 제한받게 됩니다. 언어는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이지만, 때로는 그 도구가 우리의 사고를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합니다.


문자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시던 옛이야기를 따라 상상의 세계를 여행했고,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끝없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때의 우리는 단어에 갇히지 않았고, 듣고 느끼며 자유롭게 상상했습니다. 그러나 문자가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언어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사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문자로 옮기면서 많은 것을 삭제하고 단순화합니다. 말로 표현하는 순간 감정은 날것의 상태를 잃고, 언어라는 틀 속에서 재구성됩니다. 사랑을 말하는 순간 사랑은 단순한 단어가 되고, 슬픔을 설명하는 순간 슬픔은 개념이 되어버립니다. 언어를 통해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지만, 동시에 상상력의 가능성을 줄어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시를 대할 때면 상상의 언어, 가슴속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던 언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표현하고 싶었던 영혼의 언어를 만나게 될 때, 우리는 환희를 느낍니다. 단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그 순간 우리는 말보다 깊은 울림으로 공감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내 삶에서 지워야 할 것들을 떠올려 봅니다. 기존의 표현만을 답습하는 사고방식, 이미 정의된 감정만을 따르는 습관, 상상력을 억누르는 언어의 한계. 이제 더 이상 단어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사고하지 않기로 합니다.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감정을 그려내야 합니다. 글은 우리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확장하는 창조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표현해 낸 문자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어는 우리가 만들었지만, 만들어진 순간 그 시대와 문화의 색이 입혀집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장소, 삶에 맞는 언어를 찾고, 아직 말로 다듬어지지 않은 내면의 언어를 세상 밖으로 불러내야 합니다.


우리가 쓴 단어가 곧 우리의 사고가 되지 않도록, 글을 쓰는 순간에도 상상력을 닫지 않아야 합니다. 문자는 우리를 가둘 수도 있지만, 문자를 창조하는 순간 우리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언어의 한계를 넘어, 인간만이 가진 상상력의 가능성을 소중히 키워 나가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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